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의제로 부각되지 못하는 '지방분권'...선거 후에도 ‘없던 일’ 치부"
[지방부활시대(59)] 지방분권 대선 공약
민주화 이후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이제 당연한 정치과정으로 자리 잡았고, 보수와 진보 후보들이 번갈아 대통령직을 차지하면서 대한민국도 명실상부한 민주국가의 외양을 갖추었다. 지난 20대 대선 후보자들은 생김새만큼이나 공약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였다. 경제, 안보, 외교 등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 모두 크게 달랐다.
보수, 중도, 진보 등 지지 기반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서로 대비되는 공약을 제시하고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했다는 점에서 보다 수준 높은 선거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방분권이 아직은 대선 의제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대선 공약 중 후보자들 간 큰 차이나 우열이 없는 분야는 ‘지역균형’ ‘지방분권’ 공약...왜?
상대 후보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모든 선거의 기본 전략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우열’이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도 기본이다. 자신이 상대 후보보다 인품, 경력, 공약 등 모든 면에서 더 우수한 후보라고 홍보하는 것이 선거운동이다. 그런데 선거는 장차 일어날 미래를 예상하고 약속하는 것이기에, 후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출중한 능력을 부각시키기가 쉽지 않고 입증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 후보자들은 경쟁자와의 우열을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라는 방식보다, “저 사람이 나만 못하다”라는 선거 전략이다. 나의 능력과 장점보다는 경쟁자의 무능력과 단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전 국민이 시청하는 TV토론 중에도 후보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공약을 강조하기보다는, 상대 후보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이유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한결같이 ‘국민통합’을 강조하던 후보들이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국민통합‘을 가장 앞서서 가로막는 사람들로 바뀌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대 대선 공약 중에서 후보자들 간 큰 차이나 우열이 없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지역균형’ ‘지방분권’ 공약이다.
각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국세와 지방세 간의 불균형 해소, 자치 단체의 입법권과 자치역량 강화, 자치경찰제 도입,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 등은 모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시행하겠다는 공통된 공약이다.
언론들 '지방분권' 의제 외면... 선거 의제로 부각되지 못해
그런데 대선에서 지방분권은 주요 의제로 등장하지 못한다. 공약 간 차별성이 없어, 상대방 후보의 지방분권 공약을 비판하거나 깎아내릴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은 지방분권을 대선 의제로 인식하거나 관심을 갖지 못한다. 선거 후에도 당선자는 지방분권 공약을 ‘없던 일’로 치부한다.
후보자가 선거운동 기간 유권자들에게 강조한 공약 위주로 차기 국정과제를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이 모든 대선후보의 공통 공약(公約)이지만 누가 당선되어도 공약(空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선 의제로서 지방분권이 외면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지역언론이 선거 보도에서 지극히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대선은 전 국민이 동일한 후보를 두고 투표하는 유일한 선거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전국에서 동시에 치르긴 하지만, 지역마다 후보가 다르다.
그래서 대선보도는 어쩔 수 없이 전국단위 언론이 주도할 수 밖에 없지만, 서울에 본부를 둔 전국언론은 지역 격차나 지방분권 문제에 관심이 낮다. 대선 후보 방송토론도 모두 서울에서만 진행함에도 문제삼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유권자도, 정치인도, 언론인도 거의 없다.
중앙언론이 지방분권 의제를 외면하니, 자연 후보자들도 지방분권 공약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유력 후보자들이 모두 지방 출신이고, 선거운동 대부분을 지방에서 하고, 유권자들의 대부분이 지방 거주자들이지만, 지방분권이 선거의제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