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에서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2-04-13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스페인은 유난히 역사의 어둠이 짙었던 나라이다. 굳이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1892-1975)의 독재를 떠올리지 않아도 그러했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소설을 썼다. 한 마디로, 19-20세기 스페인의 사정은 실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일까. 유럽인들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미개하고 끔찍한 곳으로 기억한다. 유럽 여러 나라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널리 퍼져있다.

“그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는 무언가 뜻이 담겨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마드리드에서 교수형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드리드를 잔혹함의 대명사로만 기억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곳에 프라도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프라도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이다.

본디 스페인 왕가는 많은 회화작품을 소장했다. 그 중에는 엘 그레코(1541-1614), 벨라스케스(1599-1660), 고야(1746-1828)를 비롯한 스페인 출신 거장들의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그 작품들을 우리는 프라도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프라도에는 스페인 왕실과 관계가 깊었던 플랑드르 출신 화가들의 작품도 수두룩하다. 아울러 스페인의 화풍에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 즉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의 작품들도 이 미술관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마드리드에 가면 눈이 즐겁다. 프라도미술관만이 아니라,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와 티센 미술관에서도 뛰어난 걸작을 무수히 만날 수 있어서다. 그 가운데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대표작품 <게르니카(Guernica)>도 당연히 포함된다. 마드리드에 갔을 때 나는 그 그림 앞에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조그만 마을 이름이다.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내란 당시 프랑코 군을 지원하는 독일 비행기가 이 마을을 폭격하였다. 삽시간에 무려 2,000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 끔찍한 소식을 들을 피카소가 전쟁의 비극과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그 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었다(스페인관). 그 뒤 여러 해 동안 뉴욕현대미술관이 이 그림을 소장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죽고 나서 이 그림은 스페인으로 돌아왔다(1981년). 피카소의 유지에 따른 것이었다. 피카소는 독재자가 다스리는 조국정부와는 완전히 인연을 끊고 지냈었다. 참으로 대단한 화가가 아닌가!

스페인은 특이한 나라이다. 지중해의 변방에서 일어나 16세기에는 남미 대륙의 보물을 독차지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성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이후 수세기 동안 스페인은 서서히 몰락하였다. 잔혹한 마녀재판과 유대인학살로 악명을 얻었고,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아 국토가 황폐해지기도 하였다. 여러 차례 혼미를 거듭했으면서도, 스페인사람들은 위대한 예술혼을 통하여 세계를 놀라게 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여러 화가들이 그러했고,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거장을 깊이 만나고 싶으면 우리는 마드리드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다시 한번 마드리드 행 비행기표를 구하고 싶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