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을 하루 앞두고
백승종의 '역사칼럼'
만고역적 이완용이 호의호식한 끝에 늙어 죽지 않고, 1919년 그가 겉으로나마 위하던 고종을 따라 음독자살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만약에 말이다.
1980년 불법으로 국가권력을 탈취한 신군부 불한당들이 또 그랬다면 어땠을까. 1995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무섭게 그들이 만약 광주희생자들에 대한 속죄의 뜻을 밝히고 스스로를 단죄했더라면 세상이 바뀌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 그러나 역사의 죄인들이 스스로를 처벌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변변한 벼슬자리도 얻지 못한 채 시골구석에서 초라하게 늙어가던 매천 황현 같은 선비. 500년 종묘사직이 망하자 선비의 책임을 다하려고 음독자살한 이는 대개 그런 분들이었다.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와 일면식조차 없던 안중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단 하루도 국록을 먹은 적이 없는 청년이 이국땅 하얼빈까지 이토를 쫓아가 쏴 죽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숨을 순순히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 폭력이 미화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된다고 믿는 내게도 1909년 10월26일에 일어난 안중근의 의거는 통쾌하다.
도리로 헤아린다면, 그 당시 목숨으로 나라를 지켰어야 옳았을 사람들은 수백년간 떵떵거리며 부귀영화를 독점해온 서울의 명문양반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만 해도 대한제국 황실의 시종무관장이나 또는 군부대신을 지낸 아무개의 칼끝에 쓰러졌어야 했다.
죽어도 그들이 죽고, 죽여도 그들이 죽였어야 사리에 맞았다. 그러나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은 나랏일에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한 초야의 선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979년 10월26일에는 달랐다. 악법인 유신헌법을 제정해 놓고 영구집권을 노리던 독재자를 그의 심복 김재규가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날의 거사로 김재규는 독재 권력의 주구라는 과거의 악명을 깨끗이 씻었다. 국민의 *이란 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탐욕과 반칙으로 얼룩진 그들의 역사를 그들 스스로 청산하는 길은 자폭하는 것이다. 당 중진이란 사람들이 모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속죄를 맹세하며 그 정당을 영원히 해산하는 것이다.
이름이 더럽혀진 ㅈㅈㄷ 등의 대중매체도 또한 다르지 않다. 끝없이 시민을 기만하고, 권력에 아부하며 반 국가적인 길을 가기보다는 스스로를 끝장내는 편이 얼마나 통쾌한가. 내일은 의미심장하고 유서 깊은 10. 26.
사람에 대한 희망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나는, 이날이 되면 항상 마음 한 자락에 남아 있는 찬란한 그런 꿈 조각을 꺼내어 동해에 떠오르는 해맑은 태양에 비추어 본다. 내일도 혹시 그런 위대한 혁명이 가능하기는 할까.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