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집단지성'이 절실한 시대
백승종의 '역사칼럼'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이 심상치 않아요.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도를 넘었어요. 대개는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마는, 잘 모르실 분들도 아주 없지는 않을 줄 압니다. 제가 아는 요즘의 국제 정세를 간단히 요약해 보렵니다.
호주에서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쇠고기와 와인을 중국에 수출해왔지요. 그런데 최근에는 중국이 이런 저런 이유로 호주산 쇠고기와 와인에 덤핑 혐의를 두고 관세를 몽땅 매겨서, 사실상 수출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미 호주의 많은 포도주 생산자와 농장 주인들이 도산하는 지경이 되었어요. 중국 측의 보복입니다. 호주에서 정치가들이 중국의 인권을 문제 삼기도 하고, 미국과 함께 모종의 군사 작전을 펴기도 한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닭을 죽여서 원숭이에게 겁을 준다는 말이 있대요. 미국을 편드는 호주와 뉴질랜드 같은 나라를 혼내 줌으로써, 중국은 독일과 프랑스 등에게 협박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 일도 그렇다지요.
핵무기 문제로 미국과 이란 사이가 매우 악화되어 있어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바로 중국입니다. 현재 이란은 중국에 완전히 의존적인 상태지요. 이란의 주요 생산품인 유류도 중국에게는 특별 조건으로 제공하기로 하였고, 대신에 중국은 이란에 막대한 경제지원을 제공하고요 시장을 독점합니다.
미국과 유럽이 놓친 이란을 중국이 점령한 것이나 다름 없지요. 유럽 여러나라도 사실상 중국의 소유물이 되어가고 있어요. 동구권에 속했던 가난한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서유럽에서도 포르투갈을 비롯해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어요.
위기를 느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신들의 공동 방위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머리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진즉에 중국에 대단히 의존적인 상태가 되었어요. 중국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미국에게 더 이상 군사적 우위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입니다.
그들은 "일대일로" 사업으로 이미 독자적인 해로를 개척하였고, 초대형 항공모함을 파견해 동남아시아 해역을 순항하며 자국의 이익을 방어하고 있어요. 그들은 인도양을 넘어서 차츰 유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은 소규모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아마 중국의 영향력은 급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어서, 미국과 중국은 날이 갈수록 우리에게 양자 택일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엊그제 삼성이 자사가 보유중이던 중국의 배터리 회사 주식을 몽땅 매각 처분하였습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 배경에는 아마 미국의 정치적 압력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하게 됩니다. 일본은 속내야 어떻든 간에 전통적으로 친미 노선을 한결같이 유지해왔고요. 타이완은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이 커지고 있는 판국이라 더더욱 미국에 종속적인 태도를 보이지요.
문제는 우리나라입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보면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는 사활에 관계될 정도로 중대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하지요. 그런데 군사외교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우산 아래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터진다'는 속담이 지금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도 같아요. 물론 우리가 새우처럼 약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아직은 고래가 아닌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훌륭한 정치가도 필요하고,
수완 좋은 사업가도, 그밖에 여러 분야에 많은 일꾼이 필요한 시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의 정치판을 잠깐이라도 들여다 보면 아연실색하게 되지요. 저 사람들이 과연 앞으로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나라의 재벌 3세나 4세들도 믿음직하지 못하고요.
시민의 밝은 눈이어야 할 언론은 또 어떠한지요. 애초 저 같은 사람은 식견도 부족하고 그저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쓰는 사람이니까 더 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누린 "팍스아메리카나"는 이미 지나갔어요. 20세기 초반에 인류사회가 겪은, 열강의 충돌이 재연될 기미가 나날이 짙어갑니다.
식자들은 1930년대의 재현을 말하고 있어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요? 시민의 용기와 지혜로운 판단이 오늘날처럼 중요한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시민의 집단지성에 의지해서 우리는 새 길을 개척해야할 것 같습니다.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