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지방단체장·지방의원들 농지 전수조사부터 실시해야"
진단
“농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농업·농촌·농민문제 해결도, 정치문제나 국가문제 해결도 요원하다.”
농지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가운데 농민과 농민단체들의 함성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7일 농지법 개정 이후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지 투기 바람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각 지자체는 물론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농지의 불법 취득 또는 투기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지법 개정은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후보지 농지투기 사태 및 국회의원들의 농지소유 실태가 드러나면서 점차 농지문제 개혁 요구가 강해지면서 시행된 법이다. 개정 시행된 농지법은 ‘농지 강제 처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이행 강제금 기준 상향’,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에 대한 강제 처분 신속절차 신설’, ‘농지 불법 취득 벌칙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 농지이용 실태조사 착수...그러나 형식적 조사 그칠 우려
특히 농지법은 농지의 소유·이용 및 보전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여 농업인의 경영 안정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한다. 즉, 농업 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토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에 각 지자체들은 개정된 농지법에 따른 후속 조치에 줄줄이 나선 양태다.
전국 대부분 지자체들이 개정된 농지법을 근거로 해당 지역 내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집중 점검하기 위한 ‘2021년 농지이용 실태조사’에 나섰다. 도내에서도 각 시군들이 농지를 농업에 이용하지 않거나 불법으로 임대한 사실이 확인되면 청문 절차 등을 거쳐 농지처분 의무를 부과한다며 11월까지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내 대부분 지자체들이 형식적이거나 지역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지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여전히 불투명·불충분하다는 지적과 함께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농지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특히 최근 대선 정국에서 농지법을 위반해 논란을 빚는 사례들이 정치권은 물론 심지어 일선 자치단체장들 사이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사후 조사나 땜질식 조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실련·전농, 농지 실태조사...송하진 도지사, 최훈열 전북도의원 전국 상위
실제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전국농민총연맹(전농) 등 시민단체가 지난 7월 8일 공개한 전국 시·도지사, 시장·군수 등 지방자치단체장 2명 가운데 1명(절반 가량)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큰 변화가 없다.
광역시·도의원 등 광역단체의원들도 절반 가까이 농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자체장·광역의원이 소유한 농지 면적은 총 251.2㏊로 서울 여의도 면적(29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공직에 종사하면서 농업을 겸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제 경작 여부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 때문에 나온다.
이들의 농지 소유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실련과 전농은 “전국 지자체장의 51.2%, 광역의원의 46.8%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경실련이 발표한 고위공직자의 농지 소유 비율(38%)이나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 비율(2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경실련과 전농은 지난 3월 발표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재산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시장·군수·구청장·도지사·시의원·도의원 1056명 본인과 배우자의 전, 답, 과수원을 대상으로 소유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시민단체 조사결과, 전국 지자체장 238명 가운데 122명이 농지를 소유한 가운데 광역단체장 중 송하진 전북도지사 이름이 농지 소유 광역단체장 현황의 상위권에 올랐다. 송 지사는 김제시에 0.17㏊ 면적의 농지를 본인 명으로 소유, 면적 부문 2위를 차지했다.
송 지시가 보유한 농지의 신고가액은 2,100만원으로 조사됐다. 전국 광역단체장들 중 가장 넓은 면적의 농지를 소유한 단체장은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으로 전남 함평군에 0.33㏊ 면적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고,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은 제주도에 2억 7,200만원 상당의 0.14㏊ 규모 농지를 신고해 가장 고가의 농지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자체장·광역의원 절반 농지 소유…전체 면적 여의도 육박
이밖에 전국 광역의원은 818명 중 383명(46.8%)이 총 면적 199㏊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1인당 평균 신고 금액은 2억 4,100만원에 달하는 가운데 1위를 전북지역에서 차지해 시선을 모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최훈열 전북도의원이다. 최 의원은 부안 등지에 21㏊에 달하는 농지를 갖고 있으며, 신고가액도 52억 4,9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 대상자들이 소유한 농지의 평당 가액은 1만원대에서 20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경실련은 “실제 경작을 하는 농민의 경우 농지 평당 가격이 7만~8만원으로, 15만원 이상이 되면 농지를 구입해 농사 짓기 힘든 수준”이라며 “현행 농지법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 농지를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경실련은 ‘LH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농지가 대규모 부동산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도 지적했다. 경실련은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이 무너졌다”면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의 농지 소유 실태를 국민들에게 더욱 알려 농지의 공익적 성격을 환기하고 농지법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민회·시민단체 "장영수 장수군수 농지법 등 각종 의혹 규명돼야"
한편 도내 지자체장들 중에서는 김승수 전주시장이 부인의 농지법 위반으로 사과를 했지만 파장과 후유증이 컸다. 그런데 최근에는 장영수 장수군수의 땅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와 농민들이 규탄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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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장수군수, 수상한 '땅 거래·농협 거래’ 의혹 제기
장수군 농민회와 지역 시민단체 소속 10여 명은 10일 장수군청 앞에 모여 “군수는 군민의 얼굴”이라며 “농지 소유 해명하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장영수 장수군수의 수상한 땅 거래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이날 지역 주민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규탄했다.
이날 송재열 장수군농민회 계남지회장은 “비상식적인 대출과 허위계약, 농지법 위반 의혹에 군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가 된 땅은 장영수 군수가 4년 전 매입했다고 신고한 덕산리의 한 토지로 시세의 약 두 배 가격에 거래 신고된 땅을 담보로 장 군수는 1억 5,000만원을 장수농협으로부터 대출받은 사실이 최근 전주MBC에 의해 집중 보도됐다.
여기에 장수군 사업으로 땅값을 상승시키고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자 시민단체와 농민들은 “그런데도 장 군수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된 해명과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전주MBC는 10일 후속 기사에서 “지역사회의 해명 요구가 거세지는 가운데 수상한 대출의 창구가 된 장수농협에 대한 감사와 함께 명의신탁 정황과 대출금의 행방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선거 앞두고 선출직 공직자들 농지 전수조사 필요성 제기
장수군수 외에도 다른 지자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의 농지 관련 전수조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전농 전북도연맹은 이날 전주와 고창 등 전북지역 6개 시군에서 동시다발 농민대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 농정 4년의 결과는 농가 간 소득격차 12배와 비 농민의 농지 투기 등 농업 파탄으로 이어졌다”며 “농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농민기본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이날 단체는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식량 자급 비율을 위해서는 개방농정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는 11월 농민 총궐기'를 예고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농은 앞서 “농지법 개정에 따른 농지 전수조사를 확대 시행할 것”을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이처럼 농지법 개정 이후 투기 등으로 인한 농지법 위반 여부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첨예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농지 투기세력에 대한 ‘사후 제재’ 조치로만 이뤄져 아쉽다는 지적이 높다.
따라서 정치권은 물론 절반 가량이 농지를 갖고 있는 지자체장들과 지방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농지 전수조사부터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