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비밀
이화구의 '생각 줍기'
※화엄경에 관한 긴 글입니다. 참고하시어 관심 있는 분은 호흡을 길게 하시고 찬찬히 읽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글자 숫자가 많은 책은 화엄경일 겁니다. 전설에 따르면 용수보살이 용궁에 가서 용왕이 보여준 화엄경은 상, 중, 하 세 권이었는데 세 권을 합한 글자 수는 10조 9만 5천 48자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 상(上)권과 중(中)권은 너무 어려워 하(下)권 하나만 읽고 외워서 뭍으로 나와 글로 쓴 경전이 지금의 화엄경이라고 하는데 한자(漢字)로 글자 숫자는 58만 자입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설이라도 이야기가 좀 완전하게 구성되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고 일부만 단편적으로 흩어져 불완전하게 전해지는 거 같아 제가 여러 자료들을 모아 재구성을 해봤습니다. 여기서 용수보살이 다녀온 용궁은 역사서에 보면 캬슈미르의 '용지(龍池)'라는 용이 사는 연못이었습니다. 이 용지라는 연못은 중국 현장스님이 쓰신 대당서역기나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 보면 가섭미라국(지금의 캬슈미르)에 있는 바다 같이 넒은 연못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인문학자인 정수일 교수께서 쓰신 고대문화교류사에 보면 이 연못(용지)이 지금 카슈미르에 있는 '블라르 (WULAR) 호수'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지금 인도(힌두교)와 파키스탄(무슬림) 그리고 중국으로 나뉘어져 종교적 갈등이 세계에서 제일 심한 분쟁지역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에 관한 논서들이 많이 쓰였던 지역으로 불교학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으나 불교가 쇠퇴하면서 지금은 잊혀져가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동국대 권오민 교수가 직접 캬슈미르를 방문하여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용수보살께서도 당시 캬슈미르에 머물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많은 불교 논서들이 발행됐으나 화엄경의 저술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계속 이어갈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중앙아시아 우전국(지금의 신장 위그르 지역)의 역사에 나오는 "비로절나 (비로자나불)"라는 아라한과 캬슈미르의 용수보살과의 이야기를 연결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를 보면 쿠사타나국(우기. 우전. 호탄)의 불교도래 전설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비로차나(毗盧折那: 당나라에서는 편조(遍照)라 함) 아라한이 우전국에 불교가 없었을 때 카슈미르에서 와서 숲에서 선정에 들어 이적(숲에서 광명을 비춤) 을 보이면서 불교를 전한 이야기가 아주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렇다면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화엄경(십지경)은 캬슈미르에서 용수보살이 쓴 것인데, '비로절나 아라한'이라는 보살이 우전국으로 가져와서 이적을 행하며 불교를 전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일본의 불교학자 카마타 시게오는 그의 저서 "화엄경 이야기'에서 '비로절나 아라한'이 화엄경을 직접 썼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화엄경은 현재의 81권 40품 중 '십지품(十地品, 보살의 수행 10단계)'은 용수보살이 주석서인 '십주비바사론'을 쓴 게 전해오고 있으니, 화엄경 40품 중 십지품만은 캬슈미르 용지(龍池)라는 곳에서 용수보살이 쓴 것이고, 나머지 품들은 우전국에서 비로차나 아라한이 만들어 현재의 형태(40품)로 합본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40품 중 선재동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입법계품은 남인도에서 결집되어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이 품도 우전국에서 함께 합본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용수보살이 용궁에서 보고 온 경전은 십지품(십지경)으로 분량이 많지 않아 전설로만 치부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파견되어 불경을 구하러 간 중국(동진)의 구법승 지법령(支法領)이나 당나라의 지엄스님 모두 우전국 국왕에서 통사정을 하여 우전국 보물창고에 보관해 놓았던 화엄경을 구해서 중국으로 돌아와 번역한 것입니다.
용수보살이라는 인물은 서기 150년 ~ 250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 승려로 대승불교의 교리(공空사상 및 중론中論)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인도 명으로 나가르주나라고 부르며,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재능이 많았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로 불가에서는 석가모니 부처가 환생한 분이시라고 하니 많은 불경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분이라 사료됩니다.
용수보살은 또한 신비로운 인물로 신라의 유학승 혜초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7백년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경전인 성서에도 보면 몇 백년을 사신 분들의 얘기가 나오니 특별할 건 없는 거 같습니다. 어차피 전설 같은 이야기니까요.
결론적으로 보면 화엄경은 용수보살이 캬슈미르에 있는 용지(龍池)에서 용왕이 보여준 화엄경 상.중.하 세 권 중 하권을 보고 나와 캬슈미르에서 결집한 십지경(十地經)을 캬슈미르의 비로차나 아라한이 우전국으로 가져와서 우전국에서 나머지 38품들(40품 - 십지품(용수보살) - 입법계품(남인도))도 결집하여 오늘날 40품 화엄경 형태로 만들어져 우전국 보물창고에 보관했던 것들을 중국에서 온 구법승들에게 전해주어 우리가 지금의 화엄경을 볼 수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화엄경은 붓따께서 깨달음을 얻고 삼칠일(21일) 동안 삼매(선정)에 들어 지상과 하늘을 오가며 붓따께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빛의 언어인 방광(放光)을 보살들에게 보내면 보살들끼리 서로 설한 경전으로 설법 대상이 보살들이지 일반 대중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에서 붓다께서 직접 설한 내용은 40품 중 아승지품과 여래수호광명공덕품 두 곳에서 짧막하게 설하고 나머지는 모두 보살들이 설한 경전입니다.
많은 분들이 화엄경은 부처께서 설한 경전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보살들이 설한 경전이라 불설경(佛說經, 부처께서 직접 설한 경전)이라고 하지 않고 설불경(說佛經, 부처에 대하여 설한 경전)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6백년이 지난 시기에 부처님께서 6백년 전에 인간의 언어로 설한 것도 아니고 빛의 언어로 그것도 선정에 들어서 정신 세계에서 천신들에게 설한 내용을 어떻게 알고 다시 인간의 언어로 화엄경을 썼는지 용수보살의 도력(道力)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의 경전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동남아의 소승불교(아함경전)에 화엄경이 전해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화엄경은 붓따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바로 삼매에 들어 인간의 언어가 아닌 빛으로 방광하며 지상과 천상에 있는 보살들로 하여금 설하게 한 경전이기 때문에 이때는 부처님의 제자도 없었고 승단도 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를 전하는 아함경전(소승)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무협지 같이 황당하기도 하고 어렵기 때문에 화엄경의 구조나 내용을 모른 상태에서 화엄경에 도전하다가 실패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화엄경에 여러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이런 글을 쓰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화엄경은 축약해서 요약본이 많이 나왔습니다.
용궁에 있는 상, 중, 하 세 권은 글자수가 10조 9만 5천 48자로 너무 많아 지상으로 가져온 화엄경이 한자(漢字)로 58만 자이고, 이것이 너무 길어 81권본 화엄경의 골수만을 골라 용수보살이 간략히 줄여 놓은 게송(화엄경약찬게)이 756자이며, 또한 중국 화엄종의 제4조 청량징관(淸凉澄觀) 스님은 화엄경을 풀이한 짧은 글이라는 뜻으로 왕복서(往復序)를 써서 772자로 줄입니다.
그리고 신라의 의상대사께서 210자로 요약한 게 유명한 법성게입니다. 법성게는 화엄경의 핵심을 7언 30구 총 210자로 요약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의 게송(偈頌)입니다. 또한 한국 불교의 최고봉인 원효(元曉) 대사께서는 58만 자의 화엄경을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는 단 10자 로 줄였습니다. 원효대사께서는 좋고 싫음, 부귀와 가난, 깨끗함과 더러움, 권위와 비루 이 모든 것들이 내 생각(아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헛된 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하여 '일체무애인'이라 하고, 일체무애하면 생사를 벗어난다 하여 '일도출생사'라 하셨습니다. 의상대사께서는 210자로 압축하고도 법성게를 다시 8자로 줄인 게 바로 “行行到處(행행도처)요, 至至發處(지지발처)"라는 글입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란 것도 ”걷고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그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간다간다 했지만 가서 보니 본래 그 자리요(行行本處), 왔다왔다 했지만 와서 보니 바로 떠난 그 자리(至至發處)라는 겁니다. 그래서 법계도의 게송(법성게)은 중앙에서 "법(法)"자로 시작해서 54번의 미로 같은 길을 건너 다시 중앙에서 있는 출발점인 '법(法)'자 바로 밑에서 "불(佛)"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바로 가도가도 떠난 그 자리란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인생은 꿈과 같다는 말씀이죠. 꿈을 꿀 때 우리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고나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누워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우리네 인생살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을 사자성어 4자로 줄이라면 저는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줄이겠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는 일장춘몽이며, 우리가 "나비의 꿈이 나의 꿈이며, 나의 꿈이 나비의 꿈이 되는" 차별 없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현상을 체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용궁에 있는 화엄경 원본의 글자 숫자가 '10조 9만 5천 48자'였다는데 저는 이걸 저에게 한(一) 자로 줄이라면 '공(空)'이라는 한(一) 자로 줄이겠습니다.
저 같은 돌팔이 놈이 '공(空)'이라는 글자를 쓰는 건 불경스러울지 모르니 차라리 저는 우리말 '꿈(夢)'이란 한 자로 줄이겠습니다. 인생사 모든 게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글·사진=이화구(금융인ㆍCPA 국제공인회계사ㆍ임실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