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 앞으로 100년

백승종의 '서평'

2021-12-04     백승종 객원기자

<<앞으로 100년: 인류의 미래를 위한 100장의 지도>>(이언 골딘, 로버트 머가 공저, 권태형 외 11인 공역, 동아시아, 2021. 원제: Terra Incognita>>

두 사람의 저자는 이름난 석학들이다. 이언 골딘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로 세계화 및 국제 개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고 있었으나,) 로버트 머가 역시 브라질을 대표하는 정치학자란다. 두 학자는 인류가 당면한 14가지 문제들, 예컨대 세계화, 기후, 도시화, 불공정 등의 현안을 이 책에서 간단명료하지만 깊이 있는 통찰로 파헤친다. 어느 페이지를 열든 통찰의 힘이 피부에 와닿는다. 저자들의 박학다식과 요령 있는 설명 그리고 번득이는 혜안 때문에 이 책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어졌다.

책에서 넷플릭스에 관한 설명을 찾아보았다. 과연 이야기가 일목요연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전기통신이 발전하고 광대역 서비스가 확산하게 되자 세상의 문화 교류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즐겨 보는 넷플릭스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데, 1997년만 해도 미국의 시청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은 어떠한다. 2020년 현재 190개국도 넘는 곳에서 수억 명의 지구 시민들이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다.

물론 넷플릭스가 유일한 스트리밍 플랫폼은 아니다. 아마존도 있고, 디즈니, HBO, 홀루 등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존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자들이 서술한 바와 같이 2019년 초에는 HBO가 제작한 <왕조의 게임 Games of Thrones>이 최고로 인기를 끌었고, 넷플릭스가 보여주는 <워킹 데드 Working Dead>가 그 뒤를 따랐다. 구글에서 감상할 수 있던 <카다시안 따라잡기 Keeping Up with Kardashians>도 막상막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2019년 중반에는 사정이 바뀌어, 중국이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 <유랑지구 流浪地球>가 시청률 면에서 세계 2위로 뛰어올랐다. 2021년 가을,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현재는 역시 한국의 <지옥>이 세계 최강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인도든 일본, 말레이시아, 프랑스, 영국, 러시아 또는 이란, 이라크 아니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제작한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 무대를 주무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구가 둥글 듯 인기 차트의 순위도 어느 한 나라가 영원히 독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들은 넷플릭스와 그 경쟁사들이 기술 발전을 이용해 시장을 재조직하였다는 점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들은) 휴대전화와 스마트 TV로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전 세계 곳곳의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무너뜨린 건 기존의 엔터테인먼트의 관습과 시장이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날로 진보하는 인터넷 환경을 이용해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탄생한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으로 유통의 선진국인 한국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 아닌가. 아마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머지않은 장래에 넷플릭스를 능가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운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콘텐츠 사업은 인류의 장래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저자들은 그 문제도 진단하고 있는데, 의외로 간단명료하지만 믿을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그것이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며 복합적인 기능을 발휘할 것으로 본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분석과 전망이 보인다.

먼저 비관적인 평가이다. “쏟아지는 정보에 갑자기 노출되면 (세계 각국의) 현지 문화가 무시당하고, (현지 문화가 초대형 산업체에 소규모 공동체의 문화가) 전유되면 (세계적 대자본에 의하여) 상품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합당하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외진 곳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는 소셜미디어가 자기 부족들의 전통을 무너뜨려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데다가 구성원들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걱정하고 있단다.

또, 멕시코의 어느 원주민들은 인터넷의 영향으로 자신들이 생산하는 직물에 새겨진 고유한 전통문양을 세계 굴지의 패션 회사가 표절하였다며, 그 회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넷플릭스와 같은 세계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인해 야기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 문화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고유문화의 보존과 계승 및 전파에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소수자들이 이제야말로 이러한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노래, 춤, 음식, 의식을 적극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세계화가 항상 현지 문화를 짓밟는다는 가정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새로운 기술도 아이디어 공유와 전통 보존을 통해 문화부흥에 이바지할 수 있다.”

과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부와 주민공동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디지털 아카이브를 개발하고 있다. 가령 수많은 박물관이 각지의 문화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기록하고, 저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널리 전파할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날마다 새로운 ‘오픈 소스 플랫폼’이 세계 각지에서 탄생하고 있다. 21세기 벽두부터 우리나라만 하여도 많은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서로 앞다퉈 고유한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또, 인류사회 전체에 이를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100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자들이 다양한 이미지 또는 지도를 통해서 인류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에서 삶을 지속할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100장도 넘는 다종다양한 지도와 풍부한 인포그래픽을 하나씩 뜯어보노라면 인류가 살아갈 미래의 ‘로드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후위기와 팬데믹 그리고 자본의 위기를 넘어서 21세기의 인류가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흥미롭고 귀중한 안내서라고 말해도 좋겠다. 인간 생존에 관한 최신의 지식과 트렌드를 최단 시간에 흡수하고 싶은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