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는 해방인가?, 한반도 통일과 평화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2-08-15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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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일왕 히로히토는 포츠담에서 열린 연합군 측 회의 결과를 무조건 수용한다고 밝혔다(미국 날짜 8월 14일). 알다시피 그 며칠 전에 미국은 일본 땅에 핵 폭탄을 거듭 투하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핵폭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워싱턴에 있는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서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일본의 항복 소식이 전해진 날, 이날을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날로 기억한다. 침략전쟁의 원흉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후예는 이날을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저들의 압제에서 풀린 우리는, 그날을 “광복절”이라고 하며 북녘의 정부는 ‘민족해방 기념일’이라고 한다. 처지에 따라서 똑같은 날도 명칭은 제각각이다.

우리 선열들은 광복다운 광복을 위해 혼신(渾身)의 노력을 다했다. 여운형 등 국내의 민족지도자들은 광복 당일에 ‘건국준비위원회’를 꾸려, 조선총독부의 행정권을 인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이러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건국준비위원회’의 목적이었다. 그때 중국에 머물며 광복의 기쁨을 맛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 선생은 장차 보통선거로 뽑힌 선량(選良), 즉 국회의원들이 우리 임시정부의 전통을 제대로 잇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김구 선생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정의가 넘쳐흐르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들어서기를 소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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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광복은 껍데기뿐인 광복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내세워 미국과 소련 양국 군대가 한반도에 진출했다. 그 당시 미국은 이미 한반도의 분할을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 최종안이 바로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한 분할이었다. 이것은 훗날 미국 국무장관까지 지낸 딘 러스크 중령이 만든 형편없는 작품이었다.

미국도 소련도 일제를 한반도에서 쫓아낸 뒤, 그대로 주저앉아 한반도를 ‘신탁통치’란 이름으로 한동안 지배할 예정이었다. 그들에게 한반도는 일종의 전리품이요, 동북아시아에서 열강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저울대 같은 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한반도의 운명이었다.

이에 우리 한국인들은 이념을 초월하여 격렬히 저항했다. 그 마지막에는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 있던 남북한의 정치세력이 만든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그들은 저마다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는 유일한 주인이 되기를 꿈꾸었고, 이런 꿈이 충돌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했다(1950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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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7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조국 분단이라는 역사의 부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들이 남북한을 대화의 통로를 열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 아득한 전설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바로 그 광복절이다. 애국선열들이 애타게 바라던 광복은 현재 진행형에 불과하다. 아직도 참된 의미의 광복은 오지 못하였다. 이런 애처로운 세월이 계속되고 있으나, 역사의 참뜻을 모르는 ‘뉴라이트’가 벌레처럼 이 땅에 준동하고 있다. 친일을 당연시하고, 독재와 억압의 통치를 마치 역사의 영광이라도 되는 양 찬양하는, 반역사적인 인사들이다. 그들은 민주시민의 열망이 담긴 ‘광화문 광장’을 제멋대로 ‘이승만 광장’이라고 부르면서, 오늘도 무슨 대규모 집회를 거기서 열 모양이다. 시국이 이러하니, 한반도 통일과 평화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한반도의 안과 밖에는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군국주의 세력도 아직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에 제대로 된 평화를 이룰 때까지는 아직도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김구 선생과 여운영 선생 등이 소망한 새 나라, 참으로 민주적인 국가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는 시민의 한없는 정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