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나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정안...피해자들 불만 고조, 왜?

[특별 기획] 가습기 살균제 참사 11년,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2022-02-23     박주현 기자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이 밝혀진 이후 11년 만에 첫 피해 조정 합의안이 윤곽을 드러냈지만 중증 피해자들은 수용할 수 없다면서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어 최종 조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조정위원회’가 사망자에게는 최대 4억원, 중증 환자는 최대 4억 8,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조정안 초안을 제시했지만 중증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현저히 낮아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경미한 일반 피해자들 위주로 조정안 마련" 불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조정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정위의 배·보상 조정안을 규탄했다.

특히 이번 조정안 중에는 전체 피해자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미한 피해자들에게 당초 제시됐던 4,000만원의 두 배인 8,000만원으로 보상금이 인상하면서 다른 중증 피해자들과 배상 비율을 놓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요한 전북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모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중에는 당장 폐를 이식해야 하는 절박한 중증 환자들이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수술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한경부와 국회, 조정위원회는 경미한 피해자들의 의견을 주로 듣고 이들만 설득시키면 된다는 심사로 조정안을 만들고 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 대표는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는 최근 이러한 내용의 조정안 초안을 마련해 피해자 단체 등에 전달했다“며 "그러나 초고도, 고도, 중등도 등 중증 환자들의 병원비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정안”이라고 반발했다. 

조정안 초안에 따르면 조정 대상은 모두 7,018명으로, 피해 구제 신청자 7,673명 중 개별 기업 합의자, 신청 철회자 등은 제외됐다. 이 가운데 전북지역에서는 구제 신청자가 450명 가량으로 파악됐다.

”중증 환자들, 병원비에 턱없이 부족한 조정안“ 

조정액에는 피해자 지원금과 피해자 추가 지원금, 사망자 유족 지원금, 노출 확인자 지원금 등이 포함됐다. 이중 초고도 피해자의 경우 지급액은 최대 3억 5,800만원에서 4억 8,000만원이다. 또한 고도, 중등도, 경도, 경미한 등급 외로 구분돼 액수가 점차 낮아지며 등급 외의 경우 8,000만원으로 조정된 상태다. 

사망자의 경우 연령에 따라 지원금을 1억 5,000만원에서 4억원으로 차등했고, 단순 노출자에게는 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조정안에 대해 전북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피해자 단체들은 "가장 시급한 중증 피해자들이 병원비 걱정 없이 수술과 치료받을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과 환경·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 SK본사 앞에서 참사피해자 보상 관련 특별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신청자는 전국적으로 7,651명, 사망자는 1742명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피해 발생 10년째인 지난해 10월 정부가 빠진 민간 차원의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조정위원회(위원장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피해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들과 제조·유통 기업들 사이에서 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출범한 조정위 위원장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맡고 있고, 김학린 단국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문영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병환 전 국무조정실 제1차장, 황정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이 조정위원을 맡고 있다. 

“조정위가 내놓은 조정안, 피해 등급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반발 

하지만 조정위는 피해자 단체와 기업 등의 의견을 듣고 금전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소수인 중증 피해자들보다 다수인 경미한 '등급 외' 피해자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현재 조정위원회를 통한 조정 참여 의사를 밝힌 전국 피해자 단체는 12개이며, 기업은 9개(옥시레킷벤키저·롯데쇼핑·애경산업·이마트·홈플러스·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에 이른다. 

이들 피해 단체는 "피해 등급 중 가장 심각한 폐 이식 단계의 초고도 등급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엉터리 조정안"이라며 "조정위가 내놓은 조정안은 피해 등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조정안이 발표되면 조정 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조정 개시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내 동의해야 효력이 발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조정안은 무산된다“며 ”그런데 가장 많은 일반 피해자들에게 높은 보상 비율을 제시함으로서 동의가 이뤄지게 돼 자칫 어쩔 수 없이 지원금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KBS 전주총국 라디오 ‘터놓고 말합시다’, 전북지역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실태 조명 '주목' 

KBS전주총국 2월 20일 라디오 프로그램 '터놓고 말합시다'(유튜브 동영상)

한편 지난 20일 KBS전주총국 라디오 프로그램 ‘터놓고 말합시다’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 보상과 재발방지’를 주제로 토론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이날 방송에는 가습기 살균제 전북지역 피해자 모임 이요한 대표와 한국소비자연합 전북지회 김보금 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우아롬 변호사가 출연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실태를 재조명하고 전북지역 피해자 현황, 피해 보상 지연에 따른 어려움 등이 논의됐다. 

”가습기 피해 딸, 학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죽고 싶다“ 

이요한 대표

이날 이요한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딸이 집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한 채 정상적으로 학교도 가지 못해 지옥 같은 생활을 보낸다“며 ”정말 힘들어서 죽고만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김보금 소장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11년 동안 오랫동안 방치한 정부와 정치권, 지역사회 모두에 책임 크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만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신속히 이뤄져 그들의 고통이 하루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방송 토론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중 중증 피해자들의 고통과 가족들의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 피해 조정위원회에서 제시한 조정안이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