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맑은 향기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2-03-23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성호 이익은 매화에 관해 흥미로운 글을 남겼다. <매화불입소(梅花不入騷)>라고 했다(<<성호사설>>, 제5권). 매화가 중국의 고전인 <이소경>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쓴 것이었다. 그 글을 읽어본다.

“퇴계(退溪, 이황)는 그의 <절우사시(節友社詩)>에서 말하였다. ‘소나무와 국화는 도연명이 대나무와 함께 셋으로 묶으면서 매화 형은 왜 동참하지 못하게 했을까.’ 

그러고는 퇴계 스스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도연명의 삼경에도 매화만 빠졌으나 아무도 지적한 사람이 없었네. <이소경>만 탓할 일이 아니라네.’”

일반이 짐작하는 것과 달리 매화는 옛 시인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익은 한 가지 일화를 통해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옛날 정한강(鄭寒岡, 정구)은 매화를 많이 심어놓고 그 동산을 백매원(百梅園)이라고 했다. 어느 날 최수우(崔守愚, 최영경)가 그곳을 지나다가 도끼를 가져다 다 찍어버렸다. 매화가 늦게 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알려진 바와 달리 매화가 눈 속에 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그러했다. 눈 속에 청향을 내뿜는 고고함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의 설명이 이어진다.

“내가 매화의 성질을 살펴보았다. 실내에서 조심스레 길러 잘 보호하지 않으면 그 꽃이 복숭아나 오얏과 함께 핀다. 내가 조사해보았더니 봄철에 피는 꽃 치고 <이소경>에 들어간 꽃이 하나도 없었다. 굴원(屈原)이 <이소경>을 저술하면서 매화를 포함하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특별히 거론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또, 최수우(최영경)는 인품이 유난히 청고(淸高)하였으므로, 이러한 매화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말해도 좋겠다.”

성품이 고고하고 강개한 최영경이었다. 그로서는 매화가 한낱 평범한 봄꽃으로 보였다. 그래서 함부로 도끼질을 하였다는 설명이다. 과연 조선의 문장가들이 읊은 수백 편의 매화시를 읽어본 나로서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올해는 매화가 너무 더디게 피었다!" 이러한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은 시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실정을 알고 보면 늘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 매화의 본성이었다.

이처럼 매화의 식생을 누구보다 자연과학적으로 정확히 알았던 이가 성호 이익이었는데, 실은 그가 매화를 퍽 좋아했다. <<성호전집>>(제1권)에서 나는 고전적인 정감을 느끼게 하는 짤막한 매화시 한 편을 발견하였다(<매화를 읊다>).

'最愛無人亦自芳 花中君子與相羊 扳條細嗅忘歸寢 只怕通宵浪費香'

가장 사랑스러운 그대, 보는 이 없어도 스스로 피네. 

꽃 가운데 군자인 그대여, 그대와 함께 거닐고 싶소. 

한 가지 부여잡고 향기를 맡노라면 잠잘 시간이 온 것도 모른다오. 

당장 내 걱정은 이 밤 그대 향기를 놓칠까 봐 아쉬울 뿐이네.

제 아우 백진숙 화백의 그림입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도 그렇고, 러시아의우크라이나 침공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요. 그래도 우리는 봄을 맞습니다. 우리 앞에는 아무려나 포기할 수 없는 평화와 수확의 계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학자 이익은 매화가 일찍 피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 늦게 피어나도 좋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시달리는 이에게 봄밤의 청향(淸香)이 얼마나 귀한가. 바야흐로 멧돼지 한 마리가 좌충우돌 세상을 어지럽히는 시절이다. 오늘 밤 어디서 나는 매화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으려나.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