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불통’ 같은 윤석열 정권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2-03-25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누구나 좋아하는 라틴말이 ‘나누다’(communicare)이다. 이것은 본래 천상의 신이 인간들에게 덕성을 나누어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전도가 바로 이것, 즉 본래적 의미의 소통이었다. 근대에는 '소통'이란 말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다 뜻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의사소통을 '소통'의 본질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과학기술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소통인 것 같다.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소통이란 ‘사회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한 사회가 공유할 때는 소통이 원활하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고집을 피우기라도 하면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는 불가능하다.

소통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세상에는 갈등도 많으나 합리적으로 소통을 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일도 없다는 뜻이겠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거대 자본과 정치 권력이 일상을 ‘식민화’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심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며 시민의 의사를 묵살하고 생태교란을 일삼았다. 뒤를 이은 박근혜 정권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시종일관 불통 정권으로 시민 위에 군림하다가 시민의 저항에 부딪쳐 몰락하였다.

윤석열 정권은 아직 출범하기도 전이지만 싹이 노랗다. 집무실 문제만 해도 그러하다. 군사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다시 시민이 반대하는 가운데, 최고 권력자가 용산에 있는 국방부를 점거할 의지를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산적한 국정과제가 한둘이 아니고, 국제적으로 보아도 시급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런데도 전혀 급한 문제도 아닌 대통령 집무실 이전 건을 가장 먼저 들고 나와 시민들의 비윗장을 긁고 있다.

용산은 여러 모로 역사의 상처가 깊은 곳이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한반도를 지배한 일본군과 미군 사령부가 대물림을 한 곳이자, 2008년 이명박 정권이 경찰력을 동원하여 가난한 시민들을 폭력으로 짓밟은 '용산참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평소 이명박 정권을 예찬하던 윤석열 씨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용산에 대한 집착을 이토록 강하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으나, 불통 정권의 전통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만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겉으로만 ‘사회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척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귀를 틀어막고 일방통행을 하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때 시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윤석열 씨는 역사의 거울을 잘 들여다보기 바란다.

예로부터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표현이 있다. 민심의 바다가 잔잔할 때만 통치자(군주)는 순행할 수 있는 법이다. 그 바다에 파도가 거세지면 작은 배 한 척쯤은 손바닥을 뒤엎는 것 만큼이나 쉽게 가라앉힐 수 있다. 시민의 마음속에 ' 윤석열 정권은 불통 정권'이라는 절망의 도장을 찍지 마시라.

한 정권이 실패로 막을 내리는 사태는, 당사자들에게만 불행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큰 상처가 된다. 그러므로 권력자가 들어야 할 충고는 시민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법사니 지관이니 하는 사람들의 감언이설을 믿지 말라. 부동산 전문가, 정상배(政商輩) 또는 아첨꾼들을 멀리하고, 오직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