전임교수보다 많은 대학 비정규교수들, 왜 총장선거 투표 참여 못하나?
[진단] 국립대 총장선거 무엇이 문제?
‘1인 1표, 전북대학교 총장 선거가 민주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총력 투쟁’
제19대 총장선거를 앞두고 투표 일정 등을 놓고 구성원들 간 갈등을 겪고 있는 전북대학교 캠퍼스에 내걸린 현수막이 눈에 띈다. '모든 직원들이 총장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 현수막이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학본부 목포대지부’가 내건 현수막이란 점에서 더욱 시선을 끈다. 19대째 총장선거를 치르고 있는 전북지역 거점 국립대인 전북대 총장선거가 투표 방법, 일정 등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0월 26일 치르기로 했다가 일부 교수들의 반대로 갑론을박을 펼치더니 다시 11월 23일로 선거일이 변경됐다.
“전임교수 중심 총장선거 이대론 안 된다”...직원·학생들 불만 늘 반복, 왜?
그러나 총장선거가 여전히 교수들 중심으로 치러지고 있어 내부 다른 구성원들의 불만이 높다. 더구나 교수들 중에서도 비정규교수들은 철저히 선거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비정규교수들은 1인 1표가 아닌 ‘1인 0표’를 행사하면서도 대학 내에선 학생들 강의의 절반가량을 맡고 있다.
전북대 올해 총장선거에서 결정된 투표 비율을 보면 교수 70%, 직원(조교 포함) 20%, 학생 10%다. 규정이 바뀌며 올해 최대 투표 비율(두자릿수)을 확보한 학생 비율은 고정이 아닌 변동이다. 문제는 교수 70% 중 정규직 교수(전임교수)가 100%를 차지할 뿐, 비정규직 교수는 단 한 명도 해당되지 않는다.
대학 내에서 교수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교수들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 수 있다. 비정규교수들은 시간강사를 비롯해 겸임교수, 초빙교수, 객원교수, 외래교수 등을 모두 지칭하며 전임교수보다 수는 더 많다.
전임교수보다 많은 비정규교수들, 상아탑 ‘유령’ 취급...총장선거에도 참여 못해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가 지난 2018년 기준 '10년간(2008~2017년) 대학 교원 및 시간강사 현황'을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전임교수는 6만 8,011명인데 반해 비전임교수는 8만 2,464명으로 조사됐다. 비정규교수가 전임에 비해 1만 5,000여명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전문대학을 합칠 경우 더 크게 발생한다. 2011년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만들어진 뒤 비전임교수들 중 시간강사 수가 조금 줄었을 뿐, 오히려 전체 비정규교수들이 늘고 있다. 이는 겸임교수, 초빙교수, 석좌교수 등 강사법을 적용 받지 않는 비전임교수들이 더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강사법은 2011년 첫 개정 이후 7년간 4차례 유예를 거듭하다 대학 및 강사측 대표, 국회 추천 전문가가 참여한 협의체의 합의를 기반으로 개정된 법이다. 그럼에도 국립대 총장 임용후보자 선정은 교육공무원법에 근거하는데, 구성원 1명에게 1표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강사들은 참여조차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교육공무원법에는 총장 선출 방식을 대학 자율에 맡기며 추천위원회(간선제)로 뽑거나 교원의 합의된 방식·절차(직선제)에 따르게 돼 있을 뿐이다. 대학이 임용후보자를 선정하면 교육부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지만 총장 선출 과정에서 투표권을 놓고 늘 잡음과 갈등이 무성하다.
2019년 8월 31일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었지만 국공립대에서 여전히 총장을 직접 선출할 경우 해당 대학 교수들이 합의한 방식과 절차로만 진행되도록 함으로써 전임교수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극소수의 투표권만 주어지고 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상아탑, ‘1인 1투표’ 무시...비정규교수들 ‘천대’
이 때문에 국립대 총장선거에서 모든 전임교수들은 1인 1표를 행사하고 있지만, 직원(공무원)들은 1표 값이 평균 12%에 불과하고 학생들은 1표 값 평균이 2%에 그치는 등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상아탑 내에서 1인 1투표제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교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투표 참여가 원천봉쇄돼 있다. 그럼에도 비전임교수들은 선뜻 이에 항변하지도 못하고 있다. 대학 사회에서 전임교수들이 총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보직을 맡아 학내 조직(단과대학·학과장, 본부 실·처·국장 등)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비정규교수들은 총장선거에서 늘 남의 집 식구처럼 천대받고 있다.
그나마 공무원 중심의 국립대 직원들은 노동조합이 결성돼 총장선거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은 전북대 비정규교수 등의 경우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행 국공립대 총장직선제는 비민주적인 전임교수 독점 총장 선거제도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국립대 직원들과 조교, 학생들은 지난 20여 년간 총장 직접 선거 때마다 투표권을 요구하며 민주적인 투표제도를 요구해온 결과, 소수이긴 하지만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정규교수들은 투표에서도 여전히 유령 취급을 받고 있다.
전북지역의 한 비정규교수는 “일부 다른 지역의 국립대 비정규교수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전임교수단체와 잦은 충돌을 빚으며 총장 투표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북대 비정규교수들은 부산대나 경북대 등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총장선거에서 투표권도 행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학생들 앞에서 교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자괴감을 호소했다.
“어느 한 직종 아닌 대학 구성원 모두의 총장...1인 1표 참여 마땅”
실제로 경북대는 2020년 총장선거를 앞두고 비정규직 교수들이 '경북대 총장선거 공고 효력 저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등 총장선거에 비정규교수들의 참여를 위한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공립대 직원과 조교, 학생들도 2019년 국공립대 구성원 3만여 명의 '교육공무원법 개정 서명'을 받아 교육부와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지만 전임교수 중심의 총장 선거 구도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학본부는 “어느 한 직종의 총장이 아닌 대학 구성원 모두의 총장이기 때문에 모두가 투표에 참여해야 마땅하다”며 “1인 1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계속 밝혀오고 있다. 창원대 등 일부 국립대 총학생회도 직선제 의미 그대로 학생 1인당 1표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며,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전국 국립대 총장선거를 보면 대부분 전임교수 참여 비율이 압도적이다. 부산대는 2015년 11월 제20대 총장선거를 전체 정규직 교수 87.4%, 직원 대표 9.6%, 조교 대표 1.6%, 학생 대표 1.3% 비율로 치렀다. 비정규직 교수는 투표권이 없었다. 학생과 직원은 투표권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했었지만, 교수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7년 제8대 총장을 선출한 군산대는 전체 교수(340명) 100%에 비해 교직원 16.3%, 학생 2.7% 비율로 투표를 실시했다. 전북대는 2018년 제18대 총장선거에서 교수 82.17%, 직원·학생·조교 등 비교원 17.83% 비율로 투표를 실시했다. 국립대들의 이러한 비율과 달리 강원상지대(사립)는 2018년 12월 직선제로 총장선거를 치르면서 참여 비율을 교수 70%, 학생 22%, 직원 8%로 결정해 학생들의 참여 비율이 국립대들 평균보다 높아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같은 교원인 시간강사에게도 총장 선출권 보장하라”...확산 분위기
이에 지난 2020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경상대분회는 “교원인 시간강사에게 총장선출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해 시선을 끌었다. 이들은 “2019년 8월 개정 시행된 고등교육법(강사법)에 따라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획득했지만 경상대는 강사의 총장선거권, 대학평의원회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전임교수회와의 면담, 대학본부와의 단체협상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같은 행태가 강사를 교원으로 규정한 고등교육법에 위배되며, 강사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경상대 총장과 대학평의원회 의장에게 "▲총장선출권, 대학평의원회 구성 관련 학칙과 규정이 고등교육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근거 제시 ▲강사의 대학평의원회 참여 보장 ▲총장선출 투표권 보장"을 요구해 다른 대학들에도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북대 19대 총장선거 11월 23일 확정...전임교수 투표 참여 비율 70%
한편 국공무원노동조합 대학본부(본부장 양주용)는 올 7월 22일 충북 충주시 한국교통대학교에서 '국립대학 총장선거 1인 1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직원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총장선거 방식 도입을 요구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민주적 총장선거권 쟁취하자", "민주적이고 평등한 총장선거 1인 1표 쟁취"라고 외쳤다. 특히 일부 참가자들은 '교수 기득권'이라는 글씨가 적힌 얼음을 깨트리며 결의를 높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다른 지역과 달리 비정규교수들의 총장선거 참여 요구 및 투쟁이 없는 전북대의 경우 차기 총장선거일은 11월 23일로 확정됐다. 전북대 올해 총장선거에서 결정된 투표 비율은 교수 70%, 직원(조교 포함) 20%, 학생 10%다. 교수들 중에는 비전임교수가 배제됐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 대신 전임교수들 사이에서 총장 후보자들의 무절제한 행동 자제와 책임지는 자세를 촉구하는 쓴소리가 나왔다. 전북대 장준갑 인문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20일 전북대신문 ‘수요세평’에 ‘차기 총장 선출에 대한 제언’이란 기고의 글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정치판 무색, 출마 교수들 떨어져도 보직 맡아"..."그들만의 선거·축제"
"정치판을 무색하게 하는 총장 지원자들의 무절제한 행동"을 비판한 장 교수는 "아직 공식적인 선거 운동 기간도 아니고 후보자의 자격도 얻지 않은 사람들이 단지 자신이 총장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교수 연구실을 방문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유권자들에게 골프, 식사, 술 등을 접대하는 등 도저히 교육자로서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 교수는 "총장에 출마한 사람은 해당 임기 동안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지난번 선거에서 보듯이 몇몇 후보자가 선출된 총장 밑에서 부총장, 처장 등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는 폐해는 우리 대학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외부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점에서 대학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장 교수는 ”책임자들은 합당한 규정을 제정해 총장 선출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지만 절반의 대학 강의실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총장선거에 단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하는 전북대 비정규교수들에겐 여전히 ‘그들만의 선거’, ‘그들만의 축제’로 들릴 뿐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