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뉴스의 경중 판단...주객전도, 적반하장
[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 통제 전략 (5)] 주객전도(主客顚倒) 전략
정치권력은 뉴스의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정치권력이 뉴스의 경중 판단을 하는 언론고유의 영역을 뺏거나 대신할 때 그 결과는 몰락이 된다. 역사에서 다양한 사례로 증명된 사안을 무시하고 답습해도 그 결과는 같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은 취임과 함께 청와대 대변인이 ‘뉴스 가치 판단은 내가 한다’고 큰소리 칠 때부터 이미 예고된 셈이다. 좀 안답시고 함부로 남의 영역을 넘보거나 침해하지 말라. 그 대가는 혹독하며 반드시 나타나는 법이다.
박근혜, "뉴스 가치 판단은 내가 한다"...주객전도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주인과 손님의 역할이 뒤바뀌는 것’을 말한다. 뉴스 경중 판단을 언론인이 하지않고 취재대상이 되는 정치인이나 권력이 대신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 근본과 지엽이 뒤바뀐다는 의미),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몽둥이를 든다는 의미)와 비슷하다.
무엇이 뉴스가 되는지 뉴스가치판단, 무엇이 주요 뉴스 혹은 단신이 되는지 뉴스의 경중 판단은 언론사 고유의 영역이다. 보도대상이 되는 정치권력이 뉴스의 경중판단까지 하게 되면 언론사의 고유영역의 훼손되는 것은 당연할 결과다.
망하는 정치권력은 언론의 영역까지도 자기의 일이라며 뛰어든다. 이 역시 일종의 뉴스통제전략이다. 뉴스의 경중판단을 언론사가 하더라도 청와대나 재벌은 비공식적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큰 뉴스를 작은 뉴스로, 작은 뉴스를 큰 뉴스로 둔갑시키기를 시도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몰락의 조짐은 집권 초부터 분명하게 나타났다. 권력의 대변인이 뉴스감 판단은 ‘내가 한다’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발언할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일부 언론은 역시 우려를 표명했다.
‘폴리널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선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의 발언이 화제가 되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2013년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언론에 대한 존중’, ‘국민의 알권리’ 소홀
윤 대변인은 당시 인수위 시절 기자 브리핑에서 “기사거리가 안 된다. 영양가가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거리가 있는지 여부는 언론이 판단할 문제 아니냐고 기자들이 반발하자 “있는지 없는지는 대변인이 판단한다”고 말을 자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분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위험한 주장을 늘어놓은 이유를 이렇게 전해졌다.
"제가 30년 정치부 기자와 논설위원, 논설실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언론이) 국가 요직에 대한 인선 때마다 엄청난 오보를 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는 것을 아주 통감한 사람...(취재원과) 언론과의 신뢰가 형성돼야 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언론관..."(<프레시안> 2013년 1월 7일)
인수위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 ‘기사거리가 없다’면서 자신의 언론관을 길게 늘어놓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기사감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언론계 경력 30년을 내세우며 자신의 언론관을 피력했다. 대변인의 자리에 가서도 언론계 경력을 내세우며 후배 보듯이 내려다보기 시작하면 ‘언론에 대한 존중’, ‘국민의 알권리’는 소홀해질 위험성이 있다.
특히 한국의 언론계는 선후배 질서의식이 강하다. 폐쇄적 조직일수록 ‘선후배 의식’이 강해서 자리가 바뀌어도 사석에서는 ‘선배, 후배’라는 식으로 일체감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는 서로의 입장,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30년 언론계 선배가 3년차 출입기자를 어떻게 보겠는가. 그를 특정 언론사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보겠는가, ‘젖비린내 나는’ 새까만 후배로 보겠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사감 판단의 주체’ 부분이다. 대변인은 특정 조직을 대변하고 기자는 국민을 대변하기 때문에 기본적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변인은 조직의 논리와 주장을 정리하여 전달하면 된다. 그 내용을 보고 기자들이 ‘기사감이 된다 안된다’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저널리즘의 정도다.
기자들이 기사감이 된다고 판단해서 기사작성을 하더라도 부장이나 국장이 ‘보도할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을 내리게 된다. 저널리즘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각자, 각 위치에서 역할과 판단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흔들게 되면 혼란과 반발이 일게 마련이다.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 고집한 박 전대통령은 첫 미국 방문길에서 인턴성추행 논란으로 야반도주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국격도 국빈방문도 ‘국제수치’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취재대상인 정치 권력이 ‘뉴스가치 판단은 내가 한다’는 오만한 자세는 끝내 대형사고로 짧은 대변인 시간을 마감했다.
'불통' 스타일...언론의 고유영역까지 침해한 '사필귀정' 결과
박 전대통령의 사람보는 눈에 문제가 있고 참모의 만류를 듣지않는 불통 스타일은 이미 이때 그의 탄핵, 몰락을 예고한 셈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무지의 결과로 온 국민을 분노와 수치심으로 떨게 했다. 박 전대통령은 그러나 사과조차 하지않고 잠행했다.
‘뉴스가치 판단은 내가 한다’는 언론 통제 전략을 조직적으로 실행한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원조다. 그는 문화공보실에 각 언론사에 뉴스의 크기, 사진배치 여부, 용어선택 등 세세하게 지침을 내리는 홍보조정실을 만들었다. 홍보조정실은 전직 언론사 간부 등을 고용하여 권력과 함께 독재권력에 불리한 뉴스는 없애거나 축소시키고 홍보뉴스를 매일같이 정리, 전달하여 보도되도록 만들었다.
언론을 권력의 홍보수단으로 만들었다. ‘땡전뉴스’ ‘땡박뉴스’는 바로 이런 권력의 뉴스가치 판단의 결과물이다. 권력을 감시, 견제하는 언론의 제4부 역할을 존중하는 대신 국가 홍보기관으로 전락시키는 대신 언론사에 특혜를 베풀었고 주요 언론사 간부나 사장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이나 장관 등의 자리를 제공했다.
언론의 일을 권력이 대신하는 과정에서 불법 군사정권은 맘껏 홍보, 영웅화의 기회를 얻었고 그만큼 비례하여 국민은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노예가 됐다. 진실은 왜곡 됐고 정의는 사라졌다. 오죽하면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생전 “언론은 있으나 저널리즘은 없다”고 개탄했을까.
권력이 잠시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여 ‘뉴스감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결과는 권력의 몰락이었다. 잠시 얼굴에 분칠을 하여 국민의 눈을 속일 수 있지만 국민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불행한 대통령 전두환의 뒤를 이어 박근혜가 뒤따라가는 것은 언론의 고유영역까지 침해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나 할까.(계속)
/김창룡(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