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들의 기(氣) 다스름 술 소리청 '목혈주' 이야기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73 )
지리산 소리꾼들은 평생동안 자기 관리로 소리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그러니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생활습관이 생겨났고 그것은 소리꾼들의 문화가 되어 제자에게 소리의 구전심수(口傳心授)와 함께 상속되어 왔다.
그 중 하나가 소리꾼들의 술 목혈주다. 소리꾼들은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오장육부의 기운이 들고나면서 크거나 작거나 떨림 같은 소리를 작동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 소리 수련을 통해 오장육부가 가진 기(氣)의 자유자재 활용법을 터득해내는 것이 득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포나 토굴에서 수련을 했고 거기에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했는데 술은 소리꾼의 몸에서 돌고 도는 기를 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술은 자연에서 기를 받은 것이어야 했다.
오늘은 소리꾼들의 오행 기다스름 술 목혈주(木穴酒) 이야기이다. 마을 주변의 오래된 고목나무에는 구멍이 생겨났다. 나무 속이 썩어 구멍이 생기면 나무는 껍질을 두껍게 해서 생존해 나갔다. 그 나무 구멍으로 뱀이나 새나 쥐 같은 것이 살기도 한다.
소리꾼들은 길다란 술독에 술을 담가 너삼뿌리를 넣고 내린 술을 항아리에 넣고 입을 막아 놓는다. 그 술항아리를 집 뒤의 동산 오래된 고목나무 속이 빈 구멍에 넣고 황토로 나무 구멍을 발라 막아 놓는다.
그러면 고목나무에 들고나는 자연의 기가 술에 배여 들어 술이 순화되고 그 술이 내는 자연의 기운을 가진 술을 애용했다. 나는 소리꾼 후손을 면담 구전의 이야기를 조사하던 중 그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더 들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소리꾼들이 소리마당에서 소리를 하게될 때면 빠지지 않은것이 하나 있었다. 술상같은 것에다 술병이나 주전자 그리고 잔을 옆에 두고 소리를 했다. 나는 그것이 목이 마를 때 먹으려던 물 인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도수를 낮춘 목혈주였다고 한다. 강장제 역할을 하던 너삼의 약초뿌리를 넣어 고목나무 속에서 발효시킨 술에 물을 약간 희석시켜 소리할 때 목이 마르면 마셨다는 목혈주라고 하셨다. 그것을 마시면 목도 축여지고 힘도 나게 된다고 하셨다.
내가 어릴때 논갈던 소가 지쳐 보이면 막걸리 주전자에 너삼뿌리를 찧어 나온 즙을 넣어 소에게 먹이면 소가 기운을 차리고 큰소리로 '음메' '음메' 하며 신나게 논갈이를 마치던 생각이 났다. 선조들이 낸 최고의 혁신상품 중 하나인 조선의 소통체 판소리 속살에 세계문화유산의 가치가 산다.
판소리가 한국의 문화 종합 세트인 이유다. 소리꾼이 철드는 때는 득음이고 백성들은 그때부터 명창이라고 부른다. 그 세월에 든 모든 것이 판소리 문화다. 지역의 다양한 문화강좌에 고을의 문화일을 하는 봉임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일들이 백성들의 상상대로 결과를 내어 왔음이 자기 수준의 고백으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붙들고 사는 서글픈 운명에 산다.
조상에게 상속 받아온 문화가 고을만의 색깔을 내는 디자인의 재료일진대 천년의 이야기 한토막 제대로 몸에 들이지 못한채 고을을 세상으로 내보낼 사업의 붓을 들고 휘젖는 일들이 백성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용감한 무식의 테러가 아니고 무엇이리.
춘향 이야기를 내고 그것을 소리꾼들의 상품 판소리 유통으로 조선팔도로 나아가게 했던 고을 브랜드의 창출사례라도 인지해야 작은 문화사업의 일일지언정 고을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리오.
판소리 고장의 판소리 문화 활용을 고을의 세계 도시브랜드 창출의 요소가 되게 하는 고민이 없음도 고을 쇠락의 한 단면이리라. 오늘은 소리꾼들의 애용주 목혈주를 만들어 보는 날이다. 비 마저 나를 응원 중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