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 속 '농촌 붕괴' 심각, 실효적 대책 시급
르포
석양의 노을빛은 잠들게 하고
황금빛 영혼으로 다리를 놓아
어둠속에도 변하지 않는
무지개 빛 사랑으로
안개 속에도 헤매지 않는
꿈결보다 깊은 사랑을
영원히 내려 주소서!
황금빛 농촌 들녘, 황량한 바람만 가득
오래 전 한 가수가 애절하게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농촌 가을의 들녘.
그러나 황금 들녘이 일손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농촌의 코로나 사태가 더욱 암울하게 드러나는 빈 들녘이다.
한가위 명절 연휴가 끝나고 첫 주말을 맞는 25일 오전, 남원시 운봉읍에서 지리산 정령치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물론 주변까지 썰렁했다. 수확철을 맞은 정령치 아랫마을 들녘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핍진한 풍경들이 팬데믹 농촌의 실상을 잘 웅변해 주고 있었다 .
"들녘은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지만 언제 저 많은 벼를, 누가 다 수확할지 막막하다"는 한 농부의 한숨이 크게 들려왔다. 파란 하늘 아래 탁 트인 황금빛 들녘엔 무르익은 벼들만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예전 같으면 마을 이웃 사람들과 일가친지들까지 함께 모여 벼를 수확했지만 코로나 시대엔 이마저 사라지고 황량한 바람만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행히 수확이 끝난 어느 집 논두렁인지 그 주변엔 스산한 겨울 내음이 어느새 가득 풍겨났다.
농촌 마을 민심도 팬데믹 비껴가진 못해...'싸늘'
"그 좋던 마을 민심도 코로나를 비껴가지 못했다"고 푸념하는 한 농부의 이마엔 주름살이 가득했다. 인구 감소와 농어촌 고령화 등으로 빈집들이 많이 늘고 있는 농촌 마을에 코로나19 장기화로 민심까지 흉흉해지고 있다.
전북지역에서 1년 새 빈집이 4,700여동이나 늘어났다는 조사 통계가 전북의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심각성을 증명해 준다. 전북도에 따르면 2018년 9,715동이던 전북지역 농촌의 빈집은 2019년 1만 884동에서 2020년 1만 5,594동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전수조사를 한 탓에 빈집 현황이 여실히 파악돼 전년도보다 43.3%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각 농촌지역들이 자랑해 왔던 친환경 농업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농촌 고령화, 인구 감소로 피폐...코로나 시대 더욱 심각
전북지역 친환경 농가는 지난 2010년 6,000여 농가에서 경작 면적이 6,0802ha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전북지역 친환경 농가는 4,000여 농가로 급감했으며 경작 면적도 5,633ha로 감소했다. 지난 10년 사이 도내에서는 2,000여 농가에서 친환경 농업을 포기하면서 경작 면적도 1,169ha나 줄어들었다.
농업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농촌지역 고령화와 신규 유입 인력 감소, 소비처 및 판로 확대의 어려움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피폐한 농촌 환경은 코로나 시대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곧 사라질 줄 알았던 코로나19.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제 우리 삶과 영원히 공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세상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참 낯설지만 일상생활에서부터 학교, 직장, 가정에서의 모든 삶의 기준과 원칙을 뒤바꾸어 놓고 있다. 농촌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숙고와 새로운 삶의 지혜 중요
곱씹어보면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가 졸지에 굳게 닫히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는 심각한 전염병에 대한 세계적 공통협력과 대응이 인류의 건강과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이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
특히 가족을 포함한 타자들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에 대한 이해, 즉 사회적 관계에 대한 숙고와 새로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궁핍함 속에서도 자신의 생존이 얼마나 타자에 종속되어 있는지, 또한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팬데믹의 일상이 변화 이상으로 충격적인 것은 안정된 삶이라고 굳게 믿었던 우리의 삶이 실은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허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현실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모든 면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심각한 농촌의 코로나 팬데믹 후유증...실효적 대책 마련 시급
포스트 코로나가 요구하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내려야 할 과제를 안고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첫 걸음을 이제부터 내딛고 있는 건 아닌지 싸늘하고 황량한 농촌 들녘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팬데믹 상황이 지속된다면 식량의 최후 보루인 농촌의 붕괴가 우려된다. 농촌의 붕괴는 우리의 건강, 더 나아가 행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스산하고 황량한 바람은 빈 들녘뿐만 아니라 텅빈 농촌 마을에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이다. 더욱 심각해기 전에 '농촌 붕괴'에 대비한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