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처럼 굴지 말라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경험은 소중한 대접을 받는 자산이다.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이 무수히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영리해진다.” “경험이 최상의 스승이다.” “경험은 지혜의 어머니다.” “배움 없는 경험이 경험 없는 배움보다는 낫다.”
미국 정치가이자 발명가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경험은 소중한 학교다. 그러나 바보들은 경험에서 배우지 않으며, 경험도 부족하다. 우리는 바보들에게 충고는 할 수 있지만 행동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경험을 현명하게 이용한다면 시간낭비란 없다”고 했는데, “현명하게 이용한다면”이란 전제가 마음에 든다. ‘현명한 이용’을 위해선 이른바 ‘경험의 덫’이라는 걸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경력자를 우대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경력자가 더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지는 못하며,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성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에 매몰된다.”
미국 경영학자 에릭 데인(Erik Dane)의 말이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브리지 게임의 고수들은 규칙이 바뀌면 바뀐 규칙에 적응하는데 초보들보다 더 애를 먹는다고 한다. 또한 경험이 많은 회계사들은 기존 규정을 무효화하는 새로운 세법이 적용되면 초보 회계사들보다 일을 더 서투르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면 이미 존재하는 지식의 포로가 된다는 이야긴데, 일반적으로 특정 분야에 대해 보통 정도의 전문성이 있을 때 과감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가장 열린 사고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1996년 한 무명 여성 작가가 대략 9만 단어에 달하는 장문의 원고를 영국과 미국의 주요 출판사 12곳에 보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출판사들은 모두 다 퇴짜를 놓았다. 작가가 무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욱 중요한 건 이 작품이 당시 출판사들이 불문율로 여기던 경험칙들을 위배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적게 읽는 추세였음에도 이 원고는 평균적인 아동 소설에 비해 5만 단어나 더 길었다. 게다가 이 원고는 당시 유행하던 왕따나 이른바 ‘결손가정’과 같은 진지한 이슈를 다룬 소설이 아닌 본격적인 판타지물이었다.
나중에 이 원고에 관심을 보인 출판사는 아동 도서 분야에 뛰어든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신참이었다. 이 분야에 이렇다 할 경험이 없었기에 존중하거나 집착해야 할 원칙이나 불문율도 없었다. 이 신참 출판사의 편집자는 원고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리즈 중 처음 두 권을 단돈 2천 파운드에 살 수 있었으니, 사실상 위험 부담도 없었던 셈이다.
그간 퇴짜 맞는 데에 지쳤던 이 원고의 필자도 그 액수에 기뻐했지만, 정작 기뻐하고 놀랄 일은 이 책이 출간된 후에 일어났다. 세계 출판 역사상 손 꼽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대박 행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작품인가? 바로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총7권)다.
롤링의 원고를 거절한 출판사들에겐 당시 지배적인 불문율을 어겼다가 실패한 경험이 적어도 한두번씩은 있었을 게다. 좋지 않은 경험의 포로가 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는 걸 가리켜 ‘연상 편향(association bias)’이라고 하는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이 이와 관련해 멋진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어떤 경험으로부터 그 안에 들어 있는 만큼만의 지혜를 추출하고 그 이상은 추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는 다시는 그 위에 앉지 않았다. 그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차가운 부뚜막 위에도 다시는 앉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뜨거운 부뚜막 위에 앉았던 고양이처럼 굴지 않는 게 좋겠다. 영국 작가 알도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우리의 경험은 우리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연상 편향’의 함정을 지적한 말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자 칼리 도드(Carley H. Dodd)는 [문화간 커뮤니케이션론(Dynamics of Intercultural Communication)](1982)에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과거 경험에 의존하지 말라”고 했다. 적어도 문화간 커뮤니케이션에선 경험이 오히려 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우리는 늘 경험의 덫이나 한계에 유념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보자면 경험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로 인한 폐해가 훨씬 더 크다고 보는 게 옳을 게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우리는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했는데, 이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건 물론이고 아예 배울 뜻조차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