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선거구 획정·후보 등록 연기까지...대선에 파묻힌 깜깜이 지방선거

진단

2022-01-23     박주현 기자

지방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 획정이 법정 기한인 6개월을 넘기고 있어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게다가 대선에 주력하고 있는 정당들은 지방선거를 대선 승리의 도구로 여기거나 심지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예비후보 등록을 3월 9일 대선 이후로 연기하기로 해 유권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법정 기한 넘기며 국회에서 잠자는 선거구 획정...매번 반복

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 획정 법정 기한은 선거 6개월 전으로 돼 있다. 따라서 올 6월 1일 진행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해야 했음에도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여야 국회는 지금까지 머뭇거리고 있다. 

4인 선거구 확대나 농어촌 지역 대표성 문제 등 논의해야 할 사안이 많지만 해를 넘긴 선거구 획정은 국회에서 아직까지 잠을 자고 있는 모양새다. 모든 정치권이 대선에 총 출동돼 지방선거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 형국이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공천 심사 기준에 대선 승리 기여도를 포함시켜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유권자들보다 대선 후보자들과 당의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 경우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출마할지 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후보 등록이 늦어지는 만큼 유권자들이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기간도 줄어들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고창지역 등 선거구 조정 불가피...논의조차 못해

전주MBC 1월 19일 보도(화면 캡처)

더구나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광역의원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4대 1에서 3대 1로 조정하면서 전북지역에선 인구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는 고창군 제2선거구의 경우 조정이 불가피한 상태지만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시에는 1월 25일 결정된데 이어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시에는 2월 13일,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시에는 3월 5일 선거구가 결정돼 모두 법정 기한을 넘겼다.

심지어 예비후보 등록 기간을 넘기기도 했다. 이처럼 늑장 결정으로 인해 4인 선거구 확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올해도 어물쩍 선거구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 

“매번 늦어지는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지역 소외 현상”

2030세대가 주축을 이룬 MZ세대로 구성된 더불어민주당 전라북도당 공동선대위원회가 5일 첫 공식 공개회의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전북민중행동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에 앞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3~4인 선거구를 확대해야 한다”며 “3~4인 선거구를 쪼개 2인 선거구로 만드는 등 현행 선거구는 민주당에 지나치게 유리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민주당의 독식 구도가 심각한 전북지역의 경우 선거구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와 관련 모니터 보고서에서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중요한 문제임에도 국내 주요 언론들이 지역의 여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매번 늦어지는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문제도 지역 소외 현상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비공개 최고위를 열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예비후보 등록을 3월 9일 대선 이후로 연기하기로 하면서 지역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 

민주당,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연기...깜깜이 선거 더욱 부추겨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20일 발표한 성명

대선 승리를 위해 집중한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 지방선거를 우습게 만들고, 지방정치를 한낱 중앙정치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발상'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20일 성명을 내어 “부도덕·부적격 후보를 가려야 할 후보자 자격 검증 기준조차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대선 기여도를 앞세움으로써 지방선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대선 충성 경쟁만 강조하고 있다”며 “공직 후보자 검증위를 대선 이후로 연기하면 사실상 선거 기간이 한 달여 줄어든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올 지방선거는 선거구 획정 지연과 출마자 등록 연기 등으로 유권자들이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후보자들의 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각종 토론회 등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깜깜이 선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