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독일 사정을 보며
백승종의 '역사칼럼'
독일을 중심으로 요즘 유럽 정세를 간단히 적어봅니다. 알다시피 저는 지난 40년 동안 독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어서,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독일사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민당(SPD, 빨강)을 중심으로 "신호등 연정"이 성사되어 가고 있습니다(녹색당과 자유당은 노랑). 3당은 독일을 혁신할 새로운 정치를 펴겠다고 연일 기염을 토하는데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네 가지 문제점이 독일을 가로막고 있어요.
첫째, 연정이 성립되어도 3당의 지향점이 달라서 재정 문제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죠. 자유당은 세금 인상을 극구 반대하는데,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디지털화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외교 군사 문제도 원만하게 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녹색당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있으나, 세계 어디에서 군사적 대립이 불거질지 모르는 형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미국은 독일에게 손을 내밀 것이 빤한 일입니다.
셋째, 리더십의 문제도 있습니다. 신임 총리가 될 올라프 숄츠(현 재무장관)는 진지하면서도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앙겔라 메르켈이 카리스마를 행사하며 유럽연합(EU)을 주도한 것과는 달리, 숄츠는 조용히 정상 자리를 지키는 정도에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 현재 독일이란 국가 앞에는 적어도 네 가지 심각한 문제가 쌓여있지요. 하나는 주요 산업인 자동차 업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고요, 또 하나는 가장 중요한 독일의 무역상대국이 중국인데,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내부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끝으로, 독일의 디지털화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성장동력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겠지요. "신호등 연정"으로는 아마 돌파하기 어려운 난제가 될 것입니다.
요컨대 현재의 독일사회는 '신호등연정'이 해결해야 할 난제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짐이 너무 무거워서 숄츠 정권은 단명에 그치지 않을까요. 그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제가 너무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 우리에 비하면 그들은 그래도 백번 낫지요. 무죄한 이재명 지사를 둘러싸고 연일 벌어지는, 실로 무용한 공격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사회의 병통을 제거할, 용감한 명의가 필요합니다. 범용한 인물에게 나라를 맡기면 모두가 고생합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