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언제까지 분단 프레임에 기생할 것인가

김명성의 '이슈 체크'

2022-01-09     김명성 객원논설위원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과 프랑스가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프랑스 정치권은 찬성을, 미국 정치권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내 언론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선언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종전선언은 물 건너갔다고 예단한다. 전쟁 상태를 마무리 짓자는데 왜 외국은 상반된 반응을 보일까? 국내 언론은 마치 남의 나라 일인 양 소홀할까?

강대국 정치인들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며 윽박지르기까지 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여기에 분노하지 않고 있는 국내 언론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상원, 종전선언 지지 결의안 채택

연합뉴스TV 1월 6일 보도(캡처)

프랑스 상원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프랑스 정부가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을 채택하도록 독려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6.25 한국전쟁의 정전상태를 평화조약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또한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종전선언 승인에 참여하도록 나서라는 것이다.

중국도 종전선언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당사국으로서 중국의 입장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는 본토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나라로서 전쟁상태가 무엇인지, 평화가 얼마나 절실한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중국 역시 한국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만 14만 6천여 명에 달한다. 두 나라가 어떤 의도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전쟁상태 중지 주장은 절대 선(善)이다.

미국 하원의원들, 종전선언 강력 반대

미국 하원의원들이 종전선언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통지문을 백악관에 보냈다. 이들은 종전선언이 평화보다는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불안을 초래한다는 입장이다. 남한에 주둔중인 미군에게도 위험을 안겨준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내전(남북전쟁) 빼고는 본토에서 외부와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 때 그 많은 미군 희생자들도 그들 입장에서 보면 태평양 건너 멀리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었을 뿐이다. 국토가 전장(戰場)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남북한 양측 250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 천 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공업 시설 절반가량이 초토화돼 이 땅은 암흑시대로 돌아갔다. 전쟁의 상흔은 지금까지 이어져 남북한의 무기경쟁, 이념대결로 이어진다. 8대 무역대국이라지만 분단국이라는 코리아 리스크로 언제든 뒤로 밀려날 수 있다. 그런 전쟁상태를 끝내자는데 미국 정치인들은 반대하고 있다.

오바마 ‘전략적 인내’, 바이든 ‘신 버전 냉전’

바이든 대통령(NBC 캡처)

오바마와 바이든의 대북 외교는 진보정권임에도 보수정권인 공화당과 다를 바 없다. 오바마는 대북 외교에 아예 소홀했다는 비판에 대해 ‘전략적 인내’라는 수사(修辭)로 교묘히 비껴나갔다. 인류 평화에 기여했다는 노벨평화상만 받아 챙긴 꼴이다. 그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도 마찬가지다. 혈맹이라지만 철저히 자국 중심으로 이해득실만 따질 뿐이다. 종전선언의 당사자인 중국의 올림픽 행사에 딴지 걸며 정치적 보이콧에 나선 것이다. 지난 시절의 냉전을 새롭게 포장해 내놓으려는 최신 버전의 냉전으로 보인다.

선수만 참여시키는 올림픽은 인류 화합의 제전이라는 행사 취지에 대못을 박는 행위다. 베이징올림픽을 정상들의 만남과 종전선언의 기회로 삼아 축제분위기를 드높이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재를 뿌렸다. 친미적 성향의 나라들은 잇따라 보이콧에 동참하고 미중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 대화합을 주도하려는 우리나라도 참여 여부를 고민할 상황에 몰리고 있다.

종전선언 소홀한 국내 언론들...'사대관'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38선 표지석(연천군 제공)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 의도는 중단된 비핵화 협상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서다. 즉 종전선언을 정치적, 상징적인 조치로 삼아 비핵화 협상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에 나서도록 군불을 지피기에 알맞는 명분으로 내세울만하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에 불참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국내언론은 일찌감치 종전선언에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미국이 올림픽에 정치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종전선언은 물 건너간 것으로 간주했다. 여기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 이어지자 종전선언은 아예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 짓고 있다. 바이든의 정치적 보이콧과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간에 인과관계는 애초부터 관심조차 없다. 왜 국내언론은 종전선언에 비관적인가? 왜 종전선언을 가로막는 미국의 정치적 보이콧을 비판하지 못하는가.

언론의 냉전 프레임 작동, 언제까지?

우리나라 주류 언론의 특징은 미국의 행태를 지적하지 못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꼽을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비판을 반미로 규정하고 반미를 다시 친북으로 단정하는 냉전시절 언론의 프레임 때문이다. 이러한 사대적 발상은 정부의 대미외교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든다. 문재인 정부를 친중 반미 성향으로 규정하려는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어느 기자회견장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친미인지 친중인지 묻는 철없는 질문공세도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료사진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언론인이라면 민족 문제 만큼은 강대국에 양보해선 안 되고 혼도 낼 줄 알아야 한다.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때 국민감정과 괴리가 일어난다. 결국 언론 불신이다. 강대국에게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게 된다.

정부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려고 힘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정부의 역할을 막아서려는 언론사는 국적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한국기자협회도 민족문제를 하나의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동일성 회복을 위해 노력 한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언론이 불신받는 이유 중 하나도 민족문제를 남의 나라 이야기 다루듯 하는 언론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언제까지 분단을 방치할 수 없다. 분단에 기생하는 언론에게 미래는 없다. 

/김명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