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화엄사에 활짝 핀 선홍빛 배롱꽃들...한여름 누굴 그리 애타게 기다리나?

[포토 에세이] 화엄사 배롱나무꽃 '만개' 현장을 찾아

2022-08-14     김미선 시민기자
지리산 정령치를 넘어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풍경. 

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화엄사에

붉은 배롱나무꽃들이 가득 내려앉아

묵언 수행이 한창이다.

갈 길 바쁜 여행자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한여름 붉은 선홍빛 저 꽃들은 

대웅전, 각황전 등 곳곳을

병풍처럼 에워싼 채

누굴 그리 애타게 기다릴까.

화엄사 입구에서부터 반겨주는 화사한 배롱나무꽃들.

남원 운봉과 주천을 지나 정령치를 넘어 노고단을 향해 구불구불 난 지리산 도로를 감아 돌아 천천히 한 시간 반쯤 내려가다 보면 천혜의 명당 자락에 우뚝 자리한 천년사찰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화엄사'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커다란 대웅전과 많은 스님들을 보고 신비로움과 웅장함에 놀라 몇 번이고 감탄을 자아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찰 내부를 환하게 해주는 한여름 배롱꽃.

지금도 여전히 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 천연기념물, 지방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와 수십여 동의 부속 건물들이 먼 발치에서부터 반겨준다.

100일 동안 피는 붉은 배롱나무꽃, 세파에 지친 영혼들 ‘위로’

천왕문 앞에도 배롱나무꽃이 '활짝'.

해마다 이맘 때면 붉은 선홍빛 배롱나무꽃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사찰을 가득 메운 울긋불긋 배롱나무꽃 너머로 파란 하늘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지게 펼쳐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든다. 

세파에 지친 영혼을 금세 맑게 해주는 일주문을 지나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 문수, 보현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게 된다.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고, 보제루는 다른 절에서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다르게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러면 곧 두 개의 탑이 사선 방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쪽 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대웅전, 그리고 서쪽 탑의 윗부분에 위치한 각황전이 나란히 지켜보고 서있다. 웅장함과 엄숙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불언'...동자승이 '나쁜 말을 하지말라'고 몸으로 가르킨다.

어딜 가나 붉은빛의 배롱나무꽃들이 더위에 지친 관광객들을 위로해 주는 경내 건물 중 각황전은 국보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이다.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한 외양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특히 화엄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귀여운 동자승 너머로 붉은빛의 배롱나무꽃들이 눈에 반짝 들어온다. 사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동자승 동상들이 한동안 시선을 붙잡는다. '불견', '불문', '불언'을 주제로 한 세 동자승과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가볍고 평화로워진다. 

다시 각황전 앞 뜰에 서있는 석등은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국보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황전 왼편 효대라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4사자 3층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가히 국보급이다. 

봄 벚꽃, 여름 백일홍, 가을 붉은 단풍, 겨울 하얀 설경...사시사철 신비로움 더해

동자승 뒷모습을 환하게 비춰주는 배롱나무꽃.

화엄사 경내 보물 가운데 대웅전 양편에 서있는 5층탑도 뛰어난 조형성과 섬세한 장식이 눈길을 끈다. 국립공원인 지리산의 훌륭한 경관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소와 절경이 산재해 있는 화엄사는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하동 등에서 주로 국도를 타고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화엄사의 봄은 3월 중순에 피는 홍매화를 시작으로 벚꽃, 철쭉, 능소화 등 끊임없이 꽃이 핀다. 여름에는 폭염 속에서도 배롱나무꽃들이 바통을 이어 받는다. 한여름 선홍빛 배롱나무 꽃물결에 이어 가을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이, 겨울에는 하얀 눈에 덮인 사찰이 웅장하고 신비로움을 더하게 한다. 

특히 한여름 붉은 빛을 발하는 배롱나무꽃들이 만개하는 화엄사 전경은 더욱 아름답다. 뜨거운 폭염이 시작되는 7월 초부터 배롱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기 시작해 초가을까지 100일간 꽃이 핀다고 하여 백일홍 또는 목백일홍으로도 불린다. 

 백 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백일홍' 

100일 동안 붉은 자태를 뽐내는 백일홍. 

폭염 속에 더욱 활짝 핀 배롱나무꽃들이 세파에 지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백 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이 꽃은 ‘배길홍’으로 바뀌고, 이것은 다시‘배기롱’을 거쳐 ‘배롱’으로 변해 배롱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인 백일홍 나무의 줄기는 매끈하고 껍질이 자주 벗겨진다. 꽃은 대개 붉은색이지만, 보라색과 흰색도 있다. 중국에서는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파양수(帕癢樹)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조차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으로 사루스베리(猿滑)라고 한다.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 지닌 배롱나무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을 지닌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오래 전부터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도 지니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어촌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았었다. 그런데 무서운 이무기는 해마다 마을에 내려와 처녀를 한 명씩 제물로 잡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는 제물로 바칠 처녀를 연모하는 한 청년이 대신 잡혀가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그 청년은 여인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는데, 마침 이무기가 나타나자 청년은 준비한 칼로 이무기의 목을 베었으나 세 머리 중 한 머리는 자르지 못했다. 

이를 본 마을 처녀는 청년의 용감함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더구나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평생 반려자로서 함께하자고 했다. 그러나 청년은 이무기의 나머지 목을 마저 베어야 한다며 배를 타고 찾아 나섰는데, 배를 타고 떠나면서 “이무기 목을 베는데 성공하면 하얀 깃발을 내걸 것이고,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폭염에 더욱 화사한 화엄사 배롱나무꽃.

그 후 처녀는 청년이 떠난 후 매일 빌면서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마침 백 일이 되는 날, 멀리서 청년의 배가 모습을 보였는데 불행히도 붉은 깃발을 걸고 있었다. 처녀는 청년이 이무기에게 당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깃발은 이무기가 죽으면서 내뿜은 피로 붉게 물든 것이었다고 하니 이런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정을 알 게 된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통탄하며 처녀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그 무덤에서 곱고 매끄러운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백 일 동안 붉은 선홍빛 꽃을 아름답게 피우다 졌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배롱나무, '세속적 욕망·번뇌 벗어 버리고 수행하라' 의미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벗어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배롱나무.

이런 배롱나무를 산사에 심는 뜻은 '출가한 수행자들이 해마다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처럼 세속적 욕망과 번뇌를 벗어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라'는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 지리산 자락의 천년고찰 화엄사의 백일홍이 매년 여름 밤을 밝히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이유도 수행자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화엄사는 한여름에도 야간에 산사를 찾는 수행자와 관광객을 위해 7월부터 8월 말까지는 밤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8월 31일까지는 매일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김미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