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민의 노래’, '대학 교가들' 친일 논란 속 예산 낭비 지적까지
진단
전북지역의 대표적 친일 인물인 김해강 시인이 작사한 ‘전북도민의 노래’가 또 다시 세밑 구설에 올랐다.
전북도가 친일 시인이 작사한 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제정한다며 지난 4월부터 노래 공모를 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예산과 행정력만 낭비하고 한 해를 넘기게 된 때문이다.
더구나 전북도는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전북문화관광재단을 통해 공모·선정한 노래들(3곡)에 대해 ‘도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원점에서 재검토한데다 예산을 두 배로 인상하며 다시 선정하기로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친일 논란 '전북도민의 노래', 2억 혈세들여 다시 만든다?
전북도 및 전북문화광재단은 최근 '전북도민의 노래' 새 제작을 위해 '위·수탁 협약 변경'을 체결하고 노래 작사·작곡 등 제작비를 기존 8,5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해 다시 공모할 예정이다.
이로써 전북문화관광재단은 제정사업위원회 운영, 작사·작곡·편곡, 홍보영상 제작 등을 다시 맡게 됐다. 하지만 연초부터 정부 공모사업 과정에서 '민간단체 짓밟기' 논란에 이어 최근 전북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선 위증한 문화예술진흥본부장이 고발되는 등 올 한해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전북도 산하기관이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은 앞서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24일까지 도민의 노래 작사 공모전을 통해 지난 7월 총 3곡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당선작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전북도의 판단에 따라 모든 절차를 다시 처음부터 진행하기로 해 비난과 함께 폐지론이 제기되고 있다.
“노래 부를 기회도 없는데 예산·행정력 낭비, 폐지해야” 주장
전북도는 "도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며 "좀 더 완성도 높은 노래를 제작하기 위해 위·수탁 협약을 변경하고, 예산을 증액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따라서 전북도는 "오는 2022년 10월에 있을 전북도민의 날에 새로운 도민의 노래가 불려질 수 있도록 공모 절차 등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론 공무원들 사이에서 조차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래를 부를 기회도 별로 없는 도민의 노래 제작에 2억원대의 예산을 쓰는 것은 지나친 예산과 행정력 낭비”라며 “이번 기회에 아예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앞서 전북문화관광재단은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24일까지 ‘전북도민의 노래’ 공모전을 실시해 모두 89곡의 신청곡을 받아 7명의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지난 7월, 3곡을 당선작으로 선정했었다. 이어 재단은 이들 3곡(작사)을 토대로 새로운 작곡작 공모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전북도는 ‘당선작들이 도민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애매한 이유로 사업을 중단시켰다.
문제는 도민의 노래 제정에 따른 책정 예산 8,500만원 중 시상금만 2,300만원에 달하는 등 당선된 5곡(우수작 2곡 포함)에 대해 지급해야 하는 시상금은 고스란히 예산 낭비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주시 조례 개정 통해 김해강의 '전주시민의 노래' 폐지, 대조
더구나 김해강 시인이 작사한 ‘전주시민의 노래’의 경우 전주시가 지난해 3월 시민의 노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폐지함으로써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주시는 "일제가 남긴 치욕스러웠던 역사를 잊지 않고 잔재를 청산하다"며 지난 3월 조례 개정을 통해 김해강 시인이 쓴 ‘전주시민의 노래’를 폐지했다.
앞서 2019년 3월 전북도의회 이병도 의원은 도정질의를 통해 친일 인사 김해강이 작사한 ‘전북도민의 노래’와 ‘전주시민의 노래’ 폐지를 주장했다. 이에 전북도는 친일 논란이 제기된 도민의 노래 사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노래를 제정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미적거리며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지난 1962년 제작된 전북도민의 노래를 작사한 김해강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 찬양시들을 쓴 전력이 있다. 그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명 '가미카제'로 불렸던 일제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와 '호주여', '인도 민중에게', '아름다운 태양' 등의 친일 시를 남겼다. 이 때문에 그는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는 등 전주덕진공원에는 지난해 그의 단죄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전북 주요 대학들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수십 년 그대로
더 큰 문제는 전북도에 이어 전북지역 주요 대학들의 교가가 친일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입학·졸업식, 학위 수여식 등에서 그대로 불리고 있다. 대학들은 '친일 잔재 청산'을 말로만 외치고 있을 뿐, 친일 인물들이 만든 교가를 학생들에게 사용하게 해 비판을 받아왔지만 개선은 요원하기만 하다.
[해당 기사]
전북 주요 대학들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수십년 그대로
특히 국립대인 전북대와 군산대 교가 작곡 또는 작사가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이다. 또 전주교대와 원광대 교가도 작곡·작사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됐거나 친일 정황이 짙은 인물이 만든 노래들이다.
전북대 교가의 작곡가는 친일 음악가로 꼽히는 현제명으로, 그는 1937년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조선문예회 회원으로 가입해 친일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 단체에서 그는 '천황폐하 중심의 일본 정신으로 국체 관념을 뚜렷이 함으로써 시국인식을 고취하고 황군을 격려 한다'는 취지 아래 '전송' 등을 작곡해 발표했다. 또한 1938년 결성된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에서 경성지부 간사를 맡았다.
이어 1940년대 '구로야미'라는 창씨명으로 활동한 현제명은 1941년 조선음악협회 음악회에서 자신의 성악 작품 '후지산을 바라보며' 등을 발표했다. 또한 일제 말기 친일 음악가 단체에 가입한 그는 일본식 성명 강요에 동참하고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매년 3·1절·광복절 전후 비난·원성 이어지고 있지만...
전주교육대 교가는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성태가 작곡하고 김해강이 작사했다. 친일 시인 김해강은 대학 교가 외에도 '전북도민의 노래', '전주시민의 노래' 등을 작사해 1993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전주 덕진공원에 시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이밖에 군산대 교가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서정주가 작사했으며, 원광대 교가 역시 친일 인물들로 분류된 이은상·김동진이 만들었다. 이들은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노래를 만들거나 일본군 사기를 북돋우는 시를 쓰는 등 일제 강점기 동안 친일 행각을 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친일 인물들이 만든 대학 교가는 지금도 전북지역 주요 대학들에서 개교 이래 수십 년 동안 중요 행사 때마다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불리며 학교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3·1절과 광복절 등을 전후로 비난과 원성이 끊이질 않고 있는 이유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