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치닫는 대선, 누가 이성의 대결 가로막나
김명성의 '이슈 체크'
인간은 합리적이다. 따라서 이성적인 존재다. 그런데 종종 불합리한 선택을 한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쟁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전쟁은 끊이질 않는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이다. 양당 후보 중심의 선거 구도에 국민 감정까지 깊숙이 작용하는 아슬아슬한 정국이다. 거대 양당 후보를 비교해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2년간 자치단체장을 하면서 대통령 연습을 해왔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어느 날 후보가 된, 역사상 보기 드문 사례다. 문제는 준비된 후보가 어설픈 후보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국민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까닭이다. 그 중심에 언론이 있다. 감정이 만든 역사는 종종 비극으로 흘렀다.
시대에 적합한 준비된 후보인가?
이재명은 두 번의 성남시장을 하며 백만 명 가까운 인구, 한 해 3조원 넘는 예산을 무려 8년간이나 다뤄봤다. 경기도지사로 1,400만 인구, 한 해 30조 원에 육박하는 예산으로 도정을 경영해왔다. 도지사는 흔히 ‘국방과 외교를 뺀 대통령’으로 통한다. 그만큼 막강한 권한과 다양한 경륜이 인정된다.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전국 226개 시‧군 중 일자리 창출 부분 1위, 행복도 청렴도 1위, 공약이행 96%, 지방 재정자립도 1위라는 기록을 써 내려갔다. 경기도지사로 있으면서 주민 생활만족도 전국 1위, 반부패 2년 연속 전국 최우수, 전국 광역단체장 평가 전국 1위, 공약 이행 98%, 기업인 대상 선호 지자체장 1위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국민 감정에 기댄 후보인가?
윤석열은 단 한 번의 선출직을 맡아본 적이 없다. 윤석열의 망언 논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일 뿐만 아니라 실언과 실수가 잦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라고 혼자만 우긴다거나 주택청약의 개념 자체가 없고 부정식품 실언과 구인구직 앱도 모르는 사례 등이 입방아에 올랐다. 시대정신인 민주주의의 개념이나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는 검사에서 출발해 검찰총장까지 오르면서 지탄받는 일도 많았다. 고발사주 의혹이 그렇고 정직 2개월 징계의 정당성, 측근인 한동훈 검사의 감찰 중단 압력, 판사 대상의 불법사찰 의혹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대장동 사건의 최대 쟁점으로 부친 집 거래를 둘러싼 의혹은 묻혀 있다. 최근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적폐 수사 겨냥 발언은 대선 후보로서 검찰에 대한 철학은커녕 후보의 자질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도 받았다.
긴 코로나-언론 편파가 조성한 ‘바꿔 감정’
현재의 정권 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고 있다. 세대별로는 40대를 빼고 젊은 층을 비롯해 전 세대에서 고른 분포를 보인다. 지역적으로도 경기도와 호남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 대체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 온 부동산 정책에 실망한 민심은 검찰과 사법제도를 비롯해 일자리 정책, 대북 정책, 복지 정책, 예산 운용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높다.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민심이다.
왜 정권 교체 여론이 높을까. 코로나의 장기화가 원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정권 교체 바람이 불어대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현 정권에 부정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는 교체 민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배우자의 엄청난 범죄에 눈감은 언론이 다른 배우자의 사소한 시비에는 대서특필한다. 언론의 중립성 상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의 독재'와 '이성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그리스 도시국가로부터 시작해 2,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의 민주주의는 불과 3~4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17~18세기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오늘의 민주주의 형태를 지니게 됐다. 그 과정도 수천만 명의 희생이 따른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거쳐야만 했다. 민주주의는 이성과 비이성(감정)의 반복 속에 더 냉정한 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이성과 비이성의 대결장을 형성해 왔다. 해방 후 어렵게 만들어간 민주주의는 종종 좌절의 아픔을 겪었다. 민주주의 토대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독재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국민 감정을 일으켜 이를 정당화한 게 이승만의 반공 독재, 박정희의 개발 독재였다.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데는 늘 언론의 선동이 뒷받침했다.
분단시대 언론, 이성의 대결 가로막는 훼방꾼
이번 대선이 국민 감정으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약이 아닌 네거티브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대선은 명백히 이성에 호소하는 장이어야 한다. 감정은 또 다른 형태의 독재를 부르는 신호다. 국민 분열이고 배제의 정치다. 후보들이 냉정을 되찾아야 할 이유다.
언론은 대선 경쟁이 이성의 대결장이 되도록 공정하게 관리하는 심판이어야 한다. 공약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 역할을 포기한 상태다. 양강 구도로 굳어진 대선 정국이지만 공약 대결이 이뤄지지 않을 만큼 후보 간 자질 격차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은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대결을 공정한 경쟁이 아닌, 네거티브의 배설구로 만들고 있다.
극우 성향의 언론이 득세한 분단시대다. 진보 후보는 늘 수세적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임에도 40여만 표 차이로 어렵게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권, 60여만 표 차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촛불 탄핵 뒤였지만 41% 득표에 머물러야 했던 문재인 정권이었다. 분단시대 진보 후보가 겪어야 할 운명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도 혹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다. 국민이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지 지켜보는 엄숙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명성 객원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