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선생의 명작 '여성의 아들 예수'

백승종의 '서평'

2021-10-08     백승종 객원기자
'여성의 아들 예수'(김근수 저, 클라우드나인, 2021)

“예수는 여성의 삶과 고뇌를 어떻게 알아가고 이해했는가.” 

이 책의 부제가 신선하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신학자 김근수 선생님의 문제의식은 늘 신선합니다. 이른바 신학이라는 것이 대개는 성경 글자 하나하나를 신성화하고, 상식과 거리가 먼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현대의 대다수 지식인이 신학을 죽은 학문으로 취급하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죠. 그러나 김근수 선생은 달라요, 그는 정말 쿨합니다! 김 선생의 정련(精練)된 신학은 아직도 예수와 성경이 살아 있는 학문이요,

깊이 파면 팔수록 새로운 뜻을 우리에게 무한히 공급하는 진리의 원천이라는 점을 훌륭하게 증명합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마태>에 나오는 동정녀 마리아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아들로 정해진 예수라는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비유라고, 저자는 잘라서 말합니다. 그리스 문화에 동화된 그리스 지역의 디아스포라(유대인 이주자 집단) 안에서 탄생한 비유라는 것입니다.

“마리아 동정 출산은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에 속하지만 역사적 근거에 따른 이야기라고 보긴 어렵다.”(275쪽)

동정 출산은 만들어진 이야기라.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얼마나 참신하고, 어지럽고, 통쾌한 설명입니까.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신앙은 시리아에서 시작되었고, 4세기 이후 로마제국의 서쪽에서 강화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개신교 성서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지요. 김근수 선생은 <마태>의 핵심이 동정모의 출산이냐 아니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21세기 한국인 독자들이 마리아 동정 출산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옛 탄생을 통해 우리 가까이 계시며, 예수가 가공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 들어온 실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성과 죄 문제를 강하게 연결해온 서양 그리스도교 전통의 근거를 마리아 동정 출산이나 평생 동정에서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성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마리아 동정 출산이나 평생 동정과 관계없다. 혼전 순결을 지지하고 강조하는 일부 그리스도교 의견이 자신에게 의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와 관계없다. 독신으로 사는 신부나 수녀가 기혼 신자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마리아 동정 출산이나 평생 동장과 관계없다.”(282쪽)

인용문에서 보듯, 김근수 선생은 서양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혼전 성관계를 불결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성생활 자체를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여기는 낡은 관념에 강력히 반발합니다.

또, 성적 경험이 있든 없든, 그것이 인간의 윤리적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관습에 얽매인 보수적인 신앙과는 그야말로 천리만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무조건 성경 말씀을 모두 믿어라, 교회의 오랜 관습을 의심하지 말라는 식의 답답하고 고루한 신학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혁명적 발언입니다. 끝으로, 예수 출생과 관련하여 한 가지만 덧붙여 둡니다.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이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성경 구절은 또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더라면 “남모르게 파혼”하는 것 자체가 유대의 율법에 어긋난다고, 김 선생은 알려줍니다.

요셉을 성경에서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의 뜻이 무엇인가요. 김 선생은 간음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요셉은, 마리아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다고 해석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람인 거죠.

가부장적 인간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어요. 요셉이 성경적 의미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그의 친절하고 자비로운 삶에 있다는 점을, 이 책은 또렷이 알려줍니다(276쪽). 위엄과 권위가 아니라 친절과 자비가 의로운 길, 예수의 길이라는 거죠.

'여성의 아들 예수' 저자 김근수 선생

참으로 멋지고 명쾌한 해석이 아닌가요. 신학자 김근수 선생을 저는 존경합니다. 그는 기성 권위에 조금도 억눌리지 않고, 자신의 맨눈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합니다. 말씀의 참뜻을 캐기 위해서 그는 지혜와 통찰이 담긴 많은 연구 문헌을 섭렵하는데요.

그 열정과 능력 역시 놀랍습니다. 어느 유명한 연구기관이나 대학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독립적인 성서 연구자가 이렇게 많은 문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우뚝한 연구 결과를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김 선생이 고전어는 물론이고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에 해박하다는 점도 귀하지만요,

보나마나 빠듯한 살림살이일 터인데, 그 많은 책을 자비로 구해서 홀로 작은 연구실(엄밀히 말하면 생계를 위한 일터겠지요, 아마)에서 분초를 아껴가며 이렇게 소중한 책을 짓고 있다니요. 진정 우리 시대의 참 선비요, 21세기의 실학자가 아닐까 합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권고가 귀찮아서 교회를 떠나신 분도 많겠지요.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성경 뚜껑을 덮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중세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며 교회를 증오하는 분들도 없지 않을 터입니다. 그런 분들은 김근수 선생을 통해서 예수와 성경을 다시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런 신학자와 함께 한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