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집권한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후계자, 과연 누가 뽑힐까?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1-09-14     백승종 객원기자

2021년 독일 총선 관전평을 몇 자 적어봅니다. 오는 9월 26일, 독일에서는 총선이 진행됩니다. 현재는 우편 투표가 진행되고 있고요. 이번 선거는 다음의 네 가지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첫째,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후보가 출마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바바리아의 만년 여당인 기사당(CSU)의 마르쿠스 죄더가 총리후보로 나오는 대신에, 대중적 인기가 전혀 없는 기민당(CDU)의 아민 라세트가 여당(Union; CSU와 CDU의 연합)의 후보로 나와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녹색당도 사정은 그러합니다. 하베크의 인기가 훨씬 높은 데도 아날레나 하필 베어보크를 후보로 내세워 궁지로 몰리고 있거든요. 독일의 선거판은 대중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대 막후 정치의 힘이 결정적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됩니다.

둘째, 이번 총선은 16년 동안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의 후계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선거지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시민들의 표심은 현재 재무장관인 사민당(SPD)의 올라프 숄츠에게 쏠리고 있어요.

현재 올라프 숄츠 측이 26%, 아민 라세트 측이 20%, 아날레나 베어보크 편이 17% 등으로 판세가 굳어가고 있습니다. 다급해진 메르켈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자신은 여당 후보 라세트를 지지한다면서 선거 막판에 대세를 뒤집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요, 시민들의 여론을 종합하면 메르켈의 진정한 후계자를 사회당의 숄츠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습니다. 소속 정당은 달라도, 숄츠는 메르켈 못지 않게 침착하고 실용적인 성격의 인물이지요.

사회당의 후보이면서도 '네가 왜 거기 있어?'라는 물음이 나올만큼 기민당 정치가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오늘날의 독일 시민은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정치가보다는 조용히 사회적 안정을 선사할 인물을 더욱더 선호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이번 독일 선거판을 들여다 보면 각 당의 정책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여당인 기민당은 사실상 아무런 변화도 추구하지 않아요. 기껏해야 그들이 내놓은 정책은 '부자 감세'가 전부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호지요.

파이를 키워야 나눌 것이 생긴다. 부자들도 시민이다. 부자가 세금을 면제 받아야 시민들의 일자리를 만든다. 뭐 이런 논리적으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반면에 사회당은 사회정의를 내세워 중산층에게 세금을 감면하고 부자들에게 고율의 증세를 요구합니다.

그들은 코로나 정국의 심각성을 고려해 관련 분야에서 국가 부채의 상한을 높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책적으로 가장 신선하기는 녹색당이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전거와 도보를 적극 권장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로 상품을 운반하면 장려금도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시민들은 각당의 정책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다수 시민들은 유럽 존에서 최강의 지위를 누려온 독일의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습니다.

총선 초반에는 신선한 정책을 앞세운 녹색당이 관심을 끌었으나, 얼마 안가서 기민당 후보로 대세가 바뀌었어요. 그러고는 이제 기민당 후보보다 더욱더 메르켈 같아 보이는 사회당의 숄츠에게로 표심이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는 메르켈의 소속 정당인 기민당을 찍느냐, 당은 달라도 메르켈 같은 숄츠를 그대로 지지하느냐를 두고 고민할 것 같아요. 요컨대 대세는 메르켈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메르켈을 비판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마는 독일에 또 하나의 전성기를 가져다 준 메르켈에 대한 시민들의 향수가 큰 것 같습니다.

끝으로, 독일 정치판도 매우 혼탁하다는 점입니다. 여당 후보 라세트는 부정과 불법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사회당의 숄츠 후보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연전에 세계적으로 관심을 큰 경제범죄 사건, '와이어 카드'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가 하면 녹색당의 베어보크 역시 학위 논문 조작이라든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이력에 가짜 정보가 섞여 있어서 시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독엘에서도 제도권 정당의 현주소가 이러합니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의 권력을 누군가는 반드시 행사해야 하는 것이고, 그 결정은 시민의 투표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런 혼탁한 선거 속에서 다수의 '가짜 뉴스' 생산 조직이 준동하고 있어요. 그중에는 극우와 극좌파의 조종을 받는 것도 있고, 러시아와 중국 등 외세의 영향 아래 움직이는 조직들도 있습니다.

카리스마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후보자들이 나와서 매우 지루하고 볼품 없는 총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그 배후에는 섬뜩할 정도로 치열한 가짜 뉴스 경쟁이 연출되고 있다니요! 이것이 오늘날 독일의 현실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어디 독일만의 일이겠습니까? 

이 글을 쓴 직후에 세 명의 총리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숄츠(SPD) 후보가 가장 큰 호응을 얻었고, 베어보크(B 91/G)가 그 다음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에 비해 라세트(CDU) 후보는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9월 26일까지 현재의 이러한 분위기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당 자리는 사민당(현재는 대연정 파트너)으로 넘어가고, 인품이나 정치적 스타일 면에서 메르켈 총리와 가장 유사한 숄츠가 탄생할 전망입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