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백승종의 '서평'
선생님은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참 좋아하죠.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바로 한 잔을 내려 마시고, 아침나절에도 또 한 잔, 오후에도 다시 한잔을 천천히 마시니까요.
남쪽 나라 김해에서 날마다 정성스레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정인한 선생은, 은은하게 커피 향이 풍기는 문체로 말을 걸어옵니다. 그는 누구보다 정직합니다.
“상호가 ‘좋아서 하는 카페’라서, 손님들은 내가 커피가 좋아서 카페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참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름을 정할 때 고려한 것은 프러포즈였다. 앞에 아내의 이름이 숨겨져 있다.
괄호 열고 정애 괄호 닫고 좋아서 하는 카페가 정식 명칭이다. 당시의 여자 친구였던 아내가 연거푸 시험에 떨어지기만 하던 나를 믿어줘서 빚을 냈다. 그 돈으로 짧은 시간 동안 커피 공부를 하고, 카페를 오픈할 수 있었다.”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에는 우리 시대를 함께 사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한 시민의 삶이 담겨 있어요. 솔직 담백하고 조용한 말씨로 정 선생은 일상의 희로애락을 숨김없이 털어놓아요.
“아무래도 두 딸이 태어나고, 나는 매출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밤마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생기고 그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선물해주고 싶은 욕망이 강해질수록 그랬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내가 주체성을 잃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감정만 다스리고 손님의 마음을 우선하는 것이 어떤 날은 고강도의 육체노동보다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설적으로 가게가 낡아갈수록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왜냐하면 손님들은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한 사람들로 한정되어 갔기 때문이다. 단순한 호기심에 들른 손님들은 멀어져갔고, 우리의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했다.”
아마 인생이란 이런 것일 것 같아요. 우리의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할 때 비로소 삶이 안정을 찾고 행복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오는 것이겠지요.
정 선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이것이 그분의 이야기인지 “나의 이야기”인지 구별이 잘되지 않는 구절이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아마도 거기서 거기인가 봐요. 공연하고 자잘한 걱정이 끊이지 않으니까요.
“11시 45분부터는 둘이서 일한다. 그때부터 염두에 두는 것은 손님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타심이다. 나이를 떠나서 서로 최대치의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귀 기울여 들을 것, 함께 일을 하고 같이 앉을 것. 이런 것들이 내부에서 강조되는 배려의 원칙이다.
최종 감독은 자신의 몫이지만 행하면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 같다. 그런 룰을 바닥에 깔고, 십 년째 카페가 움직이고 있다. 떳떳하게 일한 날은 카페에서 얻은 피로감이 훈장 같다. 피곤함이 걷히고 맑은 얼굴로 카페를 나서는 손님들의 얼굴을 보면서, 작은 동네에 약간의 기여를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요, 정 선생은 절망의 나락에 빠지는 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늘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날마다 눈부신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는요,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을 중간에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도, 지나간 “나의 시간”이 복원되기 때문이지요. 잊고 지내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벌어져 통증이 느껴지다가 어느새 다시 아픔이 잦아들고, 오늘부터는 더욱더 맑고 깨끗하게 하루를 살리라는 다짐이 생기네요.
“매일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의 알람을 확인하듯, 글을 쓴다. 어떻게 당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 틈이 나면 새로운 단어와 문장을 떠올린다. 형식을 갖춘 글로 쓸 수 없는 다짐이라면 그것은 미약한 것이고 이내 시간에 침식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정인한 선생이 날마다 향기로운 커피를 빚듯, 가슴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이란 책은요, 이땅의 평번한 시민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며, 아내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떤 세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가 말하는 일상의 풍경을 잠시 들여다보자고요.
“아메리카노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각 원두가 가진 특징적인 맛도 있지만, 뽑는 사람이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는 점이 전문가 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원두가 가진 풍미를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뽑아야 한다. 과하면 텁텁하고, 부족하면 밋밋하다.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 마시는 사람이 생두의 여정을 상상할 수 있고, 식어도 맛있는 커피가 완성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손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 원두 가루가 담길 곳과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은 완벽하게 깨끗해야만 한다. 이 부분은 커피를 내리는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다.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의 날도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조절을 해야 한다. 바리스타의 자존감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결정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겠지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삶의 진위가 결정되는 거지요. 어디 바리스타의 커피 한잔만 그렇겠습니까. 옛 스승들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愼獨)고도 말하였고, ‘네 자신을 속이지 말라’(勿欺)고도 하셨어요.
오직 진정으로 성실한 마음(誠)을 가지라는 주문이었는데요. 글을 통해서 제가 들여다본 바리스타 정인한 선생의 일상은요,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성실과 정직이란 돛대를 세워 힘겹게 항해하는, 망망대해에 뜬 외로운 배(孤舟)와도 같아 보입니다.
이책은 연령과 성별 차이를 떠나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이지요. 부담없이 천천히 읽기에 참 좋습니다. 공연히 분주하기만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푸른 하늘이 조금씩 열리는 느낌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