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九旬)넘은 연치에 스물두 번째 시집 펴낸 고하(古河) 최승범 시인
‘아가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쓴 시집 '자투리'
아가를 품에 안은/ 어머니는 둥글다/팔도 등도 가슴도/ 두리둥실 둥글다/ 둥그름/ 에두른 날빛도/ 둥그러밀/ 짓는다//
아가의 옹아리를/ 어머니는 흉내낸다/ 추카추카 추김질에/ 마주친 눈빛은/ 어느 별/ 별빛을 이끌어/ 흉내내랴/ 부추기랴 (‘모자도母子圖’)
최승범 시인(고하문학관 관장)이 최근 스물두 번째 시집 「자투리」를 냈다. 구순(九旬)이 넘도록 필생의 시업(詩業)을 이어온 고하(古河·최시인의 아호)는 이 시집에 남다르게 정을 쏟아 부었다. 노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작에 전념해온 시인은 어느 시집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미발표 시를 모아서 엮었다.
"늙마에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시를 짓는 일은 나의 일상"
시인은 ‘아가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시를 적었다. ‘아가의 옹알이(원시의 ‘옹아리’는 옹알이의 북한어)를 흉내내는 어머니’처럼 시를 지었다. “김진악 교수가 한 마디 해준 것이 응원이 됐지요. 늙마에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시를 짓는 일은 나의 일상입니다.”
토·일요일에도 빠짐없이 고하문학관에 출근할 만큼 바지런한 고하의 겸사다. 아흔한 살의 연치에도 게으름을 떨쳐내고 문학관에 나와 자료를 정리하고 책도 읽고 시도 짓는다. 쇠경(衰境)이라 자탄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찬하고 궁리하는 시인은 노사(老師)의 풍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세상 우리 다같이 한 마음을 펼치자"
김진악 교수는 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평생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읽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은 더 어렵다. 글을 쓰기도 쉽지 않지만, 책을 짓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한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하지만, 일생에 한 오십 권쯤 책을 발간한 일은 매우 어렵고 아주 드문 일이다. 이렇게 망백(望百)의 춘추에 이르신 고하 최승범 노옹께서 또 책을 내게 되었다. 세상에는 시인이 많지만 구순이 넘어 시집을 내는 일은 거의 없다. 여기 무슨 말을 더한다면 군말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해서 온 나라가 시름에 잠겨있고 온 국민이 고통 속에 매몰돼 있다. 하여 고하는 모두 힘을 내자고 이렇게 근심한다.
푸른 하늘 만큼 / 기운 찰 일이다// 가슴도 넓히고/ 두 팔도 벌리고// 이 세상/ 우리 다같이// 한 마음을/ 펼치자 (‘이 가을’)
노시인은 또 이렇게 새 한 마리의 죽음을 통해 세상의 아이러니를 이르집는다.
땅길 물길 하늘길/ 다 눈멀었던 것이냐// 판유리 아랑곳 없이/ 뛰어든 새야 굴뚝새야// 박치기/ 네 주검으로// 질겁한 하루였다 (‘굴뚝새의 주검’)
모난 눈꼴 지어 치떠보는 사람들 보기조차 무섭데 사납데
고하 시인은 또 ‘끽연 풍속도’에서 변해버린 세태를 점잖게 타이르기도 한다.
시가를 꼬나문/ 매끈한 처녀들이// 모퉁이 길 서서도/ 스스럼 하나 없이// 휘이익/ 뿜어낸 연기로// 동그라밀/ 그린다
고하 시인은 좀처럼 정치판 얘깃거리를 시작 소재로 삼지 않는다. 허나 돌아가는 정치 판속은 배알이 뒤틀리게 한다. 참다못해 한 마디 꼬집는다.
나부대는 정치일꾼들 참 많데나/ 너도 나도 나랏일 맡겠다는 것 아닌가/ 일을 맡겠다는 데야 탓할 것 없지만 제 꼬락서니부터 제가 먼저 챙겨야지 않을까 가가/사나운 사람들// 예삐 보아야 할 세상일들/ 모난 눈꼴 지어 치떠보는 사람들/ 텔레비전에서 대할 때마다 볼 때마다/ 보기조차 무섭데 사납데 정치꾼들
고하 시인은 「시선」겨울호(76호,2021,시선사)에 신작시조 ‘새해맞이’를 발표하며 독자들께 새해인사를 전한다. 자신에 대한 다짐이자 독자들에게 바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한 나이 더한대도/ 이다지 안온한가// 다하지 못한 일/ 애닯을 것도// 또 항차/ 되바랄 것도 없이// 이만이만 안온하자
이즈음 고하 시인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렇게 즐기던 술과 담배를 딱 끊은지 십수년, 아주 오래됐다. 그런 시인이 저녁밥을 들면서 오디뽕주 한잔 하는 일이다.
“소주잔으로 딱 한 잔 하는 것이 여간 재미있지 않아요. 매력 있어요. 그처럼 잔잔한 운치가 있을 줄 몰랐지요.”
잠자리에 들다가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메모
평소 고하 시인을 스승처럼 우러르며 따르는 지인(부안저널 박재순 대표)이 보내준 뽕주를 재미삼아 입에 대면서 생긴 딜레탕티즘(호사취미)이랄까. 고하 시인은 한때 석양배를 즐길 정도로 주도(酒道)에 유단(有段)인 애주가였다. 석양배는 양생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믿음도 갖고 있다.
고하 시인은 잠자리에 들다가도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메모해 뒀다가 다음날 문학관에 나와서 되새김한다. 그것이 시작에도 큰 밑거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고하 시인이 읊은 ‘철골소심(鐵骨素心)’. 마음속에 사숙하는 어른에 대한 예찬이자 사모(思慕)였다. 은은한 난향뿐이랴. 꽃을 피워내려는 끈기인 난심(蘭心)이 더 마음에 새겨야 할 미덕 아니던가.
선생은 젊어 계십니다/ 난초요 매화이십니다// 푸른 향기요/ 빳빳한 서슬이십니다// 선생은 오늘도 철골소심// 종을 울려/ 주십니다
고하 시인은 그러나 “오늘 이 순간 ‘새해맞이’와 ‘철골소심’을 독자들과 코로나에 신음하는 국민 모두에게 부치고자 한다”고 명토를 박았다.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