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는 매력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10-10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욕은 다른 어떤 열정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고대 로마 시대의 역사가이자 정치가 타키투스(Cornelius Tacitus, 55-117)의 말이다. 그는 “권력에 대한 욕망은 모든 정열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지만, 다른 어떤 열정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킨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억제할 수 있겠는가.

“지배 권력만큼 인간 심성을 만족시켜주는 건 없다.” 영국 작가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의 말이다. “권력에는 매력이 있다. 알다시피 도박과 돈에 대한 탐욕 못지않게, 권력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의 말이다.

“권력의 소유는 인간의 모든 유혹들 중에서 가장 큰 유혹이다.” 독일 역사가 게르하르트 리터(Gerhard Ritter, 1888-1967)의 말이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에서 “개인이 대의(大義)나 공동체에 헌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때조차도 권력에의 의지는 여전히 갖고 있다”고 했다. 

권력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렇다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피를 끓게 할 수 있다는 권력을 가진 권력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위험한 전쟁터를 취재한 여성 종군기자이자 공격적인 인터뷰로 유명한 이탈리아 언론인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 1929-2006)는 세계의 수많은 권력자를 인터뷰한 후에 권력자들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대체로 교양도, 지식도, 철학도, 세계관도, 인내심도, 가정교육도, 감성도, 지성도, 윤리관도 일반인보다 낫지 않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거대한 탐욕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끝없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늘 위험하다.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1951-)은 [승자의 뇌: 뇌는 승리의 쾌감을 기억한다](2012)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위험들 가운데 하나는 권력욕이 강한 지도자가 한 차례 승리를 거둔 뒤에 그의 혈액에 분출되는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발생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호르몬 분출은 매우 유독하다. 산악인이 보다 높고 보다 위험한 코스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은 승리가 촉발해줄 화학적 도취 상태를 열망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모든 도취가 다 그렇듯 그다음 차례의 자극은 지난번보다 더 강력해야만 동일한 효과가 발휘된다.” 

권력자와 주변인들 

권력자의 화학적 도취 상태를 강화시키는 건 권력자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이다. 언론인 김민배는 <신권력자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부 기자로서 권부(權府)의 실력자들을 보면서 ‘권력의 두 얼굴’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면서, ‘세속적인 권력의 모습들’을 묘사했다. 그는 다음 6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권력자에겐 ‘손님’이 많았다. 둘째, 권력자에겐 늘 사람이 따라다니거나 기다린다. 셋째, 권력자의 책상엔 이력서가 많이 쌓인다. 넷째, 권력자는 전화가 여러 대다. 다섯째, 권력자 주변엔 아부하는 사람이 많다. 여섯째, 권력자는 누구에게나 전화해도 콜백이 금세 온다. 

15년 전에 쓴 칼럼이지만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무엇보다도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람들의 연락과 발길이 끊길 때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이 사라졌음을 깨달으면서 고독과 허무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카피라이터 정철이 [사람사전](2020)에서 내린 ‘권력’의 정의가 가슴에 와 닿는다.

“쥐면 놓기 싫은 것. 놓치면 다시 쥐고 싶은 것. 다시 쥐고 싶어 평생 주위를 맴도는 것. 그러나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 허무한 것. 허망한 것. 어쩌면 헛것.”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