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군산 야구 100년사'(49)
‘뚝심의 사나이’ 이성일①
군산시 명산동 사거리. 이곳에서 월명산 오르는 길로 접어들면 폐허로 변해가던 골목길을 예술이 숨쉬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동국사 가는 길’이 시작된다. 2012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군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공간이다. 야구의 도시답게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걸려 있어 보는 이들에게 추억여행을 떠나게 한다.
“1972년 7월19일 밤. 제26회 황금사자기 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이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습니다. 결승 진출팀은 부산고와 군산상고, 창단 4년의 군산상고는 1회 말 선취점을 뽑았지만, 3회 초 1점, 8회 초 3점을 내줘 9회 초까지 1-4로 끌려다녔습니다. 부산고는 마지막 9회 말에서 3점 이상을 허용하지 않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패색이 짙던 군산상고는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4점을 뽑아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아래 줄임)”
안내문 앞부분이다. 그럼에도 사진은 1986년 4월 27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벌어진 제20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 결승전(군산상고-경남고) 연장 11회 말 군산상고가 극적인 역전승(2-1)을 거두고 감격의 포옹을 하는 장면이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아무튼, 반가운 얼굴들로 ‘역전의 명수’ 명성을 재현한 뒤 마운드에서 부둥켜안고 있는 등번호 22번 선수가 이성일 포수이고, 이성일 포수를 끌어안고 있는 선수가 조규제 투수이다.
군산상고 시절 초특급 좌완 투수였던 조규제는 연세대와 국가대표를 거쳐 한국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투수였으며, 현재는 LG 트윈스 투수코치다.
조규제와 배터리를 이루면서 팀의 소금 역할을 했던 포수 이성일(군산상고 야구부 17기). 그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은퇴, 군산대를 졸업하고 (영어법인) 궁전꽃게장 대표이사, 군산시 4대, 5대 시의원을 지냈다. 제9대 도의원을 역임했고,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 제10대 전라북도 도의원(문화관광 건설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드물게 정치인이 된 이성일(47) 도의원을 만났다.
곰보빵 마음껏 먹는 재미로 야구에 빠져
뚝심의 사나이 이성일(李成日).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필승의 신념과 투지란다. 그는 1967년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에 속한 야미도(夜味島)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야미도는 망망대해와 돛단배만 보이는 외로운 섬이었다. 할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뭍으로 나왔다. 군산시 신흥동(산동네)에서 자란 그는 1974년 군산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꼬마 이성일의 꿈은 고등학교 체육교사. 동네 어른들이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거침없이 ‘체육 선생님요!’라고 대답했다.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군산여상 체육선생의 멋진 트레이닝복 차림에 반했던 것. 급우들이 ‘섬 놈’이라고 놀려 댔으나 뚝심으로 굳세게 버티었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야미도를 찾았다. 항상 푸근하게 느껴지는 고향집과 친척들, 따뜻하게 맞아주는 할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야구는 군산초등학교 야구부 김용태 감독의 권유로 시작했죠. 옆집에서 셋방을 살고 있던 김 감독님이, 제가 골목에서 친구들과 야구 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아버지에게 ‘공을 던지는 성일이 폼에서 대성할 가능성이 엿보이니 야구를 시켜보시라’고 권해서 4학년 때 글러브를 착용하기 시작했죠. 아버지는 군산상고를 12회로 졸업하셨고, 야구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저에게 30년 선배가 됩니다. (웃음)
막상 야구를 시작해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루한 수업도 4시간만 하면 운동장에 나가 놀아도 괜찮았고, 열심히 연습하면 먹고 싶었던 곰보빵도 나눠주고···. 곰보빵 먹는 재미로 야구에 빠지기 시작했죠. 그때 조화당과 이성당에서 만든 곰보빵, 팥빵 인기가 최고였거든요. (웃음) 야구에 묘미를 조금씩 터득하면서 연습에 몰두한 결과 전국대회에서 4강에 들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 들더군요.”
이성일 선수의 본래 포지션은 3루수. 그런데 어느 지역대회 경기에서 포수가 상대 팀 선수들에게 자꾸 도루를 허락하자 김용태 감독이 부르더니 ‘안 되겠다. 성일이 네가 한 번 해봐라!’라고 하는 바람에 교체해서 들어간다. 그 후 이성일은 군산상고 졸업 때까지 포수(catcher) 마스크를 쓰게 된다.
“제가 다닐 때는 뺑뺑이 돌려서 중학교에 입학했죠. 조규제는 군산중학교에 진학해서 만났습니다. 공에 위력이 있고 컨트롤이 정확했죠. 군산상고 졸업 때까지 배터리를 했는데요, 글러브를 좌우상하 어디로든 움직일 때마다 볼이 정확히 들어왔지요. 구위도 무척 빨랐고요. 명성이 널리 알려져 브랜드만으로도 다른 팀 타자들이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미리 겁을 먹고 자신의 평소 스윙을 못 했던 것이죠. 정말이지 당대의 거물 투수였습니다.”
대통령배 대회에서 ‘역전의 명수’ 명성 재현
군산상고 야구팀은 수비에 들어가기 전 특이한 의식을 가졌다.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고 1회 수비 때 선수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그라운드를 향해 양손을 무릎 위에 얹는다. 꼼짝 않고 몇 초 지나면 허리를 치켜든 투수가 큰소리로 ‘가자!’ 하고 외친다. 이때 선수들은 허리를 펴면서 ‘파이팅!’으로 답하며 힘을 모은다.
그러한 의식은 2회 때는 포수, 3회 때는 1루수··· 이렇게 9회까지 이어지며 상대 팀을 제압하는 기를 불어넣었다. 조규제·이성일 배터리가 이끄는 군산상고 야구부(감독 최한익)는 1986년 4월 27일 오후 또 다시 역전의 신화를 엮어내며 고교야구 정상의 상징인 대통령배를 차지한다.
제20회 대통령배 결승전이 열리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경기 중반까지는 타격에서 우세한 경남고 페이스. 군산상은 3회 말 경남고에 1득점 허용한 뒤 4회 초 무사 1, 2루 찬스를 주자플레이 미스로 놓친 후 8회까지 3안타의 빈공을 보이며 끌려간다. 8회 말 위기를 넘기고 사기가 오른 군산상은 9회 초 선두타자 이성일의 우중간을 뚫는 통렬한 2루타와 4번 박진석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연이은 2루타로 1-1 타이를 만들고 연장에 돌입한다.
10회를 무사히 넘긴 군산상은 11회 초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다. 2번 권순구가 경남고 에이스 김병주를 공략, 우익수 글러브 밑을 빠져 펜스까지 굴러가는 천금 같은 3루타를 터뜨린 것. 이어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 이성일이 좌익수 깊숙한 희생플라이를 날려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2만여 관중을 환희와 통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2시간 54분에 걸친 대접전을 마무리 짓는다.
군산상고는 1976년(10회), 1981년(15회) 대회에 이어 세 번째 패권을 안았고, 5년 주기로 대통령배를 차지하는 진기록도 작성한다. 한편 최우수선수상은 역전의 명수 명성을 재현한 군산상고 중견수 권순구, 우수투수상은 조규제 선수에게 각각 돌아갔고, 희생플라이로 승리타점을 올린 이성일 선수는 수훈상을 받는다. 아래는 이성일 의원의 추억담.
“당일은 정신없이 보냈고, 이튿날 중앙일보 본사, 삼성전자 등을 방문해서 선물을 받고서야 우승을 실감했습니다. 점심은 신라호텔에서 뷔페 먹었는데요. 이름도 모르는 갖가지 음식을 그릇(쟁반)에 가득 담아 5~6회 비우는 친구도 있었죠. 기껏해야 삼겹살만 먹던 촌놈 입에 쇠고기 스테이크가 들어가니까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더라고요. 그때 쇠고기는 원도 한도 없이 먹어봤습니다. (웃음)”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군산 시내
군산상고가 제20회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남고를 누르고 패권을 차지하자 군산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경기가 진행되는 3시간 가까이 시가지는 상가가 모두 철시한 것처럼 한산했다. 택시 기사들은 아예 운행을 중단, 택시를 도로변에 세워둔 채 라디오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였으며, 다방들은 TV 중계를 보려고 몰려든 손님으로 만원을 이뤘다.
각 가정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TV를 지켜보며 군산상고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들이 안타를 칠 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렸고, 어이없는 실수로 득점 기회를 놓칠 때는 탄성을 지르며 아쉬워했다. 시민들은 군산상고가 역전의 명수답게 끈질긴 저력을 발휘, 역전승을 거두자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群山商 또 역전 우승... 연장 11회 慶南 울려
군산상 역전 우승...희생플라이로 결승점
群山 축제분위기··· 逆轉勝에 일제히 환호
군산상고 우승하던 날, 시민들 짝지어 자축파티 열어
상가 문 닫고, 다방마다 ‘TV 관전 만원’,
기사들, 택시 세우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기도
이상은 당시 군산상고 우승과 군산 시내 분위기를 전하는 중앙지와 지방지 신문 기사 제목들이다. 다음은 이성일 의원의 회고.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대기하고 있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환영 현수막을 본 승객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더군요. 전주와 익산(이리) 시민은 물론 논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환영해주셨습니다. 구 군산역을 지나 중앙로에 들어서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영 현수막이 걸렸는데,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계속)
※ 등장 인물의 나이와 소속 직책은 2014년 6월 기준임
/조종안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