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향기 가득한 덕진 연못...나를 깨우는 '처염 상정'
한여름 연분홍 물결, 전주 덕진공원 '홍련'에 푹 빠지다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해가 질 때쯤이면
연꽃들이 오히려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어보기도 한다.
정호승 시인의 ‘연꽃 구경’을 절로 떠오르게 하는 바야흐로 '연꽃의 계절'이다. 무더운 여름 진흙 속에서도 티 없이 피어난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연꽃을 보면 어느새 왠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절로 머문다.
둥근 꽃봉오리를 보면서 활짝 피었을 때의 꽃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는 여유를 갖고 봐야 연꽃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꽃 보는 마음보다 꽃 그리는 마음이 더 절절하다(想花心比見花深)는 옛 시인의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도 칭송한다.
온갖 변덕 부리는 날씨에도 늘 잔잔하고 투명
한여름 우르릉 쾅쾅대며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도 의연히 받아들이는 연꽃 옆에는 연잎과 연대가 푸른 우산이 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수시로 낯빛을 바꿔가며 온갖 변덕을 부리는 날씨에도 덕진 연못은 늘 잔잔하고 연꽃은 밝고 투명하다.
연못 저편에 듬성듬성 서있는 길쭉한 건물들이 낯선 이방인들처럼 보이지만 연꽃 선홍 물결은 이마저도 아름다운 수채화 속으로 끌어 안는다.
완연한 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이 무렵 늘 덕진공원 연못에는 붉은 홍련이 피어난다. ‘나를 깨우는 연꽃 향기’는 8월까지 속세의 군상들을 유혹한다.
한옥 도서관 ‘연화정’서 연꽃을 바라보는 정취 ‘일품’
무더위에 더욱 선명한 선홍빛 연꽃이 절정을 이루는 넓은 연못. 빈틈없이 빼곡히 덮은 연꽃 물결 속을 찬찬히 내려다보면 꽃대를 타고 연분홍 꽃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 금세 입을 맞출 기색이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 가운데에 새로 자리 잡은 한옥 건물 이름도 연꽃을 닮은 ‘연화정’이다. 운치 있는 쉼터를 갖춘 한옥 도서관인 연화정에서 연꽃을 바라보는 정취도 일품이다.
전국의 풍광 좋은 곳은 다 찾아다닌다는 사진 작가들과 연꽃 마니아들이 해마다 이맘 때면 홍련 물결 가득한 덕진 연못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눈웃음을 나눈다. 절정의 연꽃과 연꽃 향을 놓칠 리 없다.
생태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어우러진 한국 전통 정원으로 새 단장한 전주 덕진공원 내 연못 속에서 피어난 연꽃 향과 정취는 무더위가 절정을 넘어가는 8월 까지 이어진다.
'홍련에 빠지다’ 매년 여름 연꽃문화제 개최
해마다 이 곳에선 ‘연꽃 문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16일과 17일 이틀 간 ‘홍련에 빼지다’란 주제로 문화제가 열렸으나 연꽃은 이제부터 약 한 달 동안 장관을 이룬다.
덕진연못 홍련은 지난 1974년 식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한 연분홍빛에 어른 머리만한 크기로 한여름 내내 넘실댄다.
이곳 덕진 연꽃 무리는 세속에 찌들고 지친 영혼들을 달래준다. 특히 나를 깨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더욱 반기는 듯하다.
속세를 탈출해 잠시 고즈넉한 연꽃 풍경에 취해보려거든, 풍파에 찌든 나를 깨우려거든 지금 당장 덕진 연못으로 발길을 재촉해 보는 건 어떨런지.
/글·사진=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