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결혼은 필요가 아니라 사치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08-08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애무로 지나치게 자극하여 아내가 쾌락에 겨워 이성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고 엄밀하게 아내를 다루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의 말이다. 오늘날에야 이게 웬 말도 안되는 개소리냐고 펄쩍 뛸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남자들이 명심해야 할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도 그런 남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내와의 정사로 얻는 쾌락도 절제되지 않으면 비난을 받는다. 그것은 부정한 교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도덕하며 방탕한 것이다. 색다른 흥분 때문에 우리가 사랑놀음으로 빠지기 쉬운 염치없는 과도한 애무는 아내에게 실례가 될 뿐만 아니라 해롭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그녀들에게 뻔뻔함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여자는 우리 남자들의 욕구에 따라 언제나 충분히 자극받을 수 있다....결혼은 신성하고 경건한 결합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얻는 쾌락은 신중하고, 진실하고, 다소 위엄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점잖고 양심적인 쾌락이어야 한다.” 

'결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 

뭘 그렇게 어렵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몽테뉴가 다른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툭 던진 말에 그의 결혼관이 잘 드러나 있다. “겉으로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후손을 위해서 결혼하는 것일 뿐이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도 그런 계보의 사상가였다. 그는 “결혼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좇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결혼의 유일하고 진정한 목적은 개체가 개체를 생산하는 것이고 그들에게도 생소한 이 목적은 오직 결혼을 해야 성사될 수 있기에 당사자들은 이를 함께 추구하면서 될수록 서로 원만하게 지내려 노력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정열적 사랑의 본질인 본능적 광기에 빠져 합쳐진 한 쌍은 서로 성격이 판이할 때가 많다. 그래서 죽도록 강렬했던 눈먼 상태가 마침내 먼지처럼 사라지는 날이 오고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은 대개 불행하게 막을 내린다. 다만 결혼을 통해 맺어진 지금 세대가 그런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존속할 것이다. ‘사랑에 빠져 결혼한 사람은 고통스럽게 살게 된다’라는 스페인 속담도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결혼관도 비관주의에 가까웠다. 그는 “결혼은 단지 문화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노예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으며, “결혼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 이상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서로의 소유물로 여기도록 만든다”고도 했다.

이후에도 결혼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인 명언들은 무수히 많이 나왔지만, 그건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아니 결혼은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의 산물일 뿐이다. 미국 여성의 참정권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운동가 수전 앤서니(Susan B. Anthony, 1820-1906)는 “결혼은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필요가 아니라 사치여야 한다. 여성의 삶에서 전부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일 중 하나여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날엔 그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결혼은 정말 사치가 되고 말았다.

소득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 된 '결혼'

특히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서 그렇다. 2022년 4월에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18세 여성 10명 중 3명만 결혼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여성은 34.6%, 남성은 54.4%)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2022년 대한민국 젠더 의식 조사’에선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10대(16~19세)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9.3%)도 안 됐고, 자녀를 갖고 싶지 않다는 응답률은 31.2%로 또래 남성(8.8%)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2022년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성역할 가치관과 결혼 및 자녀에 대한 태도’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에 동의하는 비율은 남성은 12%, 여성은 5%에 그쳤다. 결혼을 포기한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아기한테 미안해서 결혼 못 하겠어요.”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거의 대부분 돈 문제로 귀결되었다.

2016년 노동사회연구소의 '저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 하위 10%에 속한 20~30대 남성이 결혼한 비율은 6.9%로, 임금 상위 10%(82.5%)의 12분의 1에 불과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남성의 결혼 비율은 100%, 석사 66.6%, 대졸 47.9%, 고졸 39.6%였고 중졸 이하는 35.4%로, 학력이 높을수록 결혼 비율이 뚜렷하게 높았다. 정규직 남성(53.1%)도 비정규직(28.9%)의 두 배에 가까웠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그린우드(Jeremy Greenwood)는 2014년 “동류교배(assortative mating), 즉 고학력자끼리 결혼하여 고소득을 올리는 경향으로 인해 결혼이 소득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것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결혼이 가진 자의 특권이 되어가고 있는 문제에 비추어 보면 비교적 한가한 고민이라는 게 우리가 당면한 비극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