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언론의 '견문발검', 현재진행형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9-21     백승종 객원기자

오늘은 추석 명절입니다. 누구나 휴식이 있고, 여유롭고 평안한 충전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작년, 재작년의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019년 9월 21일, 꼭 2년 전 오늘 아침에 쓴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한 사건에 관하여 제 소견을 적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제 생각에 공감하실 것이고 또다른 분들은 제 생각을 배척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본 사안에 관하여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그때 그 문제를 한국사회가 수수방관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정치적 분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오늘, 제가 올렸던 글을 떠올리며 다시 성찰해봅니다.

애처로운 투혼 - 윤석열과 대중매체의 '견문발검'

1.

요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기후위기'가 시민들의 관심사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2019. 9. 20)는 독일, 프랑스, 영국은 물론이고 실로 여러 나라에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천금을 쏟아부은 북극 탐험단도 1년 여정으로 노르웨이의 한 항구를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무려 17개국의 학자들이 북극의 얼음을 공동으로 연구해 기후변화의 실상을 정확히 분석하려고 시도한답니다. 이제 유럽의 정치가들도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지난 5월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놀랄만한 변화가 나타난 바람에 상당한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유럽의 시민들은 "녹색당"과 같이 진보적인 정당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그들 정당이 기후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인 처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깥 세상은 이처럼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애쓰는 모습입니다.

2.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갇혀 지내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기후 따위란 아직도 호사가의 취미일 따름입니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을 때만 잠시 기후가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를 잠시 들먹이는 정도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그렇듯 금세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립니다. 지난 한 달 동안(2019년 8월)은 특히 가관이었습니다. 온 나라가 지극히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문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평소에는 이름도 몰랐던 어느 시골대학 총장(동양대학교 최성해 씨)이름으로, 그것도 약 10년 전에 발부된 표창장 한 개가 우리 모두의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상장에 찍힌 그의 직인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알아내려고 수백 명의 검사들이 동원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치적 음모가 빚어낸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그 많은 젊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조차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진상을 덮기 위해 외려 혈안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수사에 과연 몇 명의 검사가 동원되었던가요? (도대체 세월호 사건의 저변에는 누가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요. 아직도 미해결 상태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사회의 비극적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어느 장관의 가족들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검찰 개혁에 나섰다는 이유로 조국) 장관의 아내가 어느 이름 없는 펀드에 투자했다는 10억의 향방을 좇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 중요한 사실인가요?

매우 사소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법은 개인의 펀드 조성을 허락하고 있으니까요. 10억이란 금액은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금액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돈으로 어떤 비리를 저지른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부질없는 이야기로 한달 넘게 사회 전체가 소동을 겪고 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사건이었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개인사였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주물럭거리며 (가히 리얼리티 쇼의 대표작이라 할) '트루먼 쇼'를 벌이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오늘날에는 성남 대장동 개발 사건을 빌미로 이재명 후보를 전방위적으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기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국) 장관 일가족의 일생을 샅샅이 털어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사소한 혐의점이라도 찾아내려고 (검찰과 언론은) 혈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이 세상의 모든 질서가 달려있기라도 한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덤벼드는 수백 명의 검사와 수천 명의 기자들의 모양이 애처롭습니다. 이번 사태는 견문발검(모기를 잡으려고 칼을 뽑아든 꼴)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3.

우리는 조금 더 쿨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도 깊었으니, 저부터라도 이런 하찮은 사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쌓여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다른 생명체들과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 더욱 많은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만약 이대로라면 지구의 생명체는 얼마 가지 않아서 멸종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습적인 생활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깊이 따져보고 싶습니다. 이 가을이 제게는 조용한 침묵과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같이 평범한 역사가도 실은 허물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한껏 괴롭히고 있는 (조국)장관과는 비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300명의 검사들이 덤벼들어 털이개로 먼지 털듯 덤벼들면 저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많은 비리와 흠결을 안고 살아왔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드러난 허물이 조금도 없이 늠름하게 버티면서 검찰개혁의 칼날을 벼리는 그 장관님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어렵게 선택한 검찰개혁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4.

우리 시민들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제 밥그릇을 지키겠다며 말도 안되는 광란의 춤을 추는 검찰권력이나 기득권층의 일부로서 특권층의 입에서 떨어지는 금가루 같은 말씀을 받아쓰기에만 열중한 다수의 기자들, 그리고 소신도 양식도 없이 사는 3천여 이른바 '서명교수'들을 심하게 나무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일에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기보다는 이 가을에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나무라는 회초리부터 들고자 합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