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들통난 ‘전북=고대 일본 영토 만들기’

김명성의 '이슈 체크'

2021-10-09     김명성 논설위원

전북을 1,700여 년 전 고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밀어붙이려던 음모가 발각됐다. 국정감사장에서 들통이 난 것이다. 범인은 대한민국 문화재청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정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파주시을)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의 가야 고분을 ‘고대 기문국을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려는 문화재청을 질타했다.

실로 통탄할 일이다. 정부 관료들이 36년의 식민지도 분통터지는데 까마득한 시대를 거슬러 일본의 식민지를 자임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뛰고 있다니. 하지만 그 주범은 문화재청이 그런 표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도록 은밀히 사주한 식민사학자들이었다.

전북 가야를 고대 일본식민지로 둔갑시키는 자들

문화재청 로고

지리산 자락 주변에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일대 고분군(古墳群)은 일찍부터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89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가야계와 백제계 무덤이 대거 확인됐다. 철기류 210여 점, 토기류 110여 점도 나왔다. 남원 운봉고원이 고대 역사와 문화연구에 활기를 띠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화재청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 542호로 지정했다. 40여 기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고 지름이 20m가 넘는 대형 무덤도 12개나 있었다. 특히 구덩이 형태의 가야계 수혈식 석곽묘, 굴 형태의 백제계 횡혈식 석실분은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었고 무덤 축조기술이 우수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영남권에 편중된 가야의 역사문화 조사연구가 호남권에도 확대된 마중물이 됐다.

문제의 발단은 비뚤어진 일부 학자들의 식민사관에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 일대의 가야계 문화유적지를 일본이 신봉하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문국(己汶國)으로 지목한 것이다. 일본이 우리 땅 남부지방을 2백여 년간 통치했다는(369~562년)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맹신한 탓이다.

임나일본부는 우리 땅을 다스린 통치기관이었다는 황당하고 날조된 역사를 말한다. 다스린 주체는 일본의 ‘야마토 왜’이고 그게 가야라는 것이다. 즉 ‘임나=가야’라고 규정짓고 그 속국 중 하나가 기문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역사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역사서에도 아예 없다.

일본이 이 땅을 무단 점령하던 시절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소속 일제 관변학자들이 날조한 것이다. 현재의 식민지 상태는 고대 식민지의 복원이라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그들도 잘 믿지 않는 일본서기를 들이대며 합리화시킨 것이다. 결국 남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 고분 유적’으로 이름을 붙이면 남원은 고대역사에 2백년간 일본의 식민지 영토가 되고 만다. 그들은 ‘가야 고분군’으로 표현하면 될 일을 왜 ‘기문국 고분군’으로 바꿔치기하려할까?

음험한 식민사학자보다 더 똑똑한 시민들

영화 '명량' 중에서(유튜브 캡쳐)

대일 항쟁기(일제 강점기) 이 땅을 영구히 식민지로 삼으려한 관변학자들(이마니시류 今西龍, 스에마쓰 야스카즈 末松保和 등)은 우리 민족의 뇌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바로 역사인식 체계다. 북쪽 땅은 중국이 4백여 년간 다스렸고(한사군), 남쪽은 일본이 2백여 년간 다스렸다고(임나일본부) 주입시켰다.

애초부터 식민지로부터 시작된 나라라는 것이다. 따라서 36년의 일제 점령은 과거 역사의 복원이다. 이 같은 뇌 개조작업에 조선인도 참여했다(이병도, 신석호 등). 그들이 체계화한 역사가 지금의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다. 지금의 역사학자는 진실을 밝히려는 극소수를 빼곤 모두 조선총독부의 충성스런 후예다.

남원을 기문국으로 만들려는 작업은 치밀하지만 어설프다. 중국 역사서의 한자를 버젓이 바꾸고(파문 巴文→기문 己汶), 이 땅의 지명을 억지로 꿰맞춘다(‘남원은 기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역사책인 삼국사기의 기록도 바꾼다(기물 奇物→기문 己汶).

전북 장수의 가야유적도 ‘반파국(伴跛國)’이란다. 반파국 역시 일본 야마토 왜가 식민지로 다스렸다는 지명이다. 장수지역도 일본의 식민지 땅으로 만들려고 안달이다. 경남 하동도 ‘대사국(帶沙國으)’로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뒤늦게 남원과 장수, 하동 시민과 군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멀쩡한 이 땅의 역사를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강변하려다 똑똑한 시민들로부터 혼줄 나고 있다.

식민 사학자들은 자신을 학자로 만든 스승, 그리고 그 스승의 스승인 조선총독부에게 마지막 의리를 지키려한다. 참으로 안쓰럽고 음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무지를 깨뜨리는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설 땅을 잃은 학자들은 남몰래 정부 사업에 참여해 날조하려다가 이번에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에게 들켰다. 문화재청 관료들이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의 천박성과 무지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가야=임나’ 고수하는 식민사학자들

            남원시 아영면에서 발굴된 항아리 내부에 담긴 조개들(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현재 남한의 역사학계가 똑똑한 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옛 역사를 기록한 원전(原典)을 공부하며 눈을 뜨는 시민들이 기존의 연구 성과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직도 백여 년 전 일본 관변학자들의 논문만 들여다보고 있는 현직 교수들이 코너에 내몰리고 있다. 시민들은 2,000여 년 전 기록까지 비교 검토하며 혜안을 얻고 있다. 반면 소위 역사학자들은 백여 년 전 일본인들의 논문에 지금의 상황만 꿰맞추고 있다. 그러니 모순투성일 수밖에.

역사학에서는 1차 사료가 가장 중요하다. 동시대 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는 사마천이 직접 쓴 1차 사료인 역사서다. 1차 사료를 활용해 연구나 논문 서적을 발간할 때 2차 사료라고 부르며 후세 사람들의 판단이 반영된다. 지금의 역사학 위기는 전공학자들이 1차 사료를 외면하고 2차 사료인 일본학자 논문에 매달리는데서 비롯된다.

즉 천 수백여 년 전의 원전을 팽개치고 백여 년 전 일본인들이 쓴 논문자료에 의존하면서 저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일본 관변학자들이 침략 정당화 목적으로 날조한 2차 사료를 통해 역사를 체계화시키다보니 모순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낙랑군 위치를 대동강 변 평양으로 못을 박은 게 일본학자들인데, 1차 사료 원전에는 낙랑군이 지금의 북경 근처라고 기록돼 있고 강 이름인 패수도 대동강이 아닌 중국 대륙을 지목하고 있으니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고대의 역사 서술이 대부분 모순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원전의 기록을 아예 외면하고 일본인 학자 논문에게 매달리거나 논문에 맞춰 원전을 뜯어 고치기도 한다. 죽은 지 오래된 일본인 관변학자들의 철지난 논문만 부여잡고 있는 꼴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설 땅을 잃어버린 이유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역사에 깨인 시민들이 늘어나고 각성한 극소수 역사학자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임나일본부, 200년 식민지 경영 황당한 주장

영화 '명량' 중에서(유튜브 캡쳐)

임나일본부를 살펴보자.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4~6세기경에 일본의 야마토 왜가 우리나라 남부 지방인 임나지역에 통치기구(임나일본부)를 세우고 이를 통해 식민지를 다스렸다는 황당한 학설이다. 이 같은 논리를 만들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임나를 가야라고 규정지었다.

의도는 식민지의 역사적 정당성 확보하는 것이지만 근거는 없다. 임나일본부가 다스린 지명으로 기문, 반파, 대사 등을 명기했다. 현재의 지명에서 연결고리를 찾았다. 경상도 일대가 중심이고 전북 주변지역 등을 꼽았다. 근거라고 든 책자는 일본 우익이 가장 신봉하는 일본서기 뿐이다.

이 땅을 침략한 그들은 일본 관변학자들을 내세워 날조된 역사서로 우리의 고대역사를 허위로 개조했다. 백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 역사서와 중국 역사서에는 한 줄도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의 남한학계는 가야를 임나로 만들고 있다. 자랑스러운 가야 역사가 임나 역사로 변개(變改)되고 있다. 역사 왜곡이다.

전북 여기저기서 발굴되는 가야 유적이 모두 일본 영토란다. 일본의 우익학자와 우익정치인들은 이를 반긴다. 그러기에 일본 역사교과서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이 고대 일본 식민지로 그려진 지도가 게재되고 있다. 양심적인 일본인 학자들도 임나일본부를 외면하고 있는 판에 한국인 역사학자들만 식민지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 연구의 게으름은 범죄행위, 진퇴 결단해야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30호분 발굴현장 전경(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을 침탈하고 강제로 나라를 빼앗은 것은 내부 협력자가 있었으므로 가능했고 명분까지 얻었다. 협력자들은 정미년(1907년)과 경술년(1910년)에 조약체결에 나섰고 권력과 막대한 돈을 챙겼다.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이 그것이다. 모두 76명에 달한다. 결국 대한제국은 사라졌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 대일전쟁은 시작됐다. 나라를 되찾았다지만 일제강점이 만들어낸 분단의 아픔은 식민지의 고통보다 더하다.

문제는 역사분야다. 아직 식민지 청산이 시작조차 되지 않은 유일한 분야는 역사학계다. 식민사관이 버젓이 살아있다. 일본 관변학자들은 우리 고대역사를 날조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영구히 지배하려 했고 실제로 성공했다. 충실한 제자들이 식민사관 전도사가 된 것이다. 한국인 제자들은 배운 대로 우리 역사공간이 압록강 아래, 대륙에 들러붙은 섬이란 뜻의 반도임을 세뇌시켰다(반도적 성격론).

고조선은 반도 안에, 고구려 역사도 반도 안에 가두려 했다. 중국 땅을 누빈 백제 역사도 오기(誤記)라며 묵살했다. 반도를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타율적으로 움직이고(타율성론) 늘 정체된 민족으로 조작했다(정체성론). 우리 민족성은 힘센 자들에게 빌붙고(사대주의론), 언제나 갈가리 찢겨 당쟁이나 벌이는 존재들로 각인시켰다(당파성론).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설립하고 이 같은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 37권을 발간했다. 우리 민족을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빠지도록 짓누르는 장치다. 지금 학자들은 식민지배 목적의 날조된 이 역사서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식민사관의 핵심학설 중 하나가 임나일본부설이다. 남원과 장수 일대를 비롯해 남부지방은 일본의 영토였다 라는 것. 그리고 역사학자의 이름을 내걸고 이를 전파하고 세뇌시키기에 바쁘다. 나라를 팔아넘긴 76명의 역적과 같다. 다른 점이라면 당시는 권력과 돈을 챙겼고 지금은 학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다. 역사 연구의 게으름은 나라를 팔아넘기는 범죄 행위다.

역사학자들은 스스로 진퇴를 결단함으로써 더 이상 부끄러움을 면해야 한다. 식민사관에 찌든 학자들을 청산하는 게 일제 잔재의 청소작업이자 진정한 독립의 시작이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정해 막대한 예산을 들인 가야 역사 복원을, 조선총독부의 고대 영토 만들기로 둔갑시키려는 자들을 찾아 내야한다. 그들을 국민들이 알도록 공개해야 한다. 학계로부터 자발적 퇴진이 최선의 정답이다. 

/김명성 논설위원(전 KBS전주총국 보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