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 선생님
백승종의 '역사칼럼'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 1928~1994)은 평생 단 한 권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언어도단(言語道斷), 곧 말로는 진리를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동서양의 종교와 고전에 두루 해박했다. 특히 노자(老子)를 믿고 따랐다.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노자의 이 말씀을 따라서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을까. (평소 부질없이 많은 글을 쓰며 자신을 닦으려 하는 저와는 격이 다릅니다!) 당호 ‘무위당’이 상징하듯, 그는 돈과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어느 때인가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두문불출하고 살다시피 한 사람이다 보니, 뭐라고 붙일 딱지가 없어요.”
일평생 그가 종사한 일이 한둘은 아니었다. 약자를 구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그였다. 평화와 정의의 세상을 만들고자 그가 노심초사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재사였다.
장일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굳이 말하면 ‘생명사상가’요, 20세기 이 땅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성’이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식자들은 그의 사상을 요약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의 세 가지를 하나로 보았다고 말하곤 한다.
장일순의 가장 큰 매력은 언행일치에 있었다. 사소한 일상사부터 어렵고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장일순은 언제나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서로를 극진히 모시며 살고자 했다. 그는 세속(朝市)에 숨은 ‘대은(大隱)’이요, 난세의 ‘대현(大賢)’이었다.
오늘 아침에는 무위당 선생이 더욱 그립습니다. 조금 쌀쌀해진 바깥 날씨 때문일까요.
※출처: 백승종, <<선비와 함께 춤을>>, 사우, 2018.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