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세은 교수님 영전에 바치는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06-16     박주현 기자
고 김세은 교수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님의 15일 새벽 별세 소식은 제겐 청천벽력과도 같습니다. 그동안 암 투병 중이었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

선생님. 죄송합니다. 암 투병 중인 줄도 모르고 그토록 귀찮게 원고청탁을 반복해서 드렸으니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청탁을 드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하셨을지 이제야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그 때 몸이 아파서 글쓰기가 불편하시다고 말씀하시지 왜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시 옥고를 써주실 줄 알고 기다렸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뒤늦게 선생님의 부고 소식 앞에서. 선생님이 먼 길을 가신 후에야 이렇게 절실히 느끼게 될 줄이야...기자보다 더 기자 같은 치열한 학자의 삶을 사시더니 어찌 그리 빨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재촉하셨습니까?

암 투병 끝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참담하고 비통합니다. 저와는 나이가 비슷한 선생님이셨는데 이렇게 황망한 부고 소식을 벌써 남기고 가시니 더욱 기막히고 깜깜합니다. 선생님과 저와의 인연은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메일과 전화로 시작됐지요. 2018년 여름 시사·인문·학술 계간지 <사람과 언론>을 창간하고부터 시작됐지만 그 때는 이미 선생님께서 몸이 좋지 않은 생태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요.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공영방송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할 즈음, 저는 정권의 방송장악 정책에 대한 비판의 글을 인터넷 매체에 ‘게릴라 칼럼’의 형식으로 연재했을 때 문득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몸으로, 또 글로 실천하시는 돋보이는 학자가 바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모릅니다.

누구보다 선생님은 공영언론 정상화에 앞장선 학자였습니다. 특히 ‘공영방송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KBS·MBC 언론인들의 파업 직전인 2017년 7월 28일 한겨레에 당시 고대영 KBS 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하릴없이 외친다 '물러나라''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면 전체를 “김장겸은 물러나라”, “고대영은 물러나라”로 채우며 불공정 방송에 침묵하던 공영방송 기자·PD들의 마음에 투쟁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저도 그날 아침 신문을 보며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두 주먹 불끈 쥘 정도로 강력한 메시자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2017년 7월 28일 고 김세은 교수가 한겨레에 썼던 칼럼

여느 학자처럼 ‘글’만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 100일째인 2017년 12월 12일 선생님은 ‘릴레이 발언’에 동참하셨지요. KBS 기자·PD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순치된 자사의 편향 보도를 반성하고 공정방송을 다짐하는 발언 현장에 현직 교수 신분으로 참석한 것이어서 반향이 컸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선 “흔히 연구자는 연구로 말한다는 말을 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현장에 나가거나 행동하는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 거리두기를 하면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나름의 역할이고 할 일이다, 그렇게 얘기한다.(...) 저도 한때는 연구자는 논문으로 말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고 고백하신 내용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선생님께선 <미디어오늘>과 <기자협회보> 등에 에 당시 이런 소신을 밝히셨더군요.

“청정한 중립의 지대에서 고고하게 연구자 품위를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런 태도가 어쩌면 깨끗함을 가장한 외면이라는 걸, 안이하고 비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그런 안이함과 비겁함에 대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언론에 대해 배웠던 것,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일들이 언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걸 모른 척하고 지낸다는 건 이른바 지행합일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국기자협회보에 고인이 썼던 칼럼(2007년 7월 4일) 홈페이지 갈무리

‘사람 사는 따뜻한 세상, 진실과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을 기치로 창간한 <사람과 언론>은 실천하는 학자이자 존경하는 선생님의 옥고를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1호로 요청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이런 답변을 주셨습니다.

<사람과 언론> 창간을 축하드립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과문해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그간 좋은 원고들로 3호를 내셨더군요.

제가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지역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시는데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송구하게도 말씀하신 주제들이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바쁘실 텐데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더욱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세은 드림.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언론학회 등의 일로 바빠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래서 2019년 봄호 필진으로 참여해줄 것을 재차 간곡히 요청을 드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부지였다는 생각과 함께 죄스러움을 재차 깨닫게 됩니다.

매우 큰 부담을 드렸던 매우 잘못된 원고 청탁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신 중에도 선생님께선 정중히 이런 답변을 주셨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미 상당히 몸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걸 재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보내주신 책자 감사하게 잘 받아보았습니다.

말씀해주신 주제는 제가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워낙 어렵고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섣부른 진단이나 주장보다는 학술적인 분석이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되고요.

그런데 제가 요즘 여러 일들에 치여 있어서 그런 분석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 올 한해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계시는데 연이어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김세은 드림.

몸이 불편한 줄도 모르고 제가 메일로 드린 답신은 완곡한 다음호 계간지 원고를 다시 요청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욕심만 챙기려 했던 어리석음을 부디 용서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매번 부담을 안겨드려서 정말 송구합니다.^^

저는 이번 사안은 교수님이 흔쾌히 수락해 주실 줄 알고 가장 빨리 청탁을 드렸는데 송구합니다. 전혀 부담 느끼지 마시고 그저 마음만으로도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박주현 드림.

그랬더니 작년 3월 27일 이런 답변을 마지막으로 주셨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진심 감사합니다.

사안도 복잡하고, 해야 할 일들도 가득이고,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할 여유가 전혀 없네요. 저보다 나은 필진 많이 계시니 좋은 글 받으실 것으로 믿습니다.

김세은 드림.

이처럼 정중하고 예의바른 원고청탁 거절은 처음 겪는 일이라 언젠가는 꼭 선생님 글을 계간지에 꼭 실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런 황망한 부고 소식이라니요. 비통하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니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얼마나 부담스러우셨으면 평소 말씀해주셨던, 글로도 쓰셨던 울림의 메시지를 더는 거절하시면서“사안도 복잡하고 해야 할 일들도 가득하고...”라고 하시면서 깍듯이 예절을 갖추어 원고청탁을 미루어 주셨습니다.

그 때 차라리 힘든 투병 중이라고 했으면 지금 이토록 황망하고 참담하진 않을 텐데, 미안함도 덜할 텐데 왜 그 때 그런 말씀을 주시지 않았나요?

<미디어 오늘>은 선생님의 가시는 길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김세은 교수는 정치 권력 외압에 굴하지 않은 학자였다. 박근혜 정권이 사실상 임명한 다수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들은 김 교수가 집필 주도한 ‘2016년 MBC 경영평가 보고서’ 수정을 무리하게 압박했다. MBC 보도·시사 분야 집필을 맡았던 김 교수는 보고서에 PD수첩 등 MBC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정부 정책 검증과 권력층 비리 고발이 사라졌고, 공정방송을 위해선 공정방송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전향적 노사 관계가 요구된다고 썼으나 극우·뉴라이트 계열의 방문진 이사들은 이 같은 보고서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 당시 방문진에서 김 교수의 경영평가 보고서가 폐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교수와 함께 다수 이사들의 횡포에 맞섰던 이완기 전 방문진 이사는 “보도 부문을 맡은 김 교수가 MBC 보도 시사의 문제점을 세게 비판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이 임명한) 다수 이사들이 극도로 반발했고, 보고서 승인을 지속적으로 지연했다”고 설명했다. 전원구조 오보 등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MBC의 왜곡 보도에 “사고 발생 실태와 원인, 희생자 대책, 유가족 반응, 검찰과 경찰의 대책, 여론 동향 등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는 성과를 거뒀다”(2014년도 MBC 경영평가보고서)고 평가한 학자들의 곡학아세와는 뚜렷히 구분되는 김 교수의 ‘소신’이었다.

김 교수는 독재정권과 정치권력에 순응했던 한국의 언론사에서 해직 언론인과 저널리스트가 갖는 의미에 천착했던 학자다.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다 해직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기자들을 인터뷰한 ‘해직 언론인에 대한 생애사적 연구’(2012), 동아·조선투위 해직자들과 1980년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저항했던 해직 언론인들을 연구한 ‘해직기자들의 삶과 직업’(2010년), ‘‘신’해직 언론인의 ‘압축적’ 생애사를 통해 본 한국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2017년) 등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다가 해직된 뒤 2017년 8월 복직한 노종면 YTN 기획조정실장은 “정작 우리는 해직 언론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해직 언론인이 한국 언론사에서 지닌 의미를 학술적으로 다뤄주신 분”이라며 “해고자 신분 시절 김 교수와의 논문 인터뷰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였다. 그의 논문은 우리 해직 언론인들에게 큰 힘이 됐을 뿐더러 우리가 저널리스트로서 앞으로 무엇을 보도하고 주목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2012년 MBC 언론인들의 공정방송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후 2017년 12월 MBC 사장으로 방송 정상화에 주력했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도 “다른 훌륭한 학자 분도 계시지만 김 교수는 해직자 삶을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불후의 기록으로 남겼다”며 “망가진 공영언론을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해 논문 작성 이상으로 노력하신 분”이라고 평했다. 최 PD는 “기록의 과정에서 누군가와 갈등에 부딪힐 수 있고,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는데도 타협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감내하셨다는 점에서 훌륭한 학자로 기억하고 있다”며 “현업 기자들과 PD들이 김 교수 별세에 유독 아쉬워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기자들보다 더 저널리스트적으로 살아오셨던 것 같다”며 “학자분들이 공영언론을 비평할 때 때때로 날카롭지만 애정 없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김 교수는 언론인과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에 지금도 각별하다”고 밝혔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현 방문진 이사)는 “그는 자신의 연구와 소신을 현장과 실제 생활에서 굴하지 않고 관철시켰다”며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고, 저널리즘 이해가 누구보다 높았던 학자”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2018년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를 맡아 올해 초까지 헌신했다. 암 투병으로 생명의 기운이 사그라드는 상황에서도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올해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콘텐츠평가단 소위원장을 맡은 김 교수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지난 3월까지 참석을 이어갔다. 건강을 염려한 이사들이 그의 출석을 말렸는데도 그는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다”며 “최근 3개월 불출석 때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던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우리도 겁이 나서 미처 연락을 드리지 못했고 상황만 전달받곤 했는데…. 너무나 안타깝다”고 고인의 마지막을 기억했다.

김 교수는 2017년 방송기자연합회의 ‘방송기자’ 11·12월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파업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그토록 갈구하던 공정방송은 과연 무엇이었나? 어떤 방송이었나? 이제 언론인들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도록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언론 자유 수호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와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나아가 자율성 침해 사례는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해야 하며,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자 전체의 문제, 언론 자유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나의 취재와 보도가 언론을 구성하고 대표한다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수반되어야 하며, 그 기반은 철저한 전문성에 두어져야 한다. 공부하는 기자, 토론하는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의 공정성은 언론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김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그리고는 선생님께선 그 뒤로 글을 쓰시지 않으셨더군요. 몸이 불편하셨을테니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그런데 글을 여러 차례 부탁드렸으니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편하셨습니까? 부디 용서바랍니다.   

선생님이 못 다한 일과 뜻은 후배 언론인들과 남은 학자들의 몫입니다. 이제 평온한 세상에서 아프지 말고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아프신 줄도 모르고 원고부담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제는 복잡한 일도, 불편한 일도 다 잊으시고 편안한 세상에서 부디 편히 쉬세요.

힘든 병을 짊어지고 온 생을 접고 떠났으니 부디 저 세상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영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선생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주님. 고인에게 부디 평안한 안식을 주소서.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