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두 정상, 종전선언 이어 일본에 분단 책임 물어야
김명성의 '이슈 체크'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이 잔잔한 평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직통연락선 복원 발언으로 맞장구 친 것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여가는 모양새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 북한 참가를 위한 후속 움직임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올림픽 위원회(IOC)가 북한이 2022년 말까지 올림픽 참가를 정지시킨 매듭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노력이면 베이징 동계 올림픽 북한 참가쯤은 능히 해결할 수 있다. 동계 올림픽을 전후해 벌어지는 남북한 외교가 당분간 지구촌에 흥미 있는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더 나아가 종전선언을 향한 남·북 정상과 미·중 정상의 화해가 이뤄진다면 전 세계인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미중 무역 갈등까지 해빙 무드로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
한국 전쟁은 국제전, 분단 책임은 일본에
6.25 한국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자(終戰)는 국제적인 약속(종전 선언)이 한 발짝 씩 다가오고 있다. 종전선언은 전쟁을 그친다는 것이지만 전쟁이 시작된 원인까지 들여다보고 인류사에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교훈을 남겨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전쟁의 원인인 분단, 분단의 원인인 일제 강점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이 땅을 강제로 통치하면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 국가다. 전쟁은 세 나라가 삼국동맹을 맺고 일으켰지만 독일과 일본이 주도하고 이탈리아는 독일을 보조하는 형태를 띠었다. 전쟁에 승리한 연합군은 독일을 분할 점령했다. 동·서독으로 나뉘고 수도인 베를린이 여러 나라 관할로 갈가리 찢겼다.
미‧영‧중‧소 연합국은 일본도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했다. 네 개의 주요 섬으로 이뤄진 일본의 전 국토가 나라별로 할당됐다. 그러나 실제 영토 분할은 전범국 일본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피식민지국에서 이뤄졌다. 우리 땅이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다. 이 땅이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 된 셈이다.
일본이 패전되는 해인 1945년 2월 흑해연안의 휴양도시 얄타에서는 연합국 정상들이 소련의 일본 공격을 논의했다. 패전을 예감한 일본은 잔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신(神)으로 숭앙된 천황제 유지와 항복 조건을 완화하는 술책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 대량의 사상자를 내게 한 오끼나와 전투도 그중의 하나다.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도 투입됐다. 사상자를 많이 발생시켜 항복조건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술수에서 시작된 참혹한 전투들이다. 미국은 소련군의 참전을 재촉했다. 원자폭탄도 투하했다. 그들은 일본 본토에 들어가면 미군 희생자가 얼마나 많을지 잔뜩 겁먹고 있었다. 미군은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작업도 서둘렀다. 기준선은 북위 38도였다. 이 땅에 그어진 분할 점령선은 이렇게 허망하게 만들어졌다.
분단 원인 일본, 분단 실행 미국, 분단 조연 소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연합국은 전쟁 승리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패전국 처리와 패전국 영토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미국이 재촉해서 이뤄진 소련의 일본전 참전에 대한 보상은 골칫거리였다. 소련은 일본의 점령이 목표였다. 다급한 미국은 분할 통치(divide and rule)로 방향을 잡았다.
독점 지배가 아닌 분할 통치는 미·소 모두에게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38도선으로 위치를 설정한 것은 일본의 항복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한 1944년부터였다. 실제 38˚선을 그은 실행자는 두 명의 미군 대령이었다. 이들이 받은 상부로부터의 명령은 ‘가능한 한 북쪽까지 확보하라’는 정치적 고려사항뿐이었다.
소련으로선 손해될 게 없다. 절반씩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 땅은 북쪽 쿠릴열도 4개 섬에 소련군이 이미 상륙해 들어간 현실을 인정해 거기만 빼고 미국이 본토 전체를 점령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미국의 트루먼, 소련의 스탈린이 서로 동의했다. 일본 땅은 멀쩡한 대신 우리 땅이 반 토막 난 현대사의 팩트들이다(정경모. 와다 하루키. 구대열. 이완동. 김계동. 주봉호).
결국 제국주의 일본이 무력 점령한 식민지 통치가 분단을 초래했고 세계 대전 기간 연합국의 중심 세력인 미국과 소련의 두 수뇌부가 이 땅을 무참히 갈랐다. 미국은 선을 그은 주연이었고 이를 받아들인 소련은 조연 역할에 충실했다. 전범국 일본 땅은 분단을 면한 채 온전히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
분단 원인 이념 차이로 왜곡...식민사관, 분단 정당화
우리나라 국민들은 분단의 원인을 일본의 책임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단지 남·북의 이데올로기 차이로 분단됐다고 생각해 왔다. 민족 간 총칼을 겨눈 6.25 한국 전쟁이 참혹했던 탓이다.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 남북 간 원한은 분단의 원인마저 다른데서 찾았다. 그래서 해방 정국의 좌우익 대결과 남한의 자본주의,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분단의 필연성을 찾았다.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도 남쪽과 북쪽이 벌인 이념대결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였다.
분단될 운명도 일본 관제 역사학자들이 인위적으로 꾸민 역사에서 찾아냈다. 일본인들은 침략과 동시에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 허위로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북쪽은 중국이 4백여 년간 통치했다고 날조한 ‘한사군’ 으로 남쪽은 일본이 2백여 년간 통치했다고 날조한 ‘임나일본부’으로 그럴싸하게 꾸몄다(윤내현·이덕일·복기대).
그리고 강제 점령을 옛날에 다스렸던 땅을 재점령한다는 역사의 복원으로 주입시켰다. 우리 민족의 뇌리 깊숙하게 박아놓은 가짜 역사가 식민사관(植民史觀)이다. 식민사관을 수립해간 기구가 조선총독부다. 조선총독부는 그렇게 남북의 역사를 갈라놓았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에 길들여진 우리는 분단의 필연성도 날조된 역사를 따라 찾아냈다.
식민사관은 식민지를 길들이려는 조선총독부의 통치이념이다. 청산되지 않은 그 잔재가 이 땅의 분단을 정당화했다. 그런 사이에 전범국 일본 때문에 갈라진 분단의 원인을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이는 역사학자의 몫이며 지식인들의 책임이다. 그러고 보니 이 땅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대일 항쟁기(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편찬기관인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역사관을 따르는 충실한 제자들 아닌가?
신임 기시다, 전범국 총리로 자각시켜야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는 2차 대전 성노예인 위안부 합의(2015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한-일간 팽팽한 외교전을 벌였던 기시다 총리는 일본 우익출신이며 아베의 충실한 후계자다. 한일 역사문제와 영토, 위안부 배상현안 타결에 기대할 바가 없는 인물이다.
아베는 혈족이 2차 대전 전범자가 많았고 그 집안 후예답게 일본의 군국주의를 선도했으며 기시다는 맹렬한 정책의 계승자, 추종자다. 따라서 기시다는 냉각 상황인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인물일 수 없다. 그의 말대로 ‘대화는 필요하지만 공은 한국에 있다’고 한 수준에 그친다.
전범자들에게 제사지내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시기와 상황을 생각해 참배를 생각해 보겠다’고 말할 정도의 뿌리 깊은 우익이다. 이런 인물과 이런 성향을 배출한 일본 정계에 동북아 현안 해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오히려 군국주의의 발호, 북한 제재,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헌법 개정작업이 지속될 것이다.
올해의 나머지 석 달은 남북 두 나라 실무자들의 숨 가쁜 만남이 될 것이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전후한 종전 선언과 남북교류 재개 노력이 돋보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백 번째 총리로 들떠있는 일본 정계에 강력한 경고가 따라야 한다. 이 땅의 분단 책임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늘 주장하는 ‘납치피해자’ 문제란 것도 분단 때문에 빚어진 일 아닌가? 그리고 얼마나 지엽말단적이고 사소한 문제인가? 따라서 남북 정상간 오고갈 의제 중 분단책임론도 제기하며 일본의 자숙을 촉구하고 군국주의의 발호를 차단해야 한다.
분단 책임론 제기의 기회, 식민 잔재 청산의 기회
현대사에서 일제의 강제 점령은 미소 냉전 대결과 더불어 분단을 낳았다. 분단은 이 땅을 늘 전시 상황으로 내몰았다. 군비 경쟁과 핵무장 국가가 된 까닭이다. 분단책임을 묻는 것은 미래를 말하기 위함이다. 남북교류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에게 각성을, 유엔제재라는 미명아래 북한 제재에 추종하는 국제사회에도 설득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 종전선언을 제기(2021년 9월)한 것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의 연설(2018년 5월)의 연장선상에 있다. 15만 명 북한 군중 앞 연설은 민족의 평화를 부르짖었고 이번 유엔연설은 국제사회에 이 땅에서 현재 진행형인 전쟁 상황의 종식을 포효했다. 그 결실은 6.25 한국 전쟁의 당사국인 중국 베이징에서 내년 2월을 전후해 매듭 되어야 한다.
아울러 분단의 원인을 우리 탓으로 여기는 식민지 근성을 하나씩 떨쳐내야 한다. 민족의 대각성을 이뤄내야 한다. 분단의 원인을 파들어 가고 남북 화합을 가로막는 장벽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내년 3월 대통령선거는 민족의 협력방안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주도해나갈지 정당 간, 후보 간 상호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김명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