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길은 ‘안정’ 또는 ‘성공’보다는 ‘행복’...낯섦과 설렘의 3개월

방송사 인턴 체험기(1)-김정하(KBS 선거방송기획단 디지털콘텐츠 인턴)

2021-12-04     김정하 시민기자
김정하 시민기자(필자)

매일 아침 여의도로 출근하는 일상이 익숙해진 지금이지만 3개월 전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 들었던 많은 감정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생애 첫 인턴은 생각보다 흥미롭고 동시에 만만치가 않다. 전보다는 분명히 성장했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고 부족한 점이 많다. 나와 같은 언론고시생, 취업준비생, 그리고 내가 한 선택에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서 3개월간의 인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 첫 합격, 첫 서울살이, 첫 인턴, 첫 출근

2019년 10월 29일. 여의도 KBS에서 인턴 면접을 봤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2017년 10월부터 언론고시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최종 합격’을 했다. 물론 3개월 인턴일 뿐이지만 책상 앞에서 머릿속으로 방송국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삶에서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큰 변화였다.

주말 동안 급하게 집을 구했다. 출근 복장도 준비했다. 첫 서울살이, 첫 인턴, 첫 출근. 새로운 시작에서 오는 설렘이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잘할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 앞선 걱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렇게 KBS 선거방송기획단 인턴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 낯선 여의도, 낯선 회사, 낯선 사람들, 낯선 용어들

출근하는 첫 주 동안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뉴스로만 보던 ‘지옥철’을 탔다. 지하철 한 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는지 직접 경험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국회의사당역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첫날이라고 신경 썼던 출근 복장이었지만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인턴 동기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동기들은 나를 포함해 10명이었고, 모두가 나처럼 얼어있었다. 어색함에 찾아오는 긴 침묵, 모두가 핸드폰만 만졌다. 가장 기다려지는 건 점심시간이었다.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 게 좋은 건지, KBS라고 박힌 식권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오후에는 다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고, 인턴 업무가 주어지기 전까진 하루 종일 인사만 하다 퇴근하는 느낌이었다.

매일 아침 9시 30분에는 전체 회의가 있다. 회의할 때마다 새로운 용어를 받아 적느라 바빴다. 마트, PGM, SMR, 인제스트, NCG, NPS … 나름 대학 방송국 활동도 오래 하고 방송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으로 처음 들은 용어들을 검색해야 했다. 그렇게 매일 회의에 참여하다 보니 짧은 새에 많은 방송용어를 접할 수 있었고, 어느새 회의를 잘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회의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도 참석하게 해준 것에 감사했다.

맡은 일은 딱히 없었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첫 주가 지나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출근하기 전에 복잡했던 감정들이 긍정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이른 시각에 일어나는 것에 설레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하고 있었다.

# 기회는 계속 만들어가는 중

2019년 11월 중순, 처음으로 기회가 주어졌다. KBS 선기단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 <정치합시다>의 티저를 제작해보라는 단장님의 제안이었다. 이번에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앞섰지만 얼떨결에 하겠다고 했다. 기획 회의를 한 후 며칠간 제작에 들어갔다. KBS라는 타이틀이 걸려있기에 KBS답게 잘 만들고 싶었고 처음으로 만드는 콘텐츠인 만큼 정성을 들였다.

내가 만든 티저 영상이 유튜브 공식 채널에 올라왔을 때의 뿌듯함과 벅참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영상은 사내 디지털 게시판에도 올라갔는데 어느 날은 출근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뭉클한 마음으로 영상이 끝날 때까지 바라봤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맡았다. 본 방송 클리핑 영상, 출연진 1인 시점 무편집본을 만들었다. 2019년 12월에는 총선 프로젝트로 ‘정치했습니다’라는 캠페인을 기획했다. 인턴 브이로그를 기획해 ‘슬기로운 인턴생활’이라는 이름으로 KBS 인턴들의 일상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정치합시다> 출연진인 유시민 이사장과 최원정 아나운서가 시민들과 버스 안에서 퀴즈를 풀고 토크를 나누는 예능 콘텐츠 ‘토크 온 더 버스’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콘텐츠인 만큼 영상 조회 수에 따라 콘텐츠의 가치, 크게는 나의 실력이 평가된다.

물론 조회 수가 잘 나오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팀에서 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는 만큼 조회 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들인 노력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때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고 나를 다독였다. 좋은 콘텐츠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콘텐츠를 매일매일 고민하고 있다.

# 내가 선택한 길

인턴 생활을 3개월 동안 하면서 배운 게 많다. 방송 제작 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을 매일 하다 보니 실무적인 면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방송도 방송이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생활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다.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법,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하는 법, 위기에 대처하는 법 등 교과서에는 없는 것들을 배우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언론고시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론고시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요즘 들어 들고 있다. 몸은 방송국과 가까워졌지만 크게 봤을 때는 점점 멀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묵묵히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 비해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회하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답하겠다. 잃은 만큼 얻은 게 정말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이 삶이 너무 행복하다. 새로운 기획을 맡게 되면 하루 종일 들떠있고 집에 가서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편집하느라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날에도 피곤함보다는 뿌듯함이 크다.

최근 인턴십 연장 여부에 관한 면담에서 나는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직 못 한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다. 취업준비생으로서 많다면 많은 나이, 적다면 적은 나이인 내가 선택한 길은 ‘안정’ 또는 ‘성공’보다는 ‘행복’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절대 쉽게 찾아온 기회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삶을 더 즐기고자 한다. 오늘도 나는 발 디딜 틈이 없는 9호선을 타고 감사한 마음으로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계속) ※<사람과언론> 제8호 게재 

/김정하 전북대 주거환경과(영상산업공학과 복수전공)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