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백승종의 서평: 토텐탄츠와 바도모리 - 중세 말 죽음의 춤 원형을 찾아서
서장원 교수님의 귀한 책, <<토텐탄츠와 바도모리 - 중세 말 죽음의 춤 원형을 찾아서>>(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637, 아카넷, 2022)
한 마디로 이 책은 우리 시대 최고의 명저(名著)입니다. 서장원 교수님은 서양 중세를 연구하시는 분이죠. 독문학을 바탕으로 중세의 철학과 민속학을 오랫동안 탐구하였습니다. 이 책만 하여도 서 교수님이 유학하던 시절 어느 세미나에서 만난 주제를 끝끝내 놓지 않고 다방면으로 탐구한 결과입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탁월한 한 사람의 학자가 평생을 연구해서 얻은 정금(正金, 순금)과도 같습니다.
서 교수님의 책은 그 전체가 한편의 문학작품이기도 합니다. 글이 아름답습니다. 뜻이 깊으면서도 문장이 격조 높고 정제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가끔 죽음들끼리 윤무를 추기도 하지만, 죽음들의 윤무가 벌어지는 그곳에도 항상 인간은 전제되어 있다. 아무리 죽은 자들끼리의 춤이라고는 하지만 죽은 자는 산 자의 변형이고, 산 자는 죽어가야 할 ‘죽음의 후보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산 자 없는 죽음의 춤은 없다. 다시 말해 죽음의 춤은 산 자로 인해 기인한 것이고, 이 때문에 산 자를 위한 행사이다.”
서술하는 내용이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얼마나 짜임새가 있고, 또 멋이 있는지요. 서장원 교수님은 누에가 뽕잎을 잘근잘근 씹어서 비단 실로 토해 놓듯, 서양 중세의 사유방식을 순전한 우리말로 경쾌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얼마나 귀한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조금 따지고 들어가서 살펴보면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더욱더 깊고 커집니다. 서장원 교수는 놀랍게도 근대적 사유를 배제하고, 중세적 사유방식을 자신의 연구 관점으로 삼습니다. “토텐탄츠(죽음의 춤)”라는 문화적 현상에 주목하여, 서 교수님은 “중세 말”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죠. 이 책을 읽노라면 중세 말이 유럽의 역사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르네상스를 근대의 전령사로 강조하는 데 익숙하죠. 그런데 서장원 교수님의 이 책을 가만히 살펴보면 르네상스와는 무관하게 중세 말에 전개된 문화적 변화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한 마디로, 중세 말에 시작된 “죽음의 춤”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된 유럽의 정신과 문화의 토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 교수님은 “죽음의 춤”을 그 기원도 살피고, 그것이 발생한 여러 가지 배경을 살핍니다. 그리고 그것이 본래 예술적으로 어떠한 뜻을 가졌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광범위하게 분석하였습니다. <중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방면에 걸쳐 “죽음의 춤”이란 현상과 그 본질을 천착(穿鑿)하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성천금석(誠穿金石)”이란 옛 표현이 생각났어요. 우리가 정성을 다한다면 쇠도 뚫고 돌도 뚫는다는 뜻이지요. 끝으로, 책의 본문에서 두 대목을 인용합니다. 여러분도 조용히 이 말씀의 뜻을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세 말의 토텐탄츠(죽음의 춤)를 처음 접하게 되면 섬뜩하다. 그리고 신비롭다. 그런데 바라보기만을 멈추고 토텐탄츠 속으로 들어가면 죽은 자가 산 자이고, 산 자가 죽은 자인 세상에 서게 된다. 이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 인간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항상 맴돌던 죽음이 현실화된 공간이다.”
“잘 죽기 위해 죽음의 춤은 남녀노소나 지위고하의 차이도 없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통과하여야 할 운명적인 사건이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