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질병에는 사회적 책임이 크다

백승종의 '서평'

2021-09-30     백승종 객원기자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동아시아, 2017.

1.

김승섭(고려대 교수)은 사회역학이 전공이다. 그는 사회적 차별, 사회적 고립, 그리고 고용불안이 사람의 몸을 해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이 옳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세상의 질병을 고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뼈아픈 사실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7쪽)

2.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는 일 년이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는데, 건기에는 식량 사정이 상대적으로 좀 낫다고 한다. 그래서 건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기에 출생한 이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산단다.

40세 이후의 생존율이 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접하고, 나는 정말 아연실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네덜란드에는 엄청난 기근이 들었다. 그때 잉태된 아이들은 성년이 되자 보통의 네덜란드 사람들에 비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3배나 늘었다.

그들은 정신분열증에 걸릴 확률도 약 3배나 높았다.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도 훨씬 높았다니!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렇게 억울한 일도 있겠나 싶다. 문득 6.25 전쟁 전후에 태어나신 우리나라의 70대는 다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요컨대, 가난하면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죽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3.

김 교수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설명하듯, 우리 사회에서 실업은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 자살율이 높아지는 것은 불행하게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북유럽의 몇몇 복지국가를 제외하면, 세계 어디서나 목격되는 비극일 것이다.

내가 사는 평택에서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량해고 된 쌍용자동차 사람들은 대부분 ‘아웃소싱’된 자원으로 살 수밖에 없다. 한데도 우리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정부의 도움을 받은 쌍용 사람들은 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한국은 자살율이 엄청 높으나, 정부는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투자를 무척 꺼리는 나라이다.(문재인 정부는 좀 나은 편이겠으나 여전히 미흡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적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 되기도 합니다.”(96쪽)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우리 정부는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까. 차기 대선에서는 이 문제가 과연 중요 이슈로 부각되기나 할까 모르겠다.

4.

비정규직은 몸이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다. 하청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아파도 직장에 끌려나가는 비율이 2배 이상 높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 몸이 아프다고 태연히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처지이다.

원청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상당히 불안하다.책에 도 적혀 있듯, ‘앞으로 2년 뒤에도 내가 여전히 직장에 다닐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절반이나 될까 모르는 실정이다. 현대차처럼 잘 나가는 회사의 판매직 사원들도 다들 불안에 떤다. 김승섭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데, 나로서는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고용불안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저성과자 해고’(라는) 행정지침은 고용불안을 전 사회적으로 만성화시키고(있습니다.)”(127쪽)

5.

그밖에도, 사회적 편견에 몹시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성 소수자들이 그에 속한다. 그들의 자살시도는 보통사람들에 비해 9배나 높다! 김승섭이 크게 우려하는 것은, 특히 10대의 성소수자들의 생명이다. 한국의 교사들 가운데는 적어도 40퍼센트가, 동성애를 일종의 사회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판국이라서 10대의 성 소수자들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성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도 거둬야 할 때가 되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지에서 탈출해야 한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 치료가 필요한 건 ... 이 사회(이다).”(218쪽)

일부 기독교계 인사들과 극우 보수정치가들은 아직도 성 소수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지난 수년간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서 함부로 쏟아낸 무지한 발언을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신영복, 이 책 219쪽에 재인용)

6.

질병의 문제를 사회적인 노력으로 웬만큼 해결할 수 있을까? 김승섭은 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세토 마을을 성공 사례로 소개한다. 흥미롭게도 로세토 마을은 본래 가난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계층간의 차이가 별로 없는 소박한 사회였다는 말이다.

따뜻하고 진정한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공동체여서, 마을 사람들은 서로 깊이 신뢰하였고 서로를 돌보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로세토에도 항상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290쪽)

로세토 마을에 사랑의 불씨를 퍼뜨린 이는, 니스코라는 평범한 신부님이었다. 그는 채석장 인부들과 뜻을 모아 노조를 구성하고, 그 위원장으로 임금인상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 덕분에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292쪽)이 로세토 마을에 생겼다.

이후 마을 사람들의 심장병 발생율이 이웃 마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한동안 로세토 사람들은 경제성장이 없어도 행복하고 건강하였다. 그러나 이 유명한 로세토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얼마 후에는 연대가 사라졌다. 주민 상호 간의 신뢰도 떨어졌다.

이 마을 사람들도 이웃마을과 비슷해지고 말았다. 그러자 로세토에서도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이 사라져갔다. 심장병 발병율도 주변지역과 똑같이 되고 말았다. 로세토 마을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책의 저자 김승섭이 하고 싶은 말도 아마 이것일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톨스토이가 던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사랑인 것이다. 사회적 차별을 없애고, 고립된 이웃에게 우정과 연대를 약속하는 것.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돌보는 정부와 지자체를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시대의 양심적인 보건학자 김승섭의 외침이 아닐까 한다. 부디 그 메아리가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가기를 바란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