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빨치산의 비밀 코드를 가진 '혹부리 소나무' 이야기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79)

2022-09-09     김용근 객원기자

70여년 전 지리산 백성의 기억을 꺼내본다. 바로 지리산 빨치산의 비밀 코드를 가진 혹부리 소나무 이야기가 그것이다. 지리산 구전자원 조사에 가장 조심스러운 것은 빨치산 이야기였다. 

70여년 전의 실체가 생존 어르신들의 기억에서 갑과 을로 존재하고 그것은 이웃 모두에게 큰 트라우마이기 때문이다. 치유제 없는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당시 당사자이신 어르신들의 기억을 꺼내 달라는 것은 일상적인 구전 조사의 무게와 크기가 다르다.

나는 당시 지리산 빨치산 길 안내원으로 활동했던 세분의 어르신과 많은 면담에서 당시 실생활의 이야기를 채록했다. 그 중 하나를 꺼내본다. 나무가 있다. 지리산 주천면 고기리에 300년의 세월 동안 자리한 소나무다.

원래 이름은 지리송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혹부리 소나무로 개명을 받았다. 지리송도 혹부리 소나무라는 이름도 모두가 사람들로부터 얻는 이름이다. 나무에 혹이 달렸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름의 속살에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민초들의 아픈 상처가 들어 있다.

50년대 초 지리산에 이웃과 친척이 적과 아군으로의 생존을 위한 운명을 가져야 했던 일이 생겨났다. 어떤 이는 협조자의 부역으로, 어떤 이는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민정 경찰로, 어떤 이는 빨치산 길 안내자로, 어떤 이는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정보원으로 살아야 했다.

그 삶은 지리산 빨치산 때의 일이다. 국군에 협조했다는 양민을 묶고 총살했던 그 현장의 흔적은 지금 오직 이 혹부리 소나무뿐이다. 먹을 것을 구하러 내려왔던 빨치산들은 마을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빨치산 내부의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과의 내통으로 사전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빨치산들은 식량이 바닥나자 밤에 마을로 내려가 소를 끌고 오려고 했다. 이러한 정보를 빨치산 길 안내자가 알고 마을에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소를 데리고 경찰 치안대가 있던 운봉 소재지로 피신했다. 빨치산들은 자신의 정보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는지 색출에 나섰고 길 안내자를 지목했다.

끝까지 모른다고 버티던 길 안내자는 누구라고는 지목하지 않고 지리송나무 가지 가운데에 돌을 세 개 얹어 놓으면 소를 잡으러 간다는 암호이고, 두 개를 얹어 놓으면 식량을 약탈하여 간다는 것이며, 한 개를 얹어 놓으면 청년들을 징발하러 간다는 표시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빨치산들은 길 안내자의 자백을 듣고 며칠 후 마을의 청장년 3명을 데려다가 이 소나무에 묶고 무조건 총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일에 밀고와 죽임을 당했던 자들의 실명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던 어르신은 나에게 그 때의 상황을 아주 세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날 마을 청장년들은 그렇게 운명을 달리했고 총알은 소나무에 박혔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영혼은 이 소나무에 들었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혹을 내어 알렸다. 세월은 그 소나무의 총알 상처를 덮으려 혹을 내었다. 사람들은 그 이후로 이 소나무를 혹부리 소나무라고 불렀다.

억울한 사람의 영혼을 몸에 들이고 살아가던 혹부리 소나무는 이제 누군가의 영혼과 만남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도망가라고 했고, 누군가는 잡혔다. 그리고 죽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다. 왜 죽이고 죽어야 했는가? 왜 소나무는 총을 맞아야 했는가? 사람들은 그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제 그 때의 사람들도, 그 혹부리 소나무도 백골이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이 그 사람의 영혼들도, 혹부리 소나무도 또 한번 죽인 것이다. 상생의 길을 포기한 개발이 앞서는 결과였다. 지금 그 모두는 우리가 이야기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소나무 혹에는 돌고 도는 메아리가 있다. 그 메아리는 지리산의 소리다. 추석이 돌아오면 그때의 일이 더 괴롭게 한다며 눈시울을 적시던 어르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관광자원은 이야기를 지키는 것이고 관광산업은 우리의 영혼이 내는 이야기를 파는 것이다. 아픈 역사의 치유제는 현장에서 마음으로 들이는 실체에 있고 사람을 부르는 것이 문화이니 그렇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