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간 ‘제3금융중심지’...전북도·정치권 그동안 뭘했나?

진단

2021-10-23     박주현 기자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업이었다. 그런데 임기 4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이 없다. 임기 내내 정부의 정책과제로 추진되는 듯했으나 전북도민들의 기대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될 전망인 가운데 서울과 부산 등 다른 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추진 의지 미약은 둘째치고 전북도와 지역 정치권이 얼마나 안이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문제가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줄곧 제기됐지만 뾰족한 대안이나 희망도 보이질 않는다. 현 정부에서 다음 정부로 넘어갈 공산이 큰 상황에서 전북도민들이 아쉬움과 허탈감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위,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 소극적... 왜? 

KBS전주총국 10월 22일 보도(화면 캡쳐)

22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원회가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구을)은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여건을 만들어갔던 서울과 부산과 달리 전북은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힌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 의원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서 지역 순회 경선을 실시할 당시에도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많이 강조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실망스런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지역의 발전 정도와 성숙도, 국제 경쟁력 등 여러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며 “추가 지정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관련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결론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금융위원회가 대통령 공약사항임에도 그동안 추진에 성과를 내지 않고 오히려 연구용역을 핑계로 뒤에 숨어서 다른 지역들과 경합을 벌이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멀고도 먼 길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전북도 역할 중요불구 팔짱만"... 비난 

        전북혁신도시에 들어설 국제금융센터 조감도(현재는 예정지가 텅 빈 상태로 놓여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공약임에도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위해 전북도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경기 광명을)은 지난 13일 “전북도가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양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금융위원회가 ‘대한민국 지역특화 금융산업 발전방안 연구’를 주제로 용역을 발주함으로써 향후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며 “전북도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위해 선결 요건인 전북 국제금융센터 건립의 재원 마련이 중요하다”며 “이 분야에 더욱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전북신용보증재단이 900억원 규모의 국제금융센터 건립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전북신보의 현금 유동성을 문제 삼으며 "자산 중 20% 이내인 400억원까지만 센터 건립 재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 암울한 기류에 휩싸였다. 

이처럼 금융위원회에 이어 중소벤처기업부마저도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보이고 있는데 대해 양기대 의원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의아하다”며 “전북도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돼 왔던 “전북도가 제3금융중심지 지정에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응하며 팔짱만 끼고 있다”는 비판 여론과 맥을 함께 한 것이어서 주목을 끌만 하다.

국민연금 세계 3대 연기금 외형 갖췄지만 금융중심지 살리지 못하는 전북도 

국민연금공단 본사 전경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국민연금공단의 전주 이전 이후 본격 논의됐고 현 정권의 공약사업 중 하나다. 2015년 국민연금공단 본사가 이곳으로 이전할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의 논두렁’, ‘가축의 이웃’이라며 비웃고 폄훼했던 국내외 언론사들도 이제는 달라졌다. 초기와 달리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금융지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지난 6월 말 현재 908조원으로 집계됐다는 내용이 발표되면서 세계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기금 1,000조원 시대’ 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후 2017년 564조원이었던 기금 규모가 4년 만에 908조원으로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은 이제 세계 3대 연기금의 외형을 갖추었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가 제3금융중심지로 지정받고 금융 메카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국민연금공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투자공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의 국책 은행과 다른 금융집적 시설들이 유치돼야 제3금융중심지로 비로소 안착이 가능하다는 분석과 지적이 계속 나왔다. 여기에 농협중앙회와 농협대학 등의 추가 유치가 성사되면 더욱 큰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운천 의원, “여·야 쌍발통 정신으로 함께 추진해야 가능” 

최근 정운천 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은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국민연금의 지속적인 성장, 중앙과 지방의 상생 발전,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 실현을 위해서 기금운용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생태계인 제3금융중심지 지정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안으로 이번 대선에서 “여·야가 쌍발통 정신으로 함께 추진한다면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여 시선을 끌었다. 

앞서 지난 9월 19일 호남 경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광주·전남· 전북지역 TV토론을 가진 자리에서 많은 후보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전주를 제3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최고 책임자 의지 매우 중요”...다음 정권에 기대할 수밖에

전주MBC 9월 21일 보도(화면 캡쳐)

이날 토론에서 질문자로 나선 이낙연 후보가 “제3금융중심지는 사실 서울 부산 전주 등이 앞서 있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인데 방법이 있냐”고 묻자 이재명 후보는 “종합금융은 서울을 벗어나기 힘들고 해양금융은 부산 벗어날 수 없어 전주는 국민연금 관련 연구기관 등이 입주해 있기 때문에 자산과 관련된 금융기관을 충분히 이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밝혔다. 

이어 박용진 후보가 “금융위원회 등이 행정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하자 이재명 후보는 “전주 금융중심지 문제는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한 뒤 “자연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고, 특히 금융위 기재부 포함해 최고 책임자의 적극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대선공약에 포함시켰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사실상 멀어져간 형국이 됐다. 다음 정권만 바라보게 된 상황에서 전북도와 전북 정치권은 4년 6개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많은 도민들은 묻고 또 묻는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