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군산 야구 100년사'(53)
‘국민 우익수’ 이진영③
일본과 두 차례 경기에서 ‘국민 우익수’ 탄생
야구 월드컵으로도 불리는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2006년 3월 3일 일본 도쿄돔 구장에서 아시아 예선을 시작으로 그 막이 올랐다. 한국이 속한 A조(아시아)는 일본을 비롯해 대만, 중국 등 4개국이 출전하였으며, 나머지 B조, C조, D조 예선 풀리그와 본선 및 결승전은 3월 20일까지 미국 내에서 펼쳐졌다.
미국,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쿠바, 베네수엘라, 호주, 이탈리아 등 16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은 4강에 올랐다. 당시 언론은 일제히 한국 야구가 세계무대에서 쾌거를 거뒀다고 보도하였다. 열위인 한국이 세계 최강팀 미국을 이긴 것도 놀라웠지만, 국민을 더욱 흥분시킨 것은 예선과 본선에서 일본을 연파하는 경기 장면이었다.
제1회 WBC 지역 예선의 최대 고비였던 3월 5일 도쿄돔구장(한국-일본) 경기에서 이진영은 멋진 수비로 불리하게 전개되던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0-2로 뒤진 4회 말 2사 만루 때 니시오카 쓰요시의 빨랫줄 같은 타구를 몸을 날리며 잡아내 최대 3실점 위기에서 벗어난 것. 그의 그림 같은 수비는 이승엽의 역전 홈런으로 이어지며 일본을 침몰시켰다.
이후 3월 16일 치러진 일본과 두 번째 격돌에서도 0-0으로 팽팽하게 전개되던 2회 2사 2루 상황에서 사토자키의 우익수 앞 안타를 잡아 정확하게 송구, 홈으로 파고들던 2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국민 우익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진영은 숙적 일본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호수비로 한국 승리를 견인했고, ‘일본 킬러’로 주목받으면서 한국야구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한다.
군산상고 총동문회도 환영 현수막 내걸어
제1회 WBC에서 4강에 오른 한국 선수단(감독 김인식) 21명은 3월 20일 밤 11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 출국장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대한야구협회 신동렬 부회장을 비롯해 협회 관계자, 프로야구 8개 구단 단장과 야구팬 500여 명이 한국 야구를 세계무대에 올려놓고 귀국하는 선수단을 환영하였다.
야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스 파란도깨비 회원 50여 명도 선수단 도착 2시간 전부터 인천공항에 모여 ‘당신은 진정한 챔피언입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설치하고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정대현, 이진영 선수 모교인 군산상고 총동문회(회장 박성현) 회원들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장하다 대한 건아’가 적힌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선수들을 맞이하였다.
박성현 회장은 “한국 선수들이 세계 최고 야구축제인 WBC 대회에서 숙적인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모습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4강에 진출, ‘금의환향’하는 어린 후배들을 멀리서 바라만 볼 수 없어 동문회원 서너 명과 함께 공항으로 달려갔다”면서 8년 전 그날을 회상했다.
“한국대표팀 명단에 정대현(52회·투수), 이진영(54회·우익수), 김성한(33회·전력분석원) 등 군산상고 후배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고,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불굴의 투지로 ‘4강 신화’를 이루고 귀국하는 역전의 명수들의 장한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은 일본을 30년 동안 이길 수 없다’는 이치로의 망언으로 심기가 상해있을 때여서 더욱 값지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박 회장은 “다소 억울하게 느껴졌던 대진표, 미국 심판들의 어처구니없는 오심 등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러한 광경을 TV 중계를 통해 보면서 국가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잠수함 투수 정대현과 국민 우익수 이진영은 군산상고 2년 선후배 사이. 그들은 1996년 봉황대기 우승의 1등 공신으로 그 대회 최우수선수와 우수투수상, 수훈상 등을 나란히 받았던 적이 있어 각별하다.
“선수 개인 기량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해”
이진영은 제2회 WBC에도 출전, ‘국민 우익수’ 명성을 재확인한다. 2009년 3월 6일 도쿄돔에서 개최된 대만과의 1라운드 1차전 1회 말 1사 만루 때 대만 에이스 리전창의 높은 직구를 받아쳐 우중간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9-0 승리에 불씨를 당긴다. WBC에서 한국 타자의 만루 홈런은 이진영이 처음이었다.
3월 13일, 2라운드에 나서는 8개 국가가 모두 정해지자 이진영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이반 로드리게스(전 뉴욕 양키스) 등 각국의 스타플레이어들과 함께 메이저리그(MLB) 누리집 첫 화면에 얼굴을 나란히 한다. 당시 글을 기고한 덕 밀러씨는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차지했던 한국은 우승 후보로 꼽힐 만한 힘을 가진 팀”이라고 평가하였다.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야구 본고장인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Petco Park)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4-1 승리를 거두고 4강 진출을 확정 짓는다. 1-0으로 앞선 1회 말 1사 만루 찬스에서 2타점 적시타로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된 이진영은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승리 세리머니를 펼쳤다. 한국은 제2회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다. 아래는 이진영 선수의 추억담.
“태극기 세리머니는 일본을 이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큰 대회 4강에 진입한 우리나라 야구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2006년 대회 때도 일본전을 2-1로 승리(4강 확정)하고 서재응(당시 LA 다저스·현 KIA)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2008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쿠바를 3-2 극적으로 누르고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에도 감격에 겨워 태극기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제1회 WBC 참가 후 영광된 별명(국민 우익수)도 얻고, 생각이 바뀌는 등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우익수에서 1루 수비도 가능한 중장거리형 타자로 변신했고, 2008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2009년 LG트윈스로 이적해 주장이 됐으니까요. 전에는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팀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죠. 선수 개인의 기량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야구를 하자’는 게 철학이라는 이진영. 그는 지난 2014년 6월 13일 잠실구장(LG-SK) 경기에서 3이닝(1회, 4회, 7회) 연속 대형 아치를 그리는 3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다. 이날 기록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한국 선수로는 처음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이에 그는 “홈런을 3개나 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팀이 역전승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게 더 의미가 있었다”면서 팀워크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진영 편 끝)
※ 등장 인물의 나이와 소속 직책은 2014년 6월 기준임
/조종안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