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꾀에 죽는 꾀보
만언각비(14)
흔히 꾀가 많은 사람을 꾀보, 꾀자기, 꾀쟁이, 꾀퉁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단순히 그저 꾀가 많은 사람을 뜻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 ~보, ~쟁이, ~퉁이는 부정적이거나 좋지 않은 낱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여 잔꾀가 많고 수단이 좋은 사람을 가리킨다.
대개는 약삭빠르거나 영악하고 잔꾀를 부리는 얌체들을 지칭할 때 쓰인다. 굳이 따진다면 영특(獰慝: 영악하고 간특함)한 꾀쟁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 잔꾀하면 반사적으로 속임수나 거짓말 같은 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이들을 두고 그저 좋은 뜻에서 지혜롭다거나 영토(영리하고 똑똑함)하다고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꾀보들은 곧잘 자신을 과신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그것이 곧 그들 안목의 한계이자 그릇의 크기가 된다. 꾀보가운데 대인 없고 대인이면서 꾀보인 사람 없다. 지혜로운 자가 꾀쟁이 노릇을 할리 없고 그럴 우매한 현인도 없다. 꾀보는 열이면 열, 소인배다.
그런 점에서 꾀쟁이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신의나 약속 따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뒤집는다. 또 상황에 따라서 자기들 편리할 대로 생각과 행동을 카멜레온처럼 쉽게 바꾼다. 때문에 매사 원칙이 있을 리 없고 일관성이란 아예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면서도 말은 번지르르하고 그럴싸하다. 노상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 국민과 공동체를 앞세운다.
이처럼 잔꾀를 부리면서 꾀바르게 살아가면, 어느 한 순간만큼은 판단력이 좋은 능력있는 사람으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제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마련이다.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만다. 길게 보면 마침내는 손해를 본다. 그 민첩한 꾀로 많은 이익을 볼 것 같지만 종당에는 자신도 망친다. 문제는 자기만 망치는 게 아니라 주변사람에게까지 손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그러니 어찌 이들에게 공동체의 과제와 국가의 명운을 맡길 수 있겠는가?
소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보다 잔꾀는 많지만 큰 지혜는 없다는 점이다. 즉 작은 이익에는 밝아 이를 열심히 챙기지만, 그로 인해 큰 이익은 놓치게 됨을 모른다. 짧게 보면 이익을 많이 챙기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실속이 없다. 소인은 또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도 다르다.
더구나 허풍이 심해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여우도 결국은 모피장수에게 가죽을 넘겨주게 된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아무리 잔꾀를 써봤자 결국은 결말이 뻔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잔꾀와 좁은 생각만으로는 결코 지혜의 본바탕을 헤아리지 못하며 도량이 좁은 사람(小年)은 도(道)와 함께하는 어진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내편 소요유>” 고 한 장자의 가르침은 곧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잔꾀와 지략은 다르다. 지략은 지혜로 부터 나오지만 잔꾀나 술수는 간교함으로부터 나온다. 더구나 잔꾀를 부려서 되는 일이란 별로 없다. 어렵고 느리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세상이치가 다 그렇게 뻔한 데도 약삭빠른 자들이 물탄꾀를 부린다.
현실은 잔꾀와 술수가 판을 친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삭막한 세상이 됐다. 그 결과 항상 긴장하고 쫓기듯 살면서 다른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눈치 보는 법과 사람을 믿지 않으려는 못된 타성만 늘었다. 이로 인해 도덕적으로 엄청난 황폐화와 국민정서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곧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쓸모없는 에너지와 비용의 낭비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주변을 보라. 술수를 부리며 외줄 타듯 꾀보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바른 원칙을 정해두고 흔들림 없이 그 원칙대로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나라를 잔꾀와 술수로 통치다가는 나라가 망한다. 이같은 걱정도 안하는 꾀보들은 자기들이 현명하다고 착각한다. 시거든 떫지나 말일이지 거기다가 나라를 위한다(?)는 허울 좋고 빗나간 고집(아마도 잘 포장된 명분일터)까지 드세다.
‘사자방’의 이명박 전대통령은 잔꾀가 많은 이로 꼽힌다. 국민들과 한 약속도 소용없다. 전재산을 헌납하겠다는 선언, 어찌된 건지 아무런 후속발표가 없다. 국민들의 원망이나 비난 따위는 그의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제꾀에 제가 죽는 본보기가 아닌가. 정말로 슬기롭고 꾀바른 사람은 잔꾀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