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만 우는 게 아니니 한바탕 울어도 보련다

만언각비

2021-10-08     이강록 기자

‘지금 자고 나면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來生)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티베트 속담이다. 지난 추석에 선친을 추모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선친은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들 자기 죽음을 알 수 없다. 그렇듯 죽음은 어느날 홀연히 찾아 온다. 누구나 똑같이 하루를 살면서 어떤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 숨은 보석을 찾아내고 또 다른 사람은 분별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래서다. 티벳 선사 쇼갈 린포체를 되새긴다. 그는 ‘삶과 죽음의 묵상’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때로 몸을 떨면서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오늘 밤 내가 죽는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사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는지, 일어나더라도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일어날는지 모른다. 당신이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쉬지 않으면 당신은 죽은 것이다. 간단하다. 티베트에 이런 말이 있다. “내일이 먼저 올는지 내생이 올는지, 우리는 모른다.” 이것이 린포체의 지적이다.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來生)이 먼저 올지 아무도 모른다.”

흔히들 죽음이란 먼 훗날에나 찾아올 막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분명 알고는 있다. 그다지 절박한 것으로 체감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맞이하는 죽음은 ‘불쌍한 죽음’이 된다. 마지막까지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외면하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난 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죽음은 ‘부끄러운 죽음’이라 평가된다. 반면 공포에 억눌려 맞이하는 죽음은 ‘불안한 죽음’이라 일걸어진다. 자!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떤가?

정말로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 모르는데 오늘 같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감각이 무뎌서, 아무려면 뭐 어때? 이렇게 살다 가면 되지! 하면서 유한한 삶을 소모하고 있다. ‘날마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지’ 하는 다짐은 범생이들이나 하라지 하고 딴청을 부린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제의 노력과 집중이고,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 역시 오늘의 헌신과 인내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니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너무 먼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볼모로 잡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내일보다 다음 생이 먼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불필요한 노파심일까.

갈수록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지금 하고, 보고 싶은 것 있으면 지금 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그래서인가. 가보지 못했던 설악산 공룡능선도 가보니 좋았다. 천사대교를 건너 섬들을 돌아보니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 공감했다. 이곳저곳 둘러본다. 당연스레 아직 못한 것도 많다. 한라산 백록담, 백두산 천지도 봐야 하고 독도에 가서 고추냉이도 먹어봐야 하는데. 지나친 욕심인가.

게다가 더할 나위 없는 욕심이겠지만 다음 생보다 내일이 먼저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잠자리에 든다. 내일보다 다음 생이 먼저 닥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이별 얘기도 못하고 영원히 헤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내일과 내생을 가름해주는 것은 우리 인간영역 밖의 일이다. 다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것뿐이리라.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하지 말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내일 아침을 만나지 못하고 다음 생을 먼저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애써 자기최면을 건다. ‘나는 아닐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연암(燕巖) 박지원이 열하로 가는 길에 요동 땅에 이르렀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을 찾을 수 없는 망망한 벌판이었다. 그 많은 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해가 지평에서 떴다가 지평으로 지고 있었다.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이런 세계도 있단 말인가.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디 어디에도 의탁할 곳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참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보자! (好哭場 可以哭矣)’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울음터가 있으며 그것도 좋은 울음터라니. 허나 전후사정을 헤아리면 그럴싸해진다. 연암이 한양을 출발한 뒤 몇날 며칠 걸려 요동벌판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 한 말이었다. 열하일기 ‘호곡장(好哭場)’이라 불리는 문장의 시작 부분이다.

얼마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졌으면 이랬겠는가. “크게 한 번 울어볼 만한 곳이로구나!” 이런 뜻이었겠다. 보통 사람 같으면 ‘호연지기를 기를 터전’이라고 하거나, ‘압도적인 경관이로구나’라고 말할 곳에서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니?

‘참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보자!’

함께 간 일행이 그 이유를 묻자, 연암은 말한다. 

“사람들은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른다.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야.”

참 그럴싸하지 않은가. 혹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연암의 이 말을 듣기만 해도 상처받은 감정이 낫는 듯할 것이다. 누구나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주위가 마음대로 울 수 있도록 버려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울음을 삼키고 살아간다. 이럴 때 목 놓아 울 수 있는 울음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울음터는 감정을 치유하는 장소가 된다.

조선의 좁은 땅에서 산만 보고 살았던 연암은 요동 땅에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울음이란 슬플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깨달음이 와락 덤벼들 때도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난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힐 때도 눈물겹다. 울음이란 이처럼 엉뚱한 곳에서도 터뜨릴 수 있었던 연암이었다.

연암은 조선 땅에서 한바탕 울음을 울 만한 곳으로 두 곳을 꼽았다. 첫째가 비로봉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이다. 둘째가 황해도 장연 바닷가의 금사산(金沙山)이 가장 울 만한 곳이라 말했다. 그러니까 연암은 누님이 죽어서 상여가 강을 건널 때 울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실컷 우는 사람이다.

울음은 누가 시켜서 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이 동하면 운다. 울음을 울다가 끝내는 것도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역시 울음이 삶에 있어 웃음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란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울고 싶은 것은 「호곡장론(好哭場論)」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슬픔만이 슬픈 게 아니듯 기쁨만이 기쁜 게 아니다. 슬픔의 절정에서 희열을 만나고, 분노의 절정에서 사랑을 만나고, 기쁨의 절정에서 세상의 모든 아픔을 절감하게 된다. 

사람이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으면 우리 서민들에게 그 같은 호곡장이라도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것 같다. 탁 트인 요동벌 같이 마음 놓고 울어도 될 만한 훌륭한 울음 터가 될 만한 곳이 어디란 말인가. 기뻐 울고 즐거움이 사무쳐 우는 울음이라면야 굳이 연암이 말한 훌륭한 울음 터까지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터지면 우레와 같이 터질 고통의 울음, 슬픔의 울음을 감당하기엔 그런 장소가 적합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준다는 말은 언제나 거짓이었다. 선거 때 쏟아내는 달콤한 말과 공약은 당선되고 나서는 아니면 말고 식이 되지 않았던가.

도대체 칠정 가운데 어느 정도를 골라 울어야 하는가. 연암은 방금 태어난 아기의 울음을 비유한다. 어미 탯속에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나와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한 아기처럼 거짓 없이 울고 싶다고 했다.

눈물은 여인만의 것이 아니다. 때론 남자도 목청껏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불효불효 하다가 겨우 정신차릴 무렵, 대답없는 어머님의 차디찬 손목을 부여 잡을 때, 원대한 성취와 장쾌한 보람에 따르는 희열 같은 것, 경탄스런 광경에 놀라 기막힌, 그런 경우들이다.

연암은 드넓은 요동 벌판을 ‘호곡장’이라 불렀다. 그러나 굳이 넓은 공간만을 호곡장이라 부를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저마다의 호곡장 하나쯤은 가져봄 직하다. 즐겨 찾는 바닷가, 한적한 산 중턱, 호젓한 저수지 둑방길이면 어떤가. 나만 느끼고 나만 후련히 털어낼 수 있는 곳에서 마음 놓고 호곡(號哭)해보면 어떨까.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다시 비상이 걸린 며칠 사이 우리는 정말 내일이 먼저 올지, 다음 생이 먼저 올지 모르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죽음이 기다리는 내일일지, 삶이 기다리는 내일일지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을 이어가야 하고, 일상을 살아가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일지, 언젠가 일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매일 마주하는 우리는 타인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겠다.

일 년 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이라고 한다. 그중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오늘’은 사랑하고 믿고 행동하고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날이다.

산책하다 불현듯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싶어 울었다는 친구가 떠오른다. 그 옛날 공무원 박봉에 당신 4형제를 뒷바라지 하시고 어렵게 사셨는데, 살아 생전 그렇게 엄하게 자식들을 대했던 아버지였는데, 하관 때조차 눈물을 안 흘렸는데, 돌아가신 지 십년도 넘었는데.

왜 이렇게 보고 싶은지, 엄한 훈육이 사랑이었음을 육십이 훌쩍 넘은 이제야 깨닫다니… 친구의 그 카톡을 받은 이 몸도 덩달아 눈물바람 하고. 어디 그 친구만 그랬겠는가. 돌아가신 어버이가 사무쳐오는 건 우리네 모두가 마찬가지다.

‘비내리는 호남선’ 들으니 눈물이 주르륵

물론 연암의 울음과는 종류가 다를 수도 있겠다. 허나 사람 흘리는 눈물에 종류가 다른들 어떠하리. 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 고유의 표현법인데. 오로지 인간만의 감정인데.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선친께서 친구와 약주 한잔 하신 뒤 거나해지면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마음이 적적해 오디오를 틀었다. 마침 ‘목이 메인 이별가~를’ 대목이 나온다. 듣는 순간 목울대가 뜨끈해지며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만… 나이 탓인가. 그렇겠지. 분명 그럴 거야. 아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랬겠지.

/이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