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유권자들, '텃밭의 허수아비'...정당의 지역기능 '상실'
[지방부활시대(28)] 지역정치와 정당 민주주의
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자가 선거에서 유력 정당의 후보로 선택되지 못하면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도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인의 자질보다는 후보자가 속한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을 거듭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의 운영, 특히 정당의 후보 공천과정에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정당은 당 대표 선출이나 당헌 규정을 제정하는 정도에서만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지역 유권자들 입장에서 충실히 보도하는 지역언론 드물어
민주국가에서는 정당 공천권을 정당 권력자들이 아닌 지역당원과 유권자들이 행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여당과 야당 모두 정당 권력의 지역분산을 원치 않는다. 정당 대표는 공천권을 쥐고 있어야 다음 대선에서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은 시도의원의 공천권을 쥐고 있어야 다음 총선에서 선거운동에 활용할 수 있다.
공천을 받기 위한 각 지역후보자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이를 지역 유권자의 입장에서 충실히 보도하는 지역언론은 드물다. 설사 제대로 보도를 해도 워낙 지역언론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적어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공천권은 중앙권력이 독점하고 그것을 둘러 싼 갈등과 비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총선을 앞두면 같은 정당 내에서는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정치인들 대결과 갈등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당한 대결과 갈등도 있다. 우선 여야 간의 대결은 정당한 투쟁이다. 향후 집권을 위해 여당과 야당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는 여의도에서...지역 유권자들은 '텃밭의 허수아비'
각종 국가적 현안에 대해서 국민의 의견이 양분되어 있는 만큼, 여당 과 야당이 상호 공격을 하면서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것은 정당한 민주정치의 일환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정당 내에서도 이념과 노선이나 정책 등을 두고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 내부 갈등은 정책 노선이나 이념과는 무관한 갈등이다. 보수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당 내 갈등의 원인과 결과는 모두 '공천'으로 귀결된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최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권력투쟁 중인 것이다. 정당의 핵심 기능인 후보자 공천 과정이 여야 모두 아직 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탓이다. 군사독재 에서 벗어난 이후 한국의 제도권 정치는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갖추 었지만, 정당의 내부는 아직 민주적 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정당 내부에서 공천을 둘러싸고 갈등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당 기능의 핵심인 지역 단위 정치, 즉 정당의 지역 기능이 극히 부실한 탓이다. 국가가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정당도 지역 단위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든 정치는 여의도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걸 중앙당이 좌지우지하는 구도이다.
그런데 여의도에 진출할 사람을 선출하는 곳은 지역구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차원에서는 정당도 정치도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정치정보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선출할 정치인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에서 정당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역 배타성이다. 2021년 기준으로 여당은 호남에서, 야당은 영남에서 거의 배타적 독점권을 갖고 있다. 지역성이 옅어지는 수도권에서는 유권자의 고향이 투표 성향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이다.
한 때 한국 정치에서 지역은 정당의 '텃밭'이라 불리웠다. 비록 '텃밭'이라는 표현은 빈도가 줄었지만, 지역 유권자들은 텃밭의 허수아비나 다름없으니 지역의 후보자 공천권을 중앙당의 권력자들이 독점하고, 이를 두고 정당 내부에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정치는 지역이다" 통용되려면...
겉으로는 공천위원회나 상향식 경선 등을 내세우며 마치 투명하고 공정하게 유능한 인물을 공천하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그러나 자기들 스스로도 그러한 절차를 신뢰하지 못해서 내분을 겪고 있는 것이 한국 정당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의회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다른 민주국가들은 어떤가?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듣보잡'이다. 정당의 예비선거(primary)제도를 통해 공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고 있는 덕이다. 그 지역에서 정당을 대표할 후보자를 중앙당에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당원 선거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이다.
한국에서도 정당의 예비선거제도가 정착되면 중앙당에서 영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역구에 갑자기 나타나서 지역주민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중앙당에 가서 권력자 밑에서 아부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고, 지역에서 정치일꾼으로서 기초를 다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중앙정치보다 지역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지역 단위 정당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모든 정치는 지역이다(All politics is local)”라는 정치적 진리가 통하는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장호순 교수의 저서 <지방부활시대>에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글임.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