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07-25     강준만
강준만 명예교수

“역사 거의 내내 인류의 대다수가 극심한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미국 정치학자 롭 라이히의 말이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클라크는 “1800년에 살았던 평균적인 사람들의 삶은 기원전 10만년에 살았던 평균적인 사람들의 삶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고 했고,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은 지난 200년의 역사를 빈곤으로부터의 ‘대탈출’이라고 묘사했다.

집단적 인류의 차원에선 지난 200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겠지만, 인류 내부의 빈부격차 문제로 들어가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오히려 대다수가 굶주렸던 시절보다 더 격렬한 갈등과 싸움이 벌어진다. 이 갈등과 싸움은 주로 가난의 원인을 놓고 이루어졌다. 

성격과 인품 그리고 가정 

마거릿 대처는 영국 총리가 되기 5개월 전인 1978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날 이 나라에 근원적인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구 사회에 남겨진 문제는 가난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어떻게 투자할지, 수입을 어떻게 지출할지 몰라서 생기는 가난은 있다. 하지만 가난은 정말 근본적으로 성격과 인품의 결함일 뿐이다.”

2010년에서 2016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데이비드 캐머런도 가난에 대한 보수당의 전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가난이라든가 사회적 배제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마치 비만이나 알코올 남용, 마약 중독 같은 것들이 순전히 전염병이나 나쁜 날씨처럼 외부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외부적 환경—어디서 태어났고, 이웃이 누구이며, 학교는 어디를 다니는지와 같이 여러분의 부모들이 만들어준 것—이 중요한 영향을 끼치긴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란 많은 경우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캐머런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의 대부분이 가족의 안정에 연관되기 때문에 가정 문제는 중요하다”며 “아이들의 가능성은 보호자의 재력이 아니라 양육의 포근함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왜 빈곤의 종식이 어려운가 

반면 미국의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빈곤 퇴치 운동가 피터 에델만은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왜 빈곤의 종식이 어려운가](2013)에서 “사실상 최상층의 경제력과 정치권력은 최하층에 지원할 자원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과거에 이렇게 믿었죠. 부의 분배에 대한 논의는 빈곤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빈곤퇴치 옹호자들이 ‘계급투쟁’에 가담한다는 식의 공격을 받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두 문제를 별개로 볼 여유가 없습니다.”

분배와 빈곤이 동시에 다뤄져야 한다는 건 백번 옳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분리하고 싶어한다. 빈곤에 대한 염려의 표현은 내 주머니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지만, 분배의 문제로 들어가면 내 주머니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법률적 지뢰가 묻힌 지뢰밭이다.” 

미국 언론인 맷 타이비가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2014)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변호사들을 동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타이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통하는 사기의 개념은 월스트리트에서 통하는 사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난이 죄가 되게끔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공적 부조를 받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생활 형편에 관해 장문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보고서에 상세한 개인 정보를 포함시켜야 한다. 이 사람은 평생토록 그가 신고한 생활 형편과 실제 생활 사이의 차이점을 찾으려는 은행 직원과 사회복지사, 관할 검찰청 직원, 심지어는 이웃 사람들과 교통경찰관의 감시 대상이 된다....공적 부조를 받는 가난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사기가 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타이비가 지적한 것처럼, 가난은 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심이, 그리고 부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비굴하게 굽실거리는 감정이 있다.” 이렇듯 가난이 죄가 되게끔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2001년 노벨상 100주년 기념식에서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내놓은 다음과 같은 ‘노벨 경고(Nobel Warning)’에 귀를 기울여보는 게 좋겠다.

“미래 세계의 평화에 가장 심각한 위험은 국가나 개인의 비이성적인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의 합당한 요구에서 비롯될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