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집권과 비극
백승종의 '역사칼럼'
1930년 독일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대공황으로 수백만 명이 실직하자 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독일이 겪은 수모와 굴욕을 떠올리며, 바이마르 정부의 우유부단한 통치를 비판했다. 시민들은 자국의 경제 상황을 비관한 나머지 언제 어디서든 분노를 폭발하였다. (※어디서든 집권세력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커지면 '때는 지금이다!'라며 고개를 드는 정치 세력이 있기 마련이죠. 지금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1930년 경 독일에서도 그랬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시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히틀러는 유창한 연설로 대중을 선동해 나치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선거 때마다 그들은 독일을 경제 위기에서 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독일의 문화적 가치를 회복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여, 독일 국민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공급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나아가 독일이 강대국으로서 당연히 누려 마땅한 지위를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독일인에게 강요된 굴욕적인 정전 협정과 베르사유 조약을 부정했다.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건전한" 미래상을 제시하는 정치가가 필요합니다. 그때도, 지금도요!)
히틀러와 나치당은 탁월한 선동정치가들로서 청중이 바뀔 때마다 주장을 바꾸었다. 기업가들 앞에서 말할 때는 반유대주의적 감정을 숨기고 공산주의에 대한 공격만 일삼았다. 그러나 군인과 참전 용사 또는 민족주의자들 앞에 서면, 태도를 급변해 베르사유 조약으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자면서 재무장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농부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왔을 때는 화제를 바꾸어, 앞으로는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농민들이 손해를 입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는 은퇴자들 앞에서는 연금의 수준을 앞으로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나치당의 주요 정책이라고 떠들었다. 이처럼 나치당의 유세는 선동정치의 표본이라고 일컬을 만하였다. (※우리나라의 제20대 대선에서도 이런 식으로 가는 곳마다 피상적이고도 달콤한 구호로 표를 모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30년 3월에 독일의 대연정이 깨졌다. 그해 7월, 총리로 뽑힌 하인리히 브뤼닝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설득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시행하게 하였다. 브뤼닝은 바이마르 헌법 제48조를 근거로, 대통령에게 비상명령권을 발동하여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런데 선거 결과, 나치당이 18.3%를 득표하여 의회에서 두 번째 정당으로 급성장했다.
그다음 2년 동안 브뤼닝은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극우 정당인 나치당을 배제하고 비교적 온건한 정당들을 하나로 묶어서 내각을 운영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1932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브뤼닝을 해임하고 프란츠 폰 파펜을 총리로 임명했다. 폰 파펜은 전례대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시행했다(1932년 7월). 바로 그 선거에서 나치당은 무려 37.3%의 득표율을 과시하며 제1당으로 떠올랐다. 그때 독일 경제는 더욱더 절박한 상황이었고, 극좌파인 공산당도 14.3%를 득표하였다. 이에 공산당의 성장을 혐오하는 과반수 의원이 독일 의회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종식을 선언했다(1932).
폰 파펜이 내각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자,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측근들은 파펜을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종용했다. 그 후계자인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은 또다시 의회를 해산했다. 1932년 11월, 총선에서도 나치당은 33.1%를 득표했다. 그때 공산당도 16.9%의 표를 얻어 극우와 극좌가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비롯한 기득권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산당의 집권을 막기로 결심했고, 그들은 나치당이 집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독일 기득권층의 '적색 공포'가 결국은 히틀러에게 나라를 통째로 가져다 주는 바보같은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근 것입니다.)
마침내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히틀러는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어 총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의회 정치를 포기한 보수 정치가들의 야합 덕분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때 독일 보수 정치가들은 군주제의 회복을 내심 바랐으나, 집권한 지 2년 만에 히틀러와 나치당은 보수파를 모조리 몰아냈다. (※믿었던 도끼가 썩은 것이었습니다. '공정'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부패한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면 큰일납니다!)
히틀러는 전권을 장악하고 나치당 일당독재를 강화하였다. 이것은 독일만의 비극이 아니라, 유럽과 전 지구적인 파국의 출발점이었다. (※위기의 시대에는 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출처: 백승종, <제국의 시대>, 김영사, 2022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