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노인이 안고 가기에는 초라한 가치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08-01     강준만
강준만 명예교수

개인을 뜻하는 영어 individual은 어원상 in-dividuum, 즉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개체를 뜻한다. 이런 어원이 시사하듯이, 개인주의(individualism)란 사회나 집단의 이익에 우선하여 개인에게 주요한 의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individuality(개성, 특성,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현대사회가 모든 악 중에서 가장 흉측한 악, 개인주의를 창조했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가 1839년에 한 말이다. 유럽에서 개인주의는 보수주의자는 물론 공산주의자들로부터도 맹공격을 받았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58)은 “혐오스러운 개인주의 대신 매력적인 단결”을 주장했고, 프랑스의 초기 공산주의자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 1805-1881)는 “공산주의는 개인의 보호자이나 개인주의는 개인을 말살시킨다”고 주장했다.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은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마저도 개인주의를 본질적으로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만인에 대해 벌이는 경쟁”으로 보았다. 

‘나’와 ‘우리’ 

이렇듯 개인주의는 유럽에선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지만, 집단적 억압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와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미국에선 시민 종교의 위상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개인주의는 미국적 삶의 위대한 좌우명이다”고 선포했다. 사회학자 허버트 갠스(Herbert J. Gans, 1927-)에 따르면, “지난 150년 동안 미국에서는 많은 것들이 조금씩 변해왔다. 변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는 모든 국민들이 끊임없이 개인주의를 선호해 왔다는 점이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개인주의의 인기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곤 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자 범교파적 주교들의 위원회는 이런 진단을 내놓았다. “사회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은 잘못된 것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것은 경제적 사실주의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기독교적 이상주의의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강건한 개인주의에 대한 우리의 근본 철학은 협력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수정되어야 한다.”

역사가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 1874-1948)는 1931년에 발표한 “강건한 미국 개인주의의 신화”라는 글에서 “냉정한 진실은 이런 것이다. 각자도생하고 악마는 낙오자를 잡아간다는 개인주의적 사상이 서구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주범이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거세게 분출한 1960년대에 백인들이 주도한 미국 문화는 다시 ‘우리’에서 ‘나’로 나아가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와 관련 사회학자 메리 잭먼(Mary Jackman)은 이렇게 말한다. “백인은 개인주의의 이념을 옹호하게 되었다. 그것이 흑인들을 돕는 여러 정책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원칙에 입각한 중립적 정당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1976)에서 “‘개인주의’는 긍정적 의미에서는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만 부정적 의미에서는 ‘자기소유’를 의미한다. 즉 자기의 에너지를 자신의 성공에 투자할 권리—그리고 의무—를 의미한다“고 했다. 오늘날 보수우파는 전자의 의미에 치중하는 반면 진보좌파는 후자의 의미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각자도생’과 ‘상호의존’의 차이 

정치학자 마이클 파렌티(Michael Parenti, 1933-)는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the Few)](1977)에서 “우리의 개인주의를 도덕, 정치, 문화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라고 오해하면 안된다”며 이렇게 말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별 개성 없이 모두 비슷한 방식과 방향으로 행동한다....우리의 개인주의는 ‘민영화, 사유화’를 의미하며, 이는 생산, 소비, 오락 등의 활동에 공동체 의식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노년기까지 안고 가기에는 초라한 가치다.” 페미니스트 작가 마거릿 크룩생크(Margaret Cruikshank, 1940-)가 [나이듦을 배우다: 젠더, 문화, 노화](2013)에서 한 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건 사회적 차원에서건 노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상호의존인데, 이걸 가로막는 게 개인주의의 자립 이데올로기라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현대 미국의 자립 개념에 맞추어 살려고 한다면 결국 말년에 가서 심리적으로 심각한 이상 증세에 시달릴 것이다.”

이념의 좌우를 떠나 한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크룩생크의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어찌 보자면 개인주의는 청춘의 특권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보라. 한 개인으로서 모든 면에서 당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육체는 수시로 이상 신호를 보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간 소중히 간직해오던 모든 개인주의적 가치가 흔들리기 십상이다. 역시 ‘각자도생(各自圖生)’보다는 ‘상호의존(相互依存)’이 더 낫다는 평범한 진실을 새삼 음미하게 될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