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Sometimes always never
영화 속으로
일상 속 미학의 포착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평범한 힐링 영화인 줄 알았다. 평점에서도 전반적으로 잔잔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조용하게 스며드는 작품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러한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찌 보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영화 전반에 고요함이 깔려 있지만,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든 것의 색감과 배치가 범상치 않았다. 이렇게 미장센이 독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영화는 ‘싱글맨’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분명 일상 속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인데도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이 특별했다. 어떤 물건에 카메라의 시선이 머무를 때마다 마치 스톱모션으로 표현한 반 고흐의 작품이나 전문적인 사진 전시회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 집, 창문, 전화기, 액자, 의자 등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 속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지 추측하며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영화를 관람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실속 없는 허세로 보여 별로인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다소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도 받았다.
스토리 전개나 중요한 메시지 전달보다는 예쁜 소품 보여주기가 앞서는 그런 영화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미장센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나가더라도,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미학을 포착하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익숙함 속의 낯섦’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아가 그것들은 결국 인물과 인물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돌아오지 않은 탕아, 곁에 있는 아들
영화는 신원불명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치소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어린 시절 보드게임 스크래블을 함께 하다 갑자기 실종된 앨런의 큰아들이자 피터의 형인 마이클이 혹시 시신으로 돌아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정 중에도, 여정이 끝난 후에도 아버지와 아들은 나름대로 끊임없이 대화는 나눴지만, 각자의 언어는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공기 중에 의미 없이 흩어져버렸다. 삐걱거리는 부자 관계는 더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궤도를 맴도는 행성 같았다.
영화는 안치소로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1박 2일의 여정을 다룬 itinerary(일정표), 뜬금없이 시작된 아버지와의 동거를 그린 inconvenient(불편한), 사라진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hope(희망)로 진행한다. 갑작스러운 시신 확인 일정과 아버지와의 동거는 피터에게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주지만, 결국에는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을 의미하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실종된 마이클에 관해 성경 속 탕아 비유가 등장하지만, 성경과 달리 마이클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곁에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던 아들 피터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의 다른 아들, 곁에 남은 아들은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요? 하루하루, 아침, 오후, 집에서 가족과 있는 삶, 지금과 같은 평범한 하루가 그 아들이 꿈꾸는 행복이라고요.”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아버지가,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헤매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앨런과 피터 두 사람 모두 안타까웠다.
단어와 단추처럼
단어를 가로세로로 맞추는 보드게임인 ‘스크래블’은 영화를 이어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스크래블을 하다가 마이클은 실종되었고, 스크래블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피터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온라인 스크래블을 하다가 게임 상대가 실종된 마이클인 것 같다며 앨런은 그를 찾으러 훌쩍 떠나고, 마지막에는 스크래블을 하며 앨런과 피터의 관계가 회복된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에도 나오는 ‘단추’는 앨런이 피터의 가족과 함께 살 때 손자인 잭과의 에피소드 속에서 등장한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앨런이 정장에 관심을 보이는 잭에게 옷을 맞춰주며 말한다.
“이제 단추 채우는 법을 항상 기억해야 해. 첫 번째는 가끔, 두 번째는 항상 채우고, 세 번째는 늘 열어 놔.”
여기에서 영어 원제인 “sometimes, always, never”가 나오는데, 이것은 정장 재킷의 단추를 채우는 규칙이지만 한편으로는 스크래블의 단어 맞추기와 함께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완벽한 정답은 없다. 그 순간에 적절한 최선을 다할 뿐. 열어둘 때가 있는가 하면, 잠글 때도 있는 단추.
앨런은 오랫동안 붙어 있었던 ‘마이클 멜러’의 이름표를 떼어 낸 기타를 아들 피터에게 건네고, 피터는 그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아들 마이클이 실종된 후 흑백 사진으로 멈춰 있던 아버지 앨런의 시간은 그제야 제 빛깔을 찾고 흐르기 시작한다. 단추를 열어 둘 것인가, 채울 것인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은 hope로 향하는 여정이기를.
/김명주 시민기자(영화 평론가)