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 한 풀었다"더니...29년 '새만금 정치'
[진단] 새만금 방조제 연결 '환호'하던 언론들, 14년 흐른 지금은?
'새만금 방조제 15년 대역사 결실'
'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도민 한 풀었다. 역사의 날 밝아'
숱한 갈등과 논란을 낳았던 새만금 방조제가 최종 연결된 2006년 4월 21일. 전북지역 일간지와 방송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큼지막한 사진과 선정적인 제목을 보면 전북도민들의 한이 풀리고 새로운 역사가 곧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당시 지면을 지금 봐도 흥분과 신바람이 여전히 느껴진다.
15년 참아온 '흥분' '환호', 일제히 쏟아내
편집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어떤 기사를 다루든지 절대 흥분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십수 년을 기다려 왔다는 듯 이날만큼은 온통 흥분을 자제하지 못한 듯하다.
방송사들은 방조제의 완공 현장에 헬기와 배까지 투입해 하늘과 땅, 바다에서 새만금을 입체 조명했다.
방조제 연결은 새만금 전체 사업의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할 뿐인데도 "이제 한을 풀었다"는 투다. '미래의 땅', '신이 만든 땅', '신기원' 등 제목에 붙은 단어들은 간척사업이 착공된 1991년부터 준비해 놓은 듯하였다.
방송사들은 새만금 방조제 초기 착공식에 참여해 손을 흔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며 "단군 이래 가장 큰 간척사업이 첫 삽을 뜨게 됐다"는 당시의 코멘트와 자료화면을 오래 기다려 왔다는 듯 긴요하게 사용했다.
소수의 목소리 아예 뉴스로 다루지 않아
당시 발행된 전북지역 9개 일간지들은 이날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새만금 방조제 완공에 대해 다뤘다. 사설에서는 방조제 이후의 과제를 공통으로 제시했다. "이젠 내부활용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내부 활용을 위해 역량과 지혜를 한 곳으로 모으자고 호소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으면 그럴까하는 측은한 생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마디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내부활용 방안이 확정되면 이 방안이 체계적이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특별법 제정이 필수적"이라며 입을 모았다. 꼭 짜 맞춘 듯이 "미래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도 강조했다.
당시에 삶의 터전과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새만금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부 신문사들은 속지 귀퉁이에 '새만금 갯벌 살리기 다시 시작', 또는 '전북환경연합 생명평화 기원제' 등의 기사를 실었지만 흥분된 1면 의제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방송사들은 영상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소수의 목소리를 정규 뉴스시간에 아예 다루지 않았다.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당시 <부안독립신문>을 비롯한 일부 지역 대안매체들은 달랐다. 다른 주류 매체들과는 달리 지면이 밝지 못했다. 인터넷 언론인 <참소리>는 이날 '새만금 갯벌은 자기변론을 시작할 것... 숨통을 조였다'란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환경단체는 24일과 29일 1주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새만금 운동의 자기반성을 통해 새만금 갯벌 복원활동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침통한 환경단체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다.
기사는 이어 "환호성을 지르기 전에, 잔치판을 벌이기 전에 죽어가는 뭇 생명들에 대한 작은 애도와 생존권을 잃어버린 채 절망에 빠져 있는 어민들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표하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가?" 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반문과 비판을 던진 데는 전북도 등 행정기관보다 환호하는 동종 언론사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새만금 갯벌 복원 운동의 새로운 첫걸음을 새만금에서 시작할 것이며, 새만금에서 답을 구할 것"이라는 강한 어조에서 이들에겐 '바다가, 갯벌이 그래도 희망'임을 암시해 주었다.
지역 인터넷신문 <부안21>의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기사와 큼지막한 사진 한 컷은 더 숙연하게 했다. 계화도의 한 주민이 자신이 살아온 바다와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절을 하는 사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도민들의 한을 풀었다'며 흥분과 광기에 젖은 지역의 주류 매체들과는 달리 대안매체들은 소수의 목소리에 오히려 귀 기울였다.
방조제 연결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었다. 뭇 생명과 어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절차가 생략된 아쉬운 방조제 완공의 날이었다.
그런 뒤 14년여 세월이 흐른 2020년 10월. 1991년에 시작된 전라북도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2006년에 끝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21대 국정감사에서 화두로 등장해 다시 정치적 쟁점화가 눈에 선하다. 물길을 막은 지 14년이 지났지만 바닷물을 더 많이 유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가 갈라 놓은 바닷물 바깥과 안쪽의 색깔이 너무 다른 이른바 '새만금 녹조라떼' 현상 때문이다.
"새만금호에 실제 투자된 건 28억 원에 불과?"
만경강과 동진강 물을 가둬 만든 거대 저수지, 새만금호는 그 면적만 118km²로, 4.5km²인 서울 여의도의 26배가 넘는 크기다. 당초 간척한 땅은 모두 농지로 만들고 새만금호에 담긴 물로 농사를 짓자는 게 애초 새만금 사업의 핵심 줄기였다.
그러다 중간에 전체 부지의 30%만 농토로 쓰기로 계획이 바뀌었다. 새만금호 주변에도 논 대신 스마트 수변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가운데 개발이 한창이다. 토지 활용 목적은 계속 변한 가운데 문제는 수질 개선을 위해 20년간 4조 원을 쏟아부었는데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방조제 건설 초기인 1991년부터 환경오염을 우려했던 환경단체들은 강 하류에서 바닷물이 섞여야만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소량의 해수를 유통하고 있는 군산과 부안, 두 곳뿐인 배수갑문을 추가로 짓거나 갑문 개방 시간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수질 개선에 투입된 예산 4조 3천9백억 원 가운데 대부분은 대체로 강 상류에 투자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YTN은 10월 5일 '28년의 싸움...새만금 해수유통이 뭐길래'란 제목의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새만금호 수질 개선을 위해 쓴 돈은 306억 원이고, 새만금호 내 사업 타당성 검증을 위한 연구 용역비를 빼면 새만금호에 실제 투자된 건 28억 원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정부, 29년 만에 '새만금, 바닷물 흘러야 산다' 연구결과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던 새만금 해수유통은 지난 9월 21일 이원택(김제)ㆍ신영대(군산) 국회의원이 해수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발표를 의식해 미리 의제화하려는 꼼수 정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욱이 전라북도는 그동안 "아직 내부 개발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환경부의 수질 개선 연구 용역 평가가 나온 후 해수유통 여부를 결정하자"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그 연구 용역 결과를 한겨레가 7일 단독으로 보도했다. 신문은 1면 기사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통해 환경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만금 2단계 수질 개선 종합 대책 종합평가 결과 및 향후 추진계획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히면서 보도했다.
기사는 "서해 평균 해수면보다 새만금호 수면을 1.5m 낮게 유지하는 조건에서 바닷물을 흐르게 했을 때, 수질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보고서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기사는 “해수 유통이 차단되어 새만금호가 담수화될 경우, 수질대책을 시행하더라도 농업용수와 도시용수 확보가 곤란하다"며 "현재 수준의 해수유통을 유지할 경우 농업용수는 확보 가능하지만 일부 도시지역에서는 수질 기준에 맞는 물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해수유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 "현재보다 바닷물을 6.5배 더 흐르게 해야 수질이 가장 안정적인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해수유통과 정치권에서 말하는 해수유통은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30여년 지속돼 온 '새만금 정치', 이제 끝내라
이에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과 이원택 의원이 각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7일 KBS전주총국 패트롤전북에 출연한 이 의원은 4대 전제 조건 중 하나인 해수면 대비 -1.5m 수위를 유지하면서 해수유통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 사무부총장은 “해당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수질 개선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생태계 복원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라며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새만금 해수유통 문제가 새만금의 새로운 의제로 등장한데 대해 지역 언들은 아직도 14년 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부분 지역 언론들은 지금도 여전히 새만금 내부 및 주변개발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은 반짝 이벤트성 발언과 제안에 '일희일비'하고 있는 언론들을 이용하며 즐기는 모양새다. 30여년 그래왔듯이.
새만금 방조제가 갈라 놓은 바닷물 바깥과 안쪽의 색깔이 너무 다른, '새만금 녹조라떼' 현상이 새만금 수질을 개선한다며 퍼부은 수조원의 혈세를 비웃고 있는 듯하다.
전북과 전북도민을 볼모로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새만금 정치', 이제는 끝내야 한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