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국민연금공단 이전 때문"이라니, 황당한 헤럴드경제 주장
서울 언론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
“재난기본소득을 최초로 지급한 전주시의 결단,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이라는 웃픈 현실이 있기에 씁쓸하다.”
지난 26일 해럴드경제는 ‘이세진의 현장에서’란 칼럼에서 ‘국민연금 전주 이전의 ‘웃픈’ 사연‘이란 제목과 함께 ‘전주시의 발 빠른 재난기본소득 지급 배경은 국민연금공단’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시에 내는 세금이 전주시의 재난지원금 재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전북과 서울 외 지역을 바라보는 서울 언론의 편협적인 시각을 다시 확인시켜준 것이어서 씁쓸하다. 전주시와 국민연금공단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문제가 있으면 비판 받아 당연하다.
다만, 그동안 서울 언론들이 국민연금공단이 전주에 이전한 것을 놓고 얼마나 배 아프게 여기며 심지어 사실과 전혀 다른 엉뚱한 비유로 비하했는지 여러 사례에서 나타났다. 이번 사례도 그런 시각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18년 9월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비하하는 보도를 함으로써 파문이 컸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11일 오전 10시57분(미 동부시간) 인터넷판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격요건으로 “돼지와 가축 분뇨 냄새에 대한 관용은 필수”라고 보도하며 조롱하는 뉘앙스의 돼지 삽화를 그려 넣었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선임에 애를 먹고 있는데, 이는 시장 평균을 밑도는 급여수준 때문으로, 여기에 공동 숙소 생활과 축사 분뇨 냄새를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자 이를 바탕으로 서울 언론들은 일제히 이 기사를 근거로 소설을 썼다.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 되려면 돼지 냄새 참아라?’, ‘외신도 비꼰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 인물난’ 등의 내용을 지면과 인터넷, 소셜 미디어 등에 파급시켰다. 비꼬는 보도는 의제파급 효과를 낳았고 금세 전북과 국민연금공단은 냄새 진동하는 '돼지 우리'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서울 언론들은 “6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7년 2월 서울에서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과는 달리 유독 전북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을 열거하며 조롱했다.
이번 헤럴드경제의 기사도 바로 이런 연장선상에서 전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헤럴드경제 기자가 쓴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 3월, 전주시는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시민을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 신청을 받았다. 시민 4만125명에게 52만7000원씩, 총 211억4587만5000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신청부터 지급까지 중앙정부보다 발 빠르게 진행됐고, 전국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취약 계층이 벼랑으로 내몰리기 전 신속하게 지급을 결정한 전주시 결단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 투자업계는 살짝 ‘삐딱한’ 각도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의 눈은 지난 2016년 전주시로 이전한 국민연금에 쏠렸다. 전주에 새 둥지를 틀며 ‘지방세 큰손’으로 떠오른 국민연금이 전주시가 발 빠르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낸 지방세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기여도를 헤아려볼 수는 없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기준 운용한 국내 주식은 132조원 규모였다. 국내 주식 운용수익률은 12.58%로 꽤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주식시장이 초호황을 이루면서 운용 규모는 전년 대비 3조원가량 늘었고, 수익률도 크게 올랐다. 국민연금이 주식 단기매매를 하는 기관은 아니라 할지라도 거래 또한 활발했다.
국민연금이 주식 매매차익을 실현하면 국세인 양도소득세를 낸다. 일반개인투자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지만 ‘대주주’ 경우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대주주의 기준은 상장주식인 경우 코스피 보유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1%, 코스닥 보유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2%다. 비상장주식인 경우 시가총액 10억원 또는 지분율 4%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는 대부분 대주주 지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양도소득세는 대상 기업의 상장 여부나 과세표준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국민연금의 대부분 주식거래에 20~30%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방세는 별도로 양도소득세의 10%로 책정된다. 모두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주식매매 차익의 2~3%를 전주시에 납부하는 셈이 된다. 수익의 극히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납부 주체가 연 132조원의 주식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이라는 점에서 무시 못할 규모다.
전주시로의 이전은 국민연금에는 이미 트라우마다. 젊고 유능한 운용역들이 넘쳐나야 할 국민연금에서 인재가 떠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만 23명의 운용역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났다. 우수한 운용역들이 능력을 발휘해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뼈아픈 손실이다. ‘글로벌 연기금’을 꿈꾸면서 지리적 조건으로 해외 투자전문가들과 교류가 어렵다는 점도 큰 문제다. 투자업계에서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인천공항에 내려 KTX를 타고 택시 잡아 찾아오라 말하기 얼마나 어렵겠냐”고 하소연했다.
재난기본소득을 최초로 지급한 전주시의 결단,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이라는 웃픈 현실이 있기에 씁쓸하다.
글을 쓴 이세진 기자의 칼럼 제목을 ‘국민연금 전주 이전의 ‘웃픈’ 사연‘이라고 달았다. 누가 웃픈지 헷갈린다. 이 기사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마침 KBS전주총국은 28일 '팩트체크'를 통해 밝혔다.
조선우 기자는 팩트체크에서 "준 정부기관인 공공기관은 소득에 대한 법인세, 지방세를 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전주시의 재난지원금 재원 출처를 국민연금공단의 수익으로 추정한 이유로 ‘국민연금공단의 전주 이전이 웃픈 현실이라 씁쓸하다’, ‘전주 이전은 국민연금의 트라우마’ 표현 등 반복되는 일부 중앙 언론의 국민연금공단 흔들기"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조선우 기자가 ‘팩트첵크K’라는 코너에서 ‘지방세로 재난지원금? 근거 없는 흔들기’라는 제목과 함께 조목조목 반박한 내용이다.
'전주시의 발 빠른 재난지원금 지급 배경은 국민연금공단이다', '투자업계가 이를 삐딱하게 보고 있다'. 한 경제지에 기자가 쓴 글입니다. 황당한 주장을 하며 내놓은 근거들, 하나씩 따져볼까요.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거래에는 최대 30퍼센트 정도인 양도 소득세가 부과되고, 지방세는 별도로 양도 소득세의 10퍼센트 정도로 책정된다. 국민연금공단 주식 매매 차익의 2, 3퍼센트가량이 전주시로 흘러들어 가 그 돈으로 재난지원금을 줬다는 주장, 과연 사실일까요?
국민연금공단은 국가사업을 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준 정부 공공기관입니다. 법인세법을 보면 국가는 법인세를 내는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돼있는데요, 준 정부기관인 국민연금공단. 소득에 대한 법인세나 지방세는 내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거래로 엄청난 매매 차익을 봤다고 해도 전주시에 내는 세금은 없습니다. 국민연금의 수익 실적과 전주시의 세수입은 무관한 거죠. 국민연금공단도 해명자료를 냈는데요.
단순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전주시의 재난지원금 재원 출처를 연금 수익으로 못 박은 이유는 뭘까요?
기자가 쓴 글의 원색적인 표현들,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의 전주 이전이 웃픈 현실이라 씁쓸하다', '전주 이전은 국민연금의 트라우마다'. 일부 중앙 언론들의 국민연금공단 흔들기.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죠.
전북에 옮겨온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잊을 만하면 구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이 씁쓸하다는 건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수익률은 11.3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본부 설립 이후 가장 높은 수익률이고요, 적립금도 736조 원이 쌓였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 근거 없는 흔들기, 이제는 멈출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아직도 서울 이외 지역을 변방 취급하며 모든 시각을 서울 중심으로 바라보는 서울 언론의 편협적인 사고와 시각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특히 서울의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서울 외 다른 지역 의제를 다루는 보도 행태에 있어서 이러한 편견과 왜곡이 심하다. 정작 지역민이 목말라하는 의제는 좀처럼 다루지 않다가도 자극적이나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그 때서야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큼지막하게 지면과 영상을 할애하는 습속이 작동해 왔다.
헤럴드경제는 그런 사고와 시각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전북의소리>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